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배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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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의 노모는 내가 환갑의 나이가 될 때까지 내 곁에 계셨다.
짧지 않은 모녀지간의 시간이었다.
결혼하여 시댁에서 산 몇 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친정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아 어머니와 특별히 떨어져 산 느낌이 별로 없다. 어머니 편에서도 젊은 시절엔 하나 뿐인 딸의 존재를 그다지 의식하지 않고 사셨는데, 아버지 사후 15년간은 세 아들 모두 모실 사정이 못돼 딸인 내게 오로지 의지하여 사셨다. 비록 같이 모시고 살진 못하였지만 5분 거리에서 늘상 들락거리며 어머니 의식주를 챙겼다. 노년의 ‘홀로서기’는 당신과는 애초 상관없는 일인 듯 어머니는 자식들에게만 집착하셨다. 특히나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 장남에게. 가족 외의 다른 주위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 별 의미를 두지 못하셨던 건 아마 실향민이라 그러신 점도 있으리라. 딸에게 무얼 그리도 원하셨는지 자신도 없으시면서 당신은 늘 독거노인이라 주장하셨다. 모녀 사이는 애증관계라고들 하지만 우리는 툭하면 아웅다웅하다 늘 웃으며 결론은 같았다. ‘엄마와 나는 안맞아.’
어느 날 부턴가 어머니는 생명 에너지가 다 소진된 듯 더 이상 홀로 걷질 못하고 수저 들 힘조차 사라졌다. 모두에게 망막하게 다가오는 병명, ‘노환’으로 입원하셨다 퇴원하셨다를 몇 번 되풀이하셨다. 요양병원은 당신 같은 분은 결코 가지 않는 곳으로 평소 치부하셨지만, 마지막 퇴원 시 집보다는 의료조치를 바로 받을 수 있는 요양병원으로 입원하셔야 한다는 의사 권유에 한마디 항의도 하시진 않았다. 그러나 불운이 닥친다. 첫날, 취침 중 막무가내 고함지르는 습관을 가진 할머니가 옆 침상에 있는 방에 배정되어 밤새 한숨도 못 주무시고, 그에 따라 다음날 처방된 수면제가 고령의 노인 신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과잉처방이 되어 치명적인 쇼크상태를 겪었다, 불과 나흘 만에 지방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응급실 도착 시 소생 확률은 20%정도였으며 호흡기가 장착된 채 이 후 41일 간 중환자실에서 연명치료가 이어지게 되었다. 그동안 주위 사람들의 비슷한 경험을 들어는 왔지만, 의료 처치상으로는 너무나 당연히 필요한 호흡기 장착은 그러나 고령의 노인에게는 마치 마지막 남은 생명을 쥐어짜고 옥죄는 고문기구처럼 보였다. 41일간 실낱같은 회복을 기다리며 할 수 있는 온갖 의료처치들이 행해졌으나 소용은 없었다. 지나고 보면 하나의 몸이 죽음에 다가가는 것을 오직 막고 늦추기 위해 동원되는 의술이란 비록 죄 아니나 생명모욕이며 허망한 낭비라 할 만하다. 마지막에 호흡기 분리를 문의했으나 의료법상 불가능하다고 해서 돌아가실 때까지 부착되어 있었다. 그토록 잔혹한 호흡기를 달고 41일.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불행의 무게조차 가늠되지 않았으나 그러나 행복하게 사시던 당신의 집에서 단 며칠이나마 자식들과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의 말이라도 나누고, 또 마지막으로 목욕시킨 깨끗한 몸으로 가시게 해 드렸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무력한 의술은 우리에게 인사할 시간도 주지 않는다.
그 모든 예고와 작정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죽음은 돌연히 닥친다.
마지막 직전 한 점, 한 순간, 생의 종착에서 영원히 이별해야 할 때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한 채 인사하며 헤어져야 하는 게 아닐까?
더 이상 세상에 없는 당신 앞에서
이제 유구무언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하는데 우리는 당신을 어디에 묻나요?
차마 떨리는 입술로 엄마를 불러 볼 수 있을까?
편지를 씁니다.
엄마 이제 이별을 해야 해요,
엄마, 어머니, 우리 오마니
‘하나님 만날 준비 되신거지요?’
아직은 내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마지막 이 질문은 끝내 미루었고.
듬뿍 주지 못한 내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눈꼽만한 사랑, 생색내는 참 치사한 사랑이었네요.
60을 바라보는 자식들은 눈 못뜨고, 말도 못하는 엄마 앞에서
청개구리처럼 이제야 엄마 살려 보려고 허둥대고
못된 호흡기를 41일이나 달아 놓고 기다렸습니다 .
하루 2회, 30분 면회, 1초라도 더 보려고,
손을 잡고, 안아주어도 반응 없는 어머니 당신을 붙들고
단 한번만이라도 눈 뜨기를 고대하며
어쩌면 그리 청개구리를 닮았는지요.
엄마의 배웅길
언젠가 우리를 마중 나올 날을 기다리며
이제 당신을 떠나 보냅니다
당신을 더 사랑하기 위해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아무 것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