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창작합평
  여전사 이불    
글쓴이 : 고은영    26-02-18 16:22    조회 : 19
                                                                                    여전사 이불
                                                                                                                                                                                         고은영

 그녀의 별명은 ‘여전사’다. 숏커트에 안경, 치켜 올라간 눈매가 반항적인 세계적인 설치미술가이자 화가, 이불이라는 특이한 이름은 본명이다. 불昢은 새벽 불로, 흔히 쓰는 한자는 아니다. 새벽은 만물이 생동하며 깨어나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어두워져야  덮고 자는 이불과는 동음이면서도 반대의 시간대라 그녀의 성향처럼 이중적인 울림을 준다. 과연 학생 운동가였던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답다. 그녀는 1964년 경상북도 영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짓궂은 또래 남자아이들에게서 이름 때문에 놀림깨나 받았고 그래서 생긴 열등감은 오히려 자의식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어 이후 그녀의 반항적인 작품 세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불은 데뷔 초기부터 여성의 몸을 재단하려는 남성의 통제적이고 가부장적인 성향을 비판하는 작품을 잇달아 발표했다. 내가 이불에게 관심을 두게 된 것도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었다는 작품 「화엄(Majestic Splendor)」’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였다. 「화엄」은 죽은 물고기에 화려한 반짝이와 구슬 등을 바늘로 꿰매 전시한 작품이었는데 여성이 지닌 자연성과 더불어 그 부패가 뜻하는 희생 등을 동시에 표현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악취 때문에 전시 도중 철거되는 해프닝을 남겼지만, 그녀는 이후 국제적 전시와 비엔날레에 연이어 초대되며 미술계의 초신성으로 떠올랐다.
 뉴욕 한복판, 최고의 현대미술관에서 죽은 물고기를 전시하다니? 나는 그녀의 대담함에 전율을 느꼈다.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미술관이 상징하는 예술의 관습과 위계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일일 것이다.
 알래스카에  사는 내가 그녀의 작품을 직접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잠깐 한국에 귀국했던 2025년 9월에서 2026년 1월까지 삼성 재단 ‘리움 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회가 열렸다.  「이불: 1998년 이후」가 그것인데 전시회는 도입부터가 충격이었다. 

 전시장 입구의 천장에는 거대한 은빛 비행선이 매달려 있었다. 「취약할 의향 -메탈 라이스트 벌룬」이 작품명으로 20세기 초의 ‘체펠린 비행선’이 모델이다. 체펠린 비행선은 풍선 대신 금속을 사용한 최첨단의 기술로 널리 사랑받았으나 1937년 공중에서 폭발하여 승객 35명을 사망케 한 ‘힌덴부르크호의 참사’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름답지만 불안정하고, 거대하지만 취약한 비행선을 통해 끝없이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운명을 암시하는 이불의 대표작이다. 쇠락한 비행선에 「취약할 의향」이라니 기가 막힌 이름이다.
  
 ‘블랙박스’라는 명칭이 붙은 위층 본 전시장에 들어서자 이불의 초기작 중 하나인 「사이보그」 시리즈 중 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인간과 기계를 불완전하게 결합시킨 사이보그와 인간과 동물을 강력하고 흉측한 형태로 결합시킨 몬스터 시리즈는 완벽한 존재'에 대한 인간의 맹목적인 열망이 성공하면 사이보그가, 실패하면 몬스터가 된다는 재미있지만 오싹한 해설을 통해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4미터 높이의 알루미늄 타워인 「오바드 2007」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서구 건축의 대표작이지만 이제는 잊혀 가는 열 개의 타워를 참조하여 만들어졌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설치물 가운데의 고리 모양 구조물에서 깜박이던 LED 문자인데 이는 ‘에스페란토여’로 폴란드의 안과 의사 ‘자멘호프’가 국제적인 의사소통을 목표로 1887년 발표했던 인공적인 언어이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이 문자는 명멸하는 LED 불빛과 함께 덧없는 소망을 소환시켰다.
 
 「무제-인피니티 파티션 2008」은  쌍방향 거울과 LED 조명을 통해 영속성을 향한 열망의 환영을 만들어낸다. 한쪽 면을 마주 보고서면 거울 효과로 인해 조형물과 기계 장치가 끝없이 이어지며 빨려 들어갈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는 반대편 벽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유리로 보였던 앞면이 반대쪽에선 거울로 작용하는 원리였는데 이를 눈치채기는 쉽지 않았다. 아래층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야 그 두께가 고작 한 뼘 남짓에 불과한 것을 목격하고 원리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작품의 크기도 현관문 정도에, 그 두께도 십여 센티에 불과한데 그것으로 영원히 계속될 듯한 착시를 빚어내고 동시에 그것이 착각임을 여실히 느끼게 하다니 그녀가 천재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오바드 V 2019」는 「오바드」 연작 중 하나로 이불은 ‘리얼 DMZ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철거된 감시초소의 폐자재를 입수해 이를 재구성하여 타워 형태의 구조물을 제작했다고 한다. LED 문구에 우주적 섭리를 덤덤하게 제시하여 이데올로기적 신념의 대립과 대비시켰다. 작품이 제작된 후 몇 년 되지 않아 남북 간 합의는 파기되었고 철거되었던 감시초소들은 다시 세워졌다. 이에 「오바드 V」는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역사가 지속되는 한 사라지지 않을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그 화해의 불가능을 암시하는 역사적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스케일 오브 텅 2017–2018」은 2014년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와 그로 인한 트라우마의 흔적을 성찰하는 작품이다. 작품의 형태는 천천히 가라앉는, 기울어진 배의 형태를 상기시키는데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사회적 문제와 이념적 갈등, 그리고 감춰진 진실에 대한 수많은 목소리를 함축하고 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미 십여 년이 흘렀지만 수많은 어린 목숨이 희생된 충격적인 사건이었기에 잊지 말아야 할 사회적 메아리를 다시 한번 돌이켜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천지 2025 (2007년 작품의 개작)」은 내가 가장 전율을 느끼며 감상했던 작품이다. 파손된 타일로 만든 욕조에 검은 잉크, 즉 천지가 가득 담겨 있고 욕조의 사면 위에는 민족의 명산, 백두산이 솟아 있다. 1987년 민주화 운동에서 희생당한 박종철 사건을 상기시키는 이 작품은 부서진 타일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억압의 상흔을 암시하며 욕조를 채운 잉크 냄새를  통해 이를 감각적으로 환기시킨다. 전시 기간 내내 잉크는 조금씩 증발하여 처음 채웠던 수면과는 벌써 일이 센티 정도 줄어 있었는데 잉크를 다시 채우지 않으므로써 박제되지 않은 상처를 일깨웠다.
 「천지」의 위에는 「스턴 바우」라는 작품을 배치하여 반짝이는 크리스털 조각들이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호수에 반사되어 움직일 때마다 깜빡이는 별처럼 보이게 했다. 절망이 아무리 깊다고 한들 완전히 사라질 수 없는 희망의 파편들을 보는 듯하여 놀라우면서도 강렬한 대비였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신체와 사회, 인간과 기술, 자연과 문명, 권력의 문제를 실험적 방식으로 탐구하며, 기술과 인간, 유토피아와 현실의 경계에서 예술의 역할을 성찰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었는데 이불은 그 주제를 명확하게 표현해냈다. 이불애 의하면 명확한 것은 어디에도 없기에 명확하지 않게 표현해냈다고 해야 하나?
 ‘아름다움은 종종 불안과 불완전함에서 비롯된다. 완벽함은 오히려 우리를 억압할 수 있다.’는 이불의 말을 떠올리며 비어 있되 충만한 마음으로 전시장을 나섰다.

-리움 미술관 전시회 『이불 1998년 이후』 리플렛 참조



 
   

고은영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2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등단 전 합평에 통과한 작품 올리는 방법 웹지기 08-11 6174
공지 ★ 창작합평방 이용 안내 웹지기 02-05 94986
2 여전사 이불 고은영 16:22 20
1 맛있다 회전초밥 고은영 10-27 2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