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집은 광화문에서 가오리로 이사 갔다. 걸어서 10분이면 학교에 갔는데 이사 가고 나니 한 시간이나 걸렸다. 훨씬 더 일찍 일어나 학교 갈 채비를 해야 했고 버스비도 꼭 챙겨야 했다.
어느 여름 날 방과 후 집에 가려니 호주머니에 있어야 할 버스비 5원 중에 1원이 온 데 간 데 없었다. 버스비가 모자라니 버스를 탈 수도 없고 어떻게 집에 가나를 궁리하니 난감했다. 막상 1원을 빌리려니 사정을 이야기할 만큼 친한 친구도 없었고 담임 선생님은 교실 안 책상에서 뭔가를 하시며 앉아계셨지만 잠시 선생님을 바라다만 보고 교실을 나와 버렸다. 학교 근처에 친척집이 있기는 하나 거기 가서 말하는 거도 싫기는 마찬가지였다.
‘ 그냥 집까지 걸어가자 ’ 버스 다니는 길로만 그대로 따라 걸어가면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집까지 가는데 문제없지 싶었다. 광화문 사거리를 건너 중앙청을 지나 안국동을 지나고 비원을 지났다. 비원을 지나니 창경원의 높은 담벼락이 시작된다. 당시 어린이들의 꿈의 공간이었던 창경원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창경원 담 벽을 따라 걸어가며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의 소리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특히 창경원 안에서 사는 새들은 정말 특이하고도 다양한 소리를 내며 노래하고 있었다. 악기를 연주하는 듯한 새소리들도 있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원숭이, 호랑이, 사자, 공작새 등의 신기한 동물들, 연못, 그 위의 정자, 그리고 언젠가 창경원 안의 매점에서 큰오빠랑 처음으로 마셨던 콜라의 강하게 쏘는 맛 들을 기억하며 걸었다. 집에 걸어가기로 마음먹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1원을 잃어버려 한심하단 생각을 밀어냈다.
창경원을 지나고 혜화동 로타리를 돌아갔다. 혜화동을 지나 삼선교, 돈암동을 지나니 다리가 슬슬 아파왔다. 시간을 재진 않았지만 어느 새 한 시간 넘게 걸어왔지 싶었다. 우리 집으로 가는 버스들이 하염없이 집을 향해 걸어가는 내 눈 앞을 잘난 척 하듯이 휙휙 지나가버리곤 했다.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을 확인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