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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전여행 대학생과 담임 선생님    
글쓴이 : 이창원    14-02-04 14:34    조회 : 8,316
무전여행 대학생과 담임 선생님

 사십여 년 전 나는 시골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아버지가 이발업을 하셔서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이발관에서 아버지를 도와 드려야 했다. 물지게로 물을 져다 날라야 했고, 바닥의 머리카락들을 쓸었다. 중학교도 포기해야 할 형편에서 운 좋게 고등학교까지 진학을 할 수 있었지만 중간, 기말 고사 때면 등록금을 제 때 내지 못해 집으로 쫓겨 오기 다반사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학비를 면제 받기 위해 농장에서 일하는 화훼연구생이 되어, 새벽에 등교하고 해가 져서야 돌아 왔으며, 방학 때는 아예 농장 숙소에서 숙식을 하며 온실의 꽃을 돌보았다. 고2 때 연구생은 1학년만 한다는 규정에 따라 다시 시작한 나의 이발관 생활로 오전 열 시에 등교하고 오후 두 시에는 다시 이발관으로 가서 일을 도와야만 했었다.

 고2 겨울방학 때였다. 큰 형의 점심을 가져다주기 위해 길고 큰 다리를 지나가다 한 대학생을 만났다. 그 대학생이 갑자기 영어로 “Are you a high school student?” “What grade are you in?” 하고 물었다. 나는 알아듣기는 했었지만 영어로 대답하지는 못해 한국어로 대답했었다.

 그 대학생은 다시 우리말로 자기는 서울 소재 대학생인데 서울에서 진주까지 도보 무전여행을 한다고 소개를 했다. 그러면서 시골에서 살기 보다는 서울에서 살기를 권했고, 대학을 졸업하면 좋은 이유를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주었다. 정말 신선하고 멋진 충격이었다.

 다음 날 부모님께 돈 오 천원을 얻어 대구 헌책방에 가 대학 예비고사 시험에 필요한 책들을 모두 샀다. 당시 농업고등학교에서는 일주일에 국영수 각3시간, 과학, 사회 각 2시간, 나머지는 모두 농업과목과 농장 실습이었으며 그나마 책 한 권을 온전히 다 배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또한 예비고사 과목에는 ‘지학’같은 생전 처음 보는 과목들도 있었다. 모르는 것은 선생님을 찾아 끊임없이 물었고, 걷거나, 밥을 먹으면서도 내손엔 영어 단어를 적은 쪽지가 있었으며, 수업 시간에는 책상 밑에 따로 입시 책을 놓고 공부했다.

 그러나 같이 밤 마실 다니던 친구들과 대부분의 선생님들도 도와주셨지만 담임선생님만은 그렇지 않으셨다.
2학기 때 매일 있었던 교련 훈련을 피해 대구 학원으로 간 나는 독서실에서 숙식하며 공부하고 있었는데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어느 날 아버지가 학원으로 찾아 오셔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셨다.

 그 때 아버지가 침통하게 하신 말씀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너희 담임선생님이 네가 대학 예비고사에 합격하면 열 손가락에 불을 켜고 하늘로 올라가겠다고 하셨다는구나“.

 나는 그 말을 쪽지에 써서 책상 앞에 붙여 두고 매일 매일 각오를 다지며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 지금은 대학생들이 부러워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공기업을 정년퇴직하고 편안하게 살고 있다.

선생님이 보고 싶다. 그 대학생과 담임선생님이 없었으면 지금 나의 행복한 삶도 없었으리라.

정혜선   14-02-05 04:16
    
어릴 적부터 열심히 사셨네요.
글도 이렇게 열심히 쓰시니 존경스럽습니다.
살면서 동기부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어요.
담임선생님은 교련시간에 빠진 것이 화가 나서 악담을 한 듯한데요,
"~하셨다는구나"하는 대화체를 보면 아버지께 직접 한 말은 아니었나봐요.
같은 반 친구가 출석을 요구하는 담임의 말을 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좋은 선생님 같진 않은데 오기로 공부하게 만들었으니
감사하다는 말씀이시지요?
그 부분을 조금  표현해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어느 대학생의 진심어린 조언과 엉터리선생님의 악담으로 성공하신 선생님!
멋지십니다.^^
이창원   14-02-05 22:25
    
이궁~~ 부끄럽습니다.  괜히 올렸나 봐요.
선생님이 같은 반 학생들에게 한 말씀을 친구들이 아버님께 얘기한 거지요.
아버지가 아들을 믿지 못하고 데리러  왔을 때, 낙담하셔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표정...지금도 생각나요.
아버진 쌀쌀한 날씨에 윗도리 잠바를 벗어주고 셔츠 바람으로 시골로 돌아 가셨어요.

옛날에도, 지금도 그 선생님을  미워한 적은 없어요. 오히려 지금은 보고 싶구요..큰 절도 하고 싶구요....
합격통지서가 학교로 왔을 때 아무 말씀도, 저도 인사도 못 드렸었거던요

항상 조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정혜선   14-02-06 04:53
    
잠바를 벗어주고 가시던 아버님의 모습과 심정...
생각할수록 뭉클해집니다.
그 선생님도 어지간하시네요.
제자한테 장하다고 한 말씀해주셨어야죠.

마지막에 그 부분을 대신 넣으면 어떨까요.
합격통지서를 받았을 때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없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미워한 적이~
그 부분이요.
훨씬 와닿는 내용인데요?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 선생님.^^
     
이창원   14-02-06 15:23
    
그렇군요..다시 수정해 보겠습니다.
부끄러운 글.....따뜻한 조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정화   14-02-06 09:35
    
안녕하세요, 이창원 선생님.
짧지만 한 인생이 담긴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무전여행을 하던 대학생은 왜 처음 보는 사람한테 대뜸 영어로 말을 한 건가요? 
그리고 담임선생님은 왜 굳이 자신의 학생을 향해 그런 악담을 던졌으며, 또 아버님은 왜 그 말을 아들에게 전할 걸까요?
물론 독자들이 전체적인 글의 분위기를 파악한 뒤 '아, 그런 거겠구나'하고 미루어 짐작하여 이해할 수는 있지만
글을 쓸 때는 읽는 이들이 앞뒤 사정과 이야기의 흐름을 자연스레 이해하도록 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은데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아무리 동기부여라고는 해도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그것이 하나의 도전이 되기도 하지만 무모한 일이 될 수도 있어서 때론 주위 사람들을 어렵고 당혹스럽게 만드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용기와 자질도 있으셨지만 가능성에 대한 판단력과 지치지 않는 끈기가 더욱 큰 성공의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곁들여지지 않으면 그저 하나의 성공담에 그치기 쉽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일상의 이야기들은 있는 그대로 풀어놓으시지만 선생님 본인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도 꺼내기가 멋쩍거나
수줍으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노력하고 도전해서 이뤄낸 성취이니, 지금 그 시기를 겪는
젊은이들에게 그 구체적인 선생님의 경험들을 제시해주시는 것도 대단한 동기부여가 될 것 같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이창원   14-02-06 15:40
    
감사합니다. 선생님^^
  일일이 설명을 하면 글이 길어질 것 같아서요^^
또 이 글은 원고지 10매 분량을 목표로 쓴 글이거든요.
주제는 '내 인생을 바꾼 모티브' 또는 '인생의 전환점'이랄까요?
뭐 그런 걸 생각하면서 쓴 글이라 많이 줄어 들었습니다.줄이고 줄이다보니....ㅠㅠ
문경자   14-02-07 15:05
    
반갑습니다.
처음 제목에
선생님 대학시절 무전 여행이야기
담임선생님과 같이 다녔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읽었습니다.
 끝까지 읽고 보니 이야기 실마리가 풀렸습니다.
선생님의 그 말씀이 나쁘게 들렸을 텐데 그 때 심정은
어떠했을까 .
아버지는 어려운 살림에 대학을 포기하라는 의미에서
선생님 말씀을 대신 하셨는지
잘 풀어 써시면 더 내용이 좋아 질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하는 내용이 들어가면 더 내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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