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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황, 옛 친구들과 걸은 길( 미주 문학 봄호 2026)    
글쓴이 : 국화리    26-02-10 14:04    조회 : 352
                        


                                                             돈황, 옛 친구들과 걸은 길
                                                     -막고굴, 구원의 빛-

                                                                                                                                                              국화리

  투르판에서 기차는 어두운 밤을 뚫고 동쪽 돈황을 향해 내달렸다. 객실에는 사춘기 시절의 친구 넷이 모여 작은 세상을 꽃피웠다. 창밖은 거침없는 사막, 기적 소리와 덜컹거림만이 까만 밤의 자장가가 되어주었다. 비몽사몽 눈을 뜨니 이미 창밖은 훤히 밝아 있었고, 기차는 여전히 죽음 같은 모래의 바다를 뚫고 달렸다

  돈황, 실크로드의 천산북로와 천산남로가 교차하는 군사적 요충지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소통의 꽃이 피기 마련이다. 기원전 한나라 무제 시절, 이곳은 중국과 서역을 오가는 대상들이 비단과 차를 로마와 이집트로 실어 나르던 길이었다. 돌아오는 길엔 말과 금, 포도주를 가득 실었으니, 수입과 수출이 낙타의 발걸음에 달린 팽팽한 생존의 현장이었다. 수십 마리 낙타가 모래바람을 뚫고 유유히 모래언덕을 넘는 풍경은 우리에겐 낭만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생사를 건 간절함이라는 것을 알았다. 바람에게 훈풍을 기도하는 집의 아낙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경희가 지니고 다니는 자료집을 보며 넌지시 일러준다.

    “한무제의 특사 장건, 후한의 장군 반초, 당나라 현장법사, 신라의 혜초그리고 마르코 폴로까지 모두 이 길을 통과했어.“

  명사산 노래하는 모래산이라 불리는 거대한 모래 언덕이다바람은 모래와 유희하며 산등성이의 곡선을 끊임없이 바꾸어 놓는다. 삼각형, 마름모, 물결치는 파도 등 하늘 아래 그려지는 기하학적 무늬는 매일 밤 바람이라는 예술가가 빚어내는 조형물이다.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선의 미학에 매료되어 수많은 눈길이 그곳에 멈춰 섰다.

  친구들은 낙타를 타는 대신 모래 썰매에 몸을 맡겼다. 100미터 높이에서 중력을 가르며 질주하다 튕겨 나가고 뒤집히며 모래 위를 뒹굴었다. 온몸에 사막을 뒤집어쓴 채 터뜨린 웃음소리가 언덕 너머로 퍼져나갔다. 모래 사람이 되어 내려오자 초승달 모양의 월아천이 기다리고 있었다수천 년 모래바람 속에서도 형상을 잃지 않고 사막의 점을 찍고 있는 그 생명력 앞에 경외감이 일었다. 낙타와 대상들의 마지막 쉼터였을 이곳, 물을 마시는 낙타의 울음소리와 대상들의 시끌벅적한 대화가 들리는 듯했다.

  늘 유머을 터트려서 분위기를 바꾸는 영이가 시를 읋어 주었다

     천지가 교묘히 숨겨둔 궁벽한 황무지에/ 차가운 샘물이 하늘 밖으로 절반쯤 나왔네.

     모래 산이 사방에서 옥 조각처럼 둘러싸고/ 작은 티끌 하나 감히 샘물에 떨어지지 못하네.

     작가 미상이지만 월아천의 분위기가 잘 녹아있는 월아천가이란다.

모래 폭풍을 이겨내며 제자리를 지켜온 월아천대상들의 고단한 삶을 구원하는 메시지를 읽는다.

 구원의 빛 막고굴 돈황 시가지를 벗어나 사막으로 들어서면 당나라 시절 사주를 재현한 거대한 세트장이 나타난다. 철저한 고증 덕분에 술집, 여관, 관청 등 천 년 전 교역 도시의 활기를 엿볼 수 있었다문명의 꽃핀 곳에는 상업이 왕성했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었다. 일행은 30분쯤 더 달려막고굴에 도착했다사막의 벼랑을 따라 남북으로 1,600미터에 걸쳐 600여 개의 굴이 병풍처럼 이어져 있었다.

  자료집을 보며 윤경이의 설명이 있었다.

    서기 366, 승려 낙준이 명사산에서 신비로운 빛을 본 뒤 석벽을 파 불공을 드리기 시작한 것이   막고굴의 시작이야. 이후 천 년 동안 수많은 승려와 예술가들이 굴을 파고 불상과 벽화를 장대한 불교 예술의 세계를 완성했어“.

   현재 개발된 492개의 석굴 중 정점은 단연 당나라 시대의 255개 굴이란다당시 예술가들의 섬세한 필치와 화려한 색채는 당대의 부유함과 예술성을 생생히 증언한다.

   제17굴 장경동은 백여 년 전 도사 왕원록이 발견한 밀실이다. 그 안에는 5만 점에 달하는 경전과     고문서, 보물들이 천 년의 잠을 자고 있었다.

   준경이가 씁쓸한 목소리로 이어갔다

   “제국주의 탐험대들이 이 보물 4만여 점을 헐값에 가져갔어. 주인 없는 옛 고서의 가치를 그가 알았겠어. 왕원록은 고물값으로 팔아버린 것이지.“

  그 유물들은 지금 런던과 파리등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다. 다행히 신라 승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그때 빛을 보게 되었으니, 인류의 보물이 세계 곳곳에서 소중히 보존되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현재 개방된 8~9개의 굴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불경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빛바랜 색채 속에서도 생생한 보살의 행렬과 유려한 곡선은 천 년을 뛰어넘어 가슴을 흔들었다특히 측천무후의 발원으로 조성된 34.5미터의 거대 미륵불은 압도적이었다. 발 하나가 내 몸집만 한 불상 앞에 서니 나는 한 마리 작은 벌레처럼 느껴졌다. 천장에서 스며든 빛이 부처의 얼굴에 닿을 때 뿜어져 나오던 신비로운 힘, 하늘과 소통하고 싶은 우리의 신심도 피어나고 있었다.서역으로 향하던 승려와 대상, 군사들의 간절한 기도가 쌓여 이 장엄한 막고굴을 이루었다.

  사막의 모래바람은 스쳐 지나가도, 벽화 속 눈빛은 천 년을 건너와 내게 말한다.

  “월아천에서 목을 축이고 막고굴에서 올린 간절한 기도의 숨결은,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에게도 여전히 구원의 빛입니다.“

   옛 친구들의 다정한 돈황의 고전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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