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꽃
고 둘 선
"아저씨, 팝콘 강냉이 큰 거 한 포는 얼마죠?"
"네, 이건 만 원입니다."
"그럼, 저기 마트에서 장 좀 보고 올게요!" 하곤 그 자리를 떴다. 창립 12주년이라 마트에서는 대대적인 할인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필요한 것만 구매를 해야지 생각은 하면서도 원 플러스 원, 큰 폭의 할인 행사를 하는 제품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손이 먼저 움직였다. 카트 안은 어느새 물건으로 한가득이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하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의지가 박약한 점도 단단히 한 몫을 했으리라.
장을 다 보고 계산을 하려는데 무릎이 안 좋은 내가 많은 물건을 들고 간다는 건 무리였다. 필요한 몇 가지만 손에 들고 배달 신청을 했다. 부피는 많이 나가지 않았지만 무릎에선 기다렸다는 듯 통증이 왔다. 외식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부엌의 수장으로서 가족들 저녁은 해먹여야겠기에 선택의 여지는없었다.
집으로 가는 길, 마트 옆 모퉁이에서 강냉이를 팔고 있는 아저씨를 불렀다. "아저씨, 제가 지금 무릎이 아파 강냉이를 같이 사들고 간다는 건 무리라 다음에 꼭 살게요."라고 말했다. 오십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설마, 사러올까? 그냥 해보는 소리겠지.' 반신반의 하는 눈치였다. 그만큼 사람들이 신뢰를 주지 못한 점도 있었겠지만 순간을 모면하고자 지키지 못할 약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버린 탓도 있으리라.
며칠 후 아저씨와의 약속을 지키려 그 자리에 다시 갔다. 그러나 아저씨는 없었다. 일주일의 시간이 더 흘렀다. 저녁 설거지를 끝낸 후 산책로에서 가볍게 걷기 운동을 하고 있는데 길 건너 트럭에서 강냉이를 파는 아저씨의 낮 익은 모습이 보였다. 가로등 불빛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 편안하게 쉴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한 낮에 보았던 모습과는 다르게 아저씨의 얼굴은 삶의 무게에서 조금은 벗어난 편안한 얼굴이었다.
"아저씨, 저 기억하시죠? 지난번에 강냉이 꼭 사간다고 했잖아요. 오늘 그 약속 지키려 왔어요. 한 포 주세요." 하고는 호주머니에서 만 원을 꺼냈다. 그리고 "오늘 저 약속 지켰어요!" 한마디 하고 돌아서려는데 아저씨가 덤으로 바가지과자 한 봉지를 더 주었다.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삶의 원칙이 무너질 것 같아 지키려 한 것일 뿐. 덤은 바라지도 않았다.
지켜야할 규칙, 크고 작은 다양한 약속은 우리네 삶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산업 현장을 비롯한 건설 현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위험이 곳곳에 도사려 있는 현장 일은 늘 안전제일에 유의해야 한다. 그 규칙, 악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엔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기도 한다. 남편은 건설 현장 30년 차 목수이다. 여기저기 현장 따라 떠돌아 다녀야 했던 남편은 몇 년 전 일을 하는 도중에 추락했다. 사고는 한 순간이었다. '안전제일' 네 글자만 새기고 있었어도 충분히 비켜갈 수 있었던 인재이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다.
내가 병원으로 달려갔을 땐 다행히 남편의 의식은 돌아와 있었다. 머리, 목, 어깨를 크게 다친 남편은 목보호대와 붕대를 동여맨 채 병원 응급실 하얀 침상에 누워 있었다. 초점 없이 천정만 쳐다보고 있던 남편은 모든 검사가 끝난 후 다음 날 아침 수술실로 들어갔다.
전광판에서 남편의 이름이 수술 중에서 회복 중으로 바뀔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중간에 의료진들이 나와 보호자를 찾지나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좋은 징조는 아닐 텐데. 그럴 땐 어떡하지? '걱정도 팔자라고' 아직 닥치지 않은 일까지도 이 세상 모든 신들을 소환해 가며 미리 걱정하고 있었다.
수술이 끝난 후 남편은 울부짖으며 포효했다. "먹고 살려고 노력한 죄 밖에 없는데. 내가 왜 이 고통을 당해야 하지? 전생에 무슨 업이 그렇게 많아서? 다시는 건설 현장 일은 하지 않을 거야. 아니, 뒤돌아보지도 않을 거야!" 하늘을 향해 지키지 못할 약속을 무섭도록 토해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 가슴이 찢어진다는 아픔이 그날 남편이 입고 있었던. 가위로 갈기갈기 잘려진 작업복 사이로 켜켜이 스며들어 흘러내리는 듯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통증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하지만 무거운 삶의 무게는 또 다시 남편의 양어깨를 짓눌렀다. 하루라도 일자리를 찾아 헤매던 남편은 결국 건설 현장으로 복귀했다. "다시는 건설 현장 일은 하지 않으리라." 그 말의 약속은 무산된지 오래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무언의 약속이나 한 듯 남편의 등에서는 어김없이 꽃이 피어른다. 그 꽃은 남편이 땀으로 그려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금 꽃이다. 소금 꽃은 기본 스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날 그 날의 땀으로 방향도 없이 무색으로 그려진다. 수분이 증발하고 땀의 결정체가 꽃으로 남아 있는 남편의 작업복은 어떤 일을 하는가에 따라 그려지는 그림도 달라진다. 날카로운 연장에 찢어지고 긁힌 자국, 실밥이 터져 있는 모습을 보면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한 편의 행위예술을 보는 듯하다. 뿌연 먼지에 실리콘 작업이 이어지고 먹줄을 놓다보면 당연히 작업복 위로 실리콘 얼룩에 먹물이 튀어오른다. 입체감이 돋보이는 유화가 그려지는 순간이다.
빨래를 하려다 보면 남편의 작업복 호주머니는 요술주머니마냥 생각지도 못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온다. 작은 모래알 먼지부터 시작해 몽당연필, 샤프, 나사못, 땀을 닦다 너덜너덜해진 화장지는 기본이다. 간혹 백 원짜리, 오백 원짜리 동전에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라도 보이는 날이면 횡재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꼬깃꼬깃 구겨진 채 약봉지가 툭 떨어지기라도 하면 한 집 안의 가장으로서 내려놓을 수 없는 무거운 삶의 무게의 비애감에 가슴 한 쪽이 저려온다.
딩동! 한 통의 문자가 들어왔다. 남편이었다. "언제 들어와?" "응, 지금 강냉이 사들고 들어가는 중이야." "그럼, 내가 마중나갈까?" "좋지."
통화가 끝나고 오 분쯤 지났을까. 너무도 익숙한 실루엣. 바로 남편이 산책로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남편은 내가 들고 있던 커다란 강냉이 한 포를 받아들었다. 짧은 거리였지만 남편과 함께 집으로 걸어가는 길의 행복은 두배로 튀겨진 듯한 느낌이었다. 가진 것 없어도 마음이 즐거우면 지옥도 천국인 것을. 이젠 남편도, 뻥튀기 아저씨도 떠돌이 생활에서 벗어나 한 곳에 정착하여 조금은 편안한 삶을 살아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