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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통터지    
글쓴이 : 박승해    26-11-04 00:24    조회 : 12

바통터지


바스락거리는 건조함이 어깨를 치고 지난다. 마치 현대인의 덕목이 무관심이라도 되는 양 스치는 사람들의 눈에는 물기가 없다. 바닥을 두드리는 발소리는 빠르고 더 단단해진다. 시간을 흐르던 빛은 사방으로 흩어진다.

“서두르는 저 사람들은 자신이 가는 길을 정확히 알고 있을까?”

한참이나 지하철 출구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주변이 축축하고 무겁다

손에 든 우산이 삶의 무게처럼 무겁다. 어느 장인이 시간을 들여 공들였을 손잡이가 제법 아름답다. 얼마 전 딸이 슬며시 두고 간 거였다.

“엄마 맨날 편의점 우산 갖고 다니지 말고 이런 것도 있다는 걸 알아야지!”
평소 내가 들고 다니던 투명한 우산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딸이 잃어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주고 간 우산이다.
“그래봤자 우산이 우산이지 뭐”
경품으로 받은 우산, 답례품으로 받은 우산, 누군가 두고 간 우산, 집에는 사실 우산이 너무 많다. 우산을 비싸게 산다는 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이후 딸의 우산은 여느 다른 우산과 마찬가지로 현관 한 귀퉁이에서 잊혀졌다.

오늘 아침 드디어 그 우산을 집어들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잃어버릴까 봐 공연히 신경이 쓰였다. 식당 입구 우산꽂이에 넣어 놓고서도 마음이 쓰이니 종일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물건을 자주 분실하는 나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마음의 등짐을 진 거 같았다.
“우산은 그냥 비만 잘 막아만 주면 그만인데”

몇 번이나 혼잣말로 궁시렁거렸다.


나는 1960년대에 유년기를 보냈다. 전쟁 후 국가 재건을 위한 궁핍의 시대였다. GNP 80달러의 최빈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적을 만들어야만 했던 시기이다. 부모님은 자식을 먹이기 위해, 가난의 대물림을 하지 않기 위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절약은 미덕이 아니라 삶의 조건이었다.

물자는 늘 부족했다.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 뼈만 앙상한 사람들, 깡통을 두드리며 구걸하는 사람들, 떨어진 고무신도 버리지 않고 주우러 다니는 넝마주이 아저씨, 끼니를 위해 추수가 끝난 논에서 이삭을 줍는 사람들. 연필은 깎고 깎아 사용하고, 끝이 보이는 몽당연필은 볼펜 껍데기에 끼워서 마지막까지 알뜰하게 써야만 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자’

1961년 신년인사로 장면 총리가 내세운 ‘슬로건’은 조기 달성되었다. 기적처럼 가난은 벗어났지만 그시절 어려웠던 고단함은 인장처럼 가슴속에 새겨져 있다.

얼마 전 이집트 여행길에서였다. 한국인만 보면 펜을 달라는 아이들이 궁금해 여행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볼펜, 특히 스프링을 이용한 볼펜들이 이곳에서는 무척이나 귀하다고 했다. 관광객에게 얻은 볼펜은 물자가 부족한 이곳에서 유용한 필기구로 사용되거나 또는 필요한 식료품으로 교환한다고 한다.
아침이면 호텔 입구에서 기다리는 아이들도 있다. 호텔에서 준비해 준 여행객의 간식 가방을 얻기 위한 거라고 한다. 나는 문득 미군의 초코렛을 얻어먹으며 좋아했던 과거의 나를 소환해 냈다.

 

여행객에게 아침은 충분히 넉넉했다. 우리가 아침 식탁에서 더 맛있는 것을 탐할 때 이 아이들은 가족에게 먹일 끼니를 위해 호텔 앞이나 크루즈 앞으로 모여든 거다. 사연을 알고 나서부터는 나는 간식 백을 망설임 없이 그 아이들의 손에 쥐어 주었다. 오늘 하루라도 이 아이의 가족들이 굶지 않기를 소망하며.

어릴 적 가난하고 불결했던 서울의 삶이 21세기 현재의 이집트에서는 아직도 지속되는거 같아 안타깝다. 부러운 역사의 나라이며 거대한 문명을 일구어낸 이집트다. 우리나라의 ‘한강의 기적’이 현실이 되었듯이 ‘나일강의 기적’, ‘사막의 기적’이 가난한 아이들의 가정에 현실이 되기를 기도한다.

 

지구는 나누어진 두 개가 아니라 둥글게 감싸 안은 동그라미가 아닌가.

 

넉넉했던 고향을 떠나 급하게 정착한 서울의 변두리는 어느 집이나 가난했고 우리집도 역시 그 가난의 가운데에 있었다. 담장 하나 사이에 사는 동갑내기 친구는 쌀이 없어서 점심 끼니를 굶는다고 했다. 나보다 두 세살 어린 남자아이는 가난을 한탄하며 매일 술에 쩔어 사는 아버지에게 구박을 받는다고 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물가에서 하는 넋두리는 대부분 가난한 삶에 대한 한숨이었다.
사실 나는 그 시절에는 그게 가난인지 잘 몰랐다. 밥을 왜 못 먹는지, 고생하며 벌어온 돈을 술 마시는데 다 써버리는지, 가난한 아버지는 왜 자식을 미워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열 살도 안 된 내게 주변은 날마다 새로운 일 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나는 엄마 몰래 밥을 친구의 수제비와 바꾸어 먹고, 집에서 쫒겨나 발가벗고 울고 있던 아이에게 언니에게서 물려받아 입던 겉옷을 입혀 주었었다. 대단한 의미는 없었다. 그때 나는 밥보다 친구의 수제비를 좋아했고, 그날은 옷을 너무 두껍게 입은 날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날들을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언제가 딸과 함께 보던 TV 드라마에서 한 아이가 양철 깡통으로 먹다 남은 밥을 얻어다가 동생에게 먹이는 장면이 나왔다.
“에이 더러워 먹던 걸 어떻게 먹어”
딸의 반응에 나는 생각했다. 드라마의 내용은 사실이었다. 아니 그 보다 더 할 수도 있었다. 그 당시 어디서나 흔히 보던 일들이었다.

위치상 우리집은 마을을 지나가는 길몫에 있어서인지 동냥하던 아이들이 한 번씩 거쳐가는 집이었다. 새 밥, 먹던 밥이 문제가 아니었다. 구걸하는 아이는 너무나 많았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엄마가 살던 60년대에 진짜로 있었던 일이야, 엄마가 산 증인이야”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유년기의 가난이 통증으로 밀려 올라왔다. 가난을 안다는 건, 결핍을 이해한다는 건 풍요의 세대를 사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식량이 부족해 본 적이 없던 이 아이들이 새벽부터 뼈를 깎는 노동의 댓가로 그날의 양식을 겨우 먹을 수 있었던 그들의 부모 세대를 어찌 알까.

“엄마 너무 궁상이야”
“쌀이 많은데 왜 그런 걸 주워서 먹어?”
어릴 적 내가 엄마에게 했던 말이다. 왜 그런 말로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까. 서울로 이사 오면서 팔지 않은 논은 친척이 대신 농사를 지었고, 추수한 후 일부를 우리에게 보내주었다. 다른 건 몰라도 광 한구석에는 쌀 가마니가 늘 쌓여 있었다..

엄마는 늘 가마솥에 넉넉히 밥을 했다. 집을 찾아온 누구에게나 푸짐히 밥을 나누었다. 목탁을 두드리며 시주를 받아가시던 스님은 매번 오실 때마다 툇마루에서 땀을 닦아 내셨다. 미안했던지 스님은 잔병이 많던 내게 항상 덕담을 해 주시곤 했다.
우리집은 이른바 부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있는 걸 나누려 했던 엄마는 동네에서 ‘손 큰 아줌마’였다. 엄마는 수챗구멍으로 낱알이 흘러 들어가 버려지면 안 된다고 손으로 한알 한알 주워 모으셨다. 가을걷이가 끝난 빈 밭에 가서 배추 껍데기도 주워 오셨다. 나는 엄마에게 불만이 많았다.
“엄마 창피하게 그렇게 아끼지 말고 사람들에게 안 주면 되잖아!”
엄마는 한참이나 가만히 계시다가 말씀하셨다.

“진짜 창피한 것은 일을 안하고 남에게 얻어 먹는 거야”

 

나도 점점 절약하는 엄마를 닮아가고 있다. 요즘 아이들이 물건을 너무 자주 바꾸는 것도, ‘아이템 수집’이라고 가격과 상관없이 전국을 찾아다니는 것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오랫동안 바꾸지 않은 핸드폰은 어느날 딸에 의해 강제로 최신 폰으로 바뀌었다. 아무리 최신폰이라고 해도 사용하는 건 같다. 자고로 핸드폰은 ‘전화나 문자하고, 굳이 더 하자면 유튜브만 잘 나오면 되는 거 아닌가?’

지하철의 어두운 구멍으로부터 바쁜 하루에 지친 얼굴들이 쉴 새 없이 올라온다. 하늘은 물빛을 선물로 뿌리고 있는데 사람들의 얼굴은 물기없이 바삭거린다. 언제든 다시 지하세계로 사그라들 것만 같다. 표정 없는 손에 의해 활짝 펼쳐지는 각양각색의 화려한 우산들만이 오늘 하루가 의미 있었음을 조심스레 알리고 있다.

비싸고 무거운 우산을 온종일 모시고 다니느라 공연히 마음 졸이기보다는 동네 편의점 어디서나 살 수 있는 5,000원짜리 우산은 어떤가. 꾸미지 않은 맨 얼굴로 ‘안녕’이라고 촉촉하게 속삭이는. 손 목에 무리를 주지 않는 소박하고 가벼운 우산이 난 더 좋다. 게다가 혹여 잃어버려도 상관없다.
“바통터치 한 거야,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나 대신 쓰겠지 뭐”


어디선가 본 거 같은 문구가 생각난다.

“우산 빌려드립니다. 필요하신 분 사용하시고 반납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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