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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바구니가 우리를 키우던 시절    
글쓴이 : 박희래    26-02-21 19:18    조회 : 11

대바구니가 우리를 키우던 시절

 

박희래

  저마다 꿈을 담은 대바구니가 물결처럼 흘러간다. 아주머니는 머리에 이고 아저씨는 어깨에 짊어지며 학생들의 자전거 뒤에 타고 가는 대바구니 모습이 활기차다. 신작로를 따라 관방천 장터까지 가는 풍경은 해외 토픽감일 정도로 고향의 자랑이며 인상 깊은 진풍경이다.

  내 고향은 죽세공예품으로 잘 알려진 담양 대나무골, 대나무는 사군자 중의 하나로 꿋꿋한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군락을 이루어 자라고 있는 대밭은 주로 마을 가장자리를 빙 둘러쳐 감싸고 있어 방풍 역할을 했다. 산에 나무하러 올라가 내려다보면 마을과 어우러진 모습이 한 폭의 산수화다. 바람에 흔들흔들 춤추는 광경과 대숲에서 들려오는 댓잎이 서로 비비며 내는 서걱거리는 소리는 가까이서 들으면 자연의 연주곡으로 어머니의 자장가처럼 느껴진다

대바구니를 만드는 일은 가족 모두의 합작품이다. 남자와 여자가 할 일이 따로 정해져 있었고 사계절 내내 계속된다. 보리타작하고 모심기하거나 벼 수확하는 농번기 때는 잠시 비수기고 농한기인 겨울철이 성수기였다. 맡은 역할을 척척 잘 해내야 모양이 멋진 대바구니가 완성된다.

  아버지가 대나무를 베어 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우기와 겨울철에는 비와 눈, 칼바람을 피할 수 있는 새마을회관 안이나 집 토방에서 아버지가 대칼로 마수면 형과 나, 동생은 갱기 떼(빠갠 것)를 흠집 나지 않게 잘 긁어낸다. 이어서 아버지가 다시 잘게 빠개어 날 때를 만들면 속대와 피대로 나누어 어머니, 형수, 두 누나가 절었다. 그런 후 큰형님이 꿰매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예쁘게 잘 꿰매어진 대바구니를 보면 우리 가족이 손과 정성을 다한 마음을 보는듯하다. 완성된 둥그런 대바구니는 어머니의 고운 심성을 닮았다. 조금은 까끌까끌한 오목한 안쪽 바닥은 아버지의 거친 손바닥 느낌이 났다.

  대바구니는 두 개가 한 벌이다. 장날마다 이십 벌 많게는 삼십 벌씩 만들었다. 그 시간은 우리 가족이 더 똘똘 뭉쳤다. 누나는 노래를 불렀고, 동생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러나 모두의 손은 부지런히 대바구니에 매달렸다. 아버지는 가끔 엷은 미소로 우리들의 수다를 듣고 있음을 표시했다. 방에서는 대나무의 은은한 향기가 늘 흘러 다녔다.

  완성된 대바구니를 자전거에 싣고 관방천에 갖다 놓는 것은 작은형과 내가 번갈아 했다. 장날은 오일장으로 2일과 7일로 끝나는 날에 정기적으로 관방천에서 열렸다. 대바구니 판매는 유일하게 현금을 만질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자식을 교육하고 식생활의 필수품을 조달할 수 있는 큰 축이었다.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대나무처럼 질긴 생계의 문턱을 넘는 데 단단히 한몫했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를 따라 장에서 흥정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흠이 없고 좋아야 상품으로 쳤다. 핏대가 속대보다 더 비싸게 팔렸다. 판매는 당사자 간 팽팽한 밀당 끝에 결국 쌍방이 합의한 적정 가격에 이루어졌다.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생산자는 보관료를 지급하고 창고에 맡기든지 집까지 다시 갖고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먹구름이 시장 하늘에 가득 채워지던 그날, 아버지가 팔고 나니 날씨가 끄물거렸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아버지가 천막 안에서 사준 첫 라면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것이어서 별미였다. 아버지는 반 그릇 넘게 내 그릇에 덜어 주었다.

  큰 형님이 조카들 교육을 위해 도시로 떠났다, 우리 집에도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수제 공예품을 생산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위기가 찾아왔다. 그러나 아버지는 대나무를 긁고 나면 대건풀(대나무 껍질)이 생기는 데, 집마다 방문하여 저울에 달아 가격을 지급하고 큰 포대 자루에 담았다.

  수거하는 일이 많은 날은 아버지를 도우려고 이웃 동네까지 따라다녔다. 큰 마대를 들고 다니면서 무거우면 어깨에 메기도 하고 꾹꾹 눌러 담아 새지 않도록 입구를 단단히 여러 번 노끈으로 둘러 묶었다. 자전거 뒷좌석에 싣고 가 담양에서 광주까지 가는 직행버스 하단 짐칸에 실었다. 이것은 내가 도맡았다. 그러면 아버지는 광주광역시 서방에 있는 한약방에 한약재로 팔았다. 이것이 우리 집 가정 경제의 대바구니 대체제 수입원이 되어 주었다.


  사람들은 사 년 동안 고작 삽십 센티미터밖에 자라지 않는 대나무의 키를 보면 실망할 수 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땅속에 깊이 뿌리를 내린 오 년째 되는 해 하루에 일 미터씩 자라 폭발적인 성장을 한다. 대바구니를 만들던 시절은 고된 시간이었지만 우리 가족을 성장시키고 인내하는 시간이었다. 늦게 자라는 대나무를 볼 때마다 넌 지금 잘 자라고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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