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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이 열린 밝은 세상    
글쓴이 : 김은비    26-07-08 10:07    조회 : 44

문이 열린 밝은 세상

 

김은비

 

1990년대 초 125일 한 겨울.

충청남도 홍성의 어느 산부인과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머리에 혹이 있어서 태어나자마자 일주일 만에 뇌 수술을 받아야 했다. 비정상적으로 태어난 아이는 인큐베이터에 갇혀있어야 했다. 이것이 내가 세상에 태어나고 처음 본 빛이었다. 빛을 보자마자 뇌의 이상으로 뇌병변 중증 장애인이 되었다. 신생아 때 인큐베이터에 갇혀있었던 영향으로 자라는 줄곧 답답한 생활을 면치 못했다. 유아기 때는 몸이 약해서 병원 응급실을 들락날락하느라 유치원도 못 다녔다. 집에서 늘 인형들하고 놀아야 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직접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재택학습을 받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특수학급이 있는 일반 학교에 등하교했지만 나의 세상은 다른 아이들의 세상과는 전혀 달랐다. 휠체어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체육대회에서 볼 수 있는 아이들의 활발함과 하교하고 또래들끼리 떡볶이 먹는 즐거움을 같이 누리지 못했다. 아이들을 직접 만나면서 학교에 다녔지만 무언가 내가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다른 세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나 자신이 답답했다. 스스로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못 여는 것 같았다. 항상 궁금했다. 비장애인들의 다른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조금씩 걸어가 보기로 했다.

20대 초 시절, 그 나이대만이 느낄 수 있다는 풋풋함이 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1년 더 재수하고 대학교에 들어갔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학과 특성도 안 맞았고, 바쁜 일정에 따른 체력적인 한계에 1년도 채 못 다니고 자퇴했다. 세상으로 나가는 문은 생각보다 견고했다. 여기서 주저앉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밖으로 향하는 문을 조금이라도 열고 싶었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집에서 매일 재활 운동을 했다. 그러던 중, 장애인들에게 안정적이고 좋은 직업이라면서 지방직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주변에서 권유받았다. 그렇게 2015년에 공무원 수험 생활을 시작했다.

수험 생활은 달콤한 편이었다. 공무원이 되면 밖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돈도 벌면서 평생직장을 가질 수 있다는 꿈이 그렇게 달콤할 수 없었다. 손은 마음과 달리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다. 2017년까지 공무원 필기시험 장애인 편의 지원 제도에 답안지 대필 지원 신청은 없었다. 힘이 없는 손으로 직접 필기를 뚫을 수 없었다. 2018년에 답안지 대필 지원이 생기고 시험 접수할 때 꼭 신청했다. 더욱 악착같이 공부해서 바로 그해에 필기를 통과했다. 마음이 너무 성급했던 탓일까. 바깥세상으로 향한 문은 생각보다 꽉 닫혀 있었다. 면접에서 미흡을 받고 미흡 대상자로 명단에 올라 추가 면접에서도 미흡을 받아 최종 탈락을 했다. 처음 겪는 일이니 내가 부족했겠지라고 생각하고 2년 준비를 더 해서 2020년에도 공무원 시험을 봤다. 결과는 2018년과 똑같았다. 면접 대기실에서 면접 평정표에 내 이름과 수험번호를 적을 때 들린 다음에는 면접 평정표에도 대필 신청할 수 있어요라고 말한 면접 안내원의 말은 환기가 되지 않는 면접실로 나를 이끌었다. “최종 합격을 하면 출퇴근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면접관의 질문이었다. 면접실 안에서의 면접관들과 나의 어색한 공기는 조금도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했다. 면접이 끝나고 나와 엄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더운 여름인지라 그날은 더 후덥지근했다. 나는 조금도 바깥으로 향하는 문을 열지 못했던 것이다. 7년 동안 공무원 수험 생활 중에 있었던 두 번의 필기 통과와 네 번의 면접 미흡으로 인한 최종 탈락의 결과는 아예 문조차 만지지 못하도록 나를 주저앉혔다.

내가 주저앉아 있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강산이 변하듯 30대가 되었다.

나는 아직 세상을 향한 희망의 빛을 놓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소통하는 꿈도 여전히 품고 있었다. 7년간의 공무원 시험 준비로 날린 돈도 메꾸고, 나이에 맞게 경제생활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중증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재택근무를 찾아냈다. 계약직이었지만 사무보조 업무를 맡아 일을 했다. 사회인으로서의 당당한 첫걸음이었다. 백만여 원의 급여를 받아 부모님께 밥을 사드렸다. 계약이 다 끝나고 퇴직금도 타는 성취감과 기쁨도 맛봤다. 지금도 계약직으로 재택근무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일을 책임감 있게 잘하고 성실하다는 칭찬을 여기저기서 받으면서 말이다.

돈을 벌게 되자 여유가 생겼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어릴 적부터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는 칭찬을 받은 기억을 되살려 뒤늦게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편입했다. 사이버 대학교에서 매우 부족하지만, 글에 관해서 공부도 하고 써내려 가는 과정이 너무나 즐거웠다. 학과 내에 있는 창작 동아리에도 가입했다. 문우들과 따끔한 합평을 주고받기도 하고 서로에게 따뜻한 응원을 전하기도 한다. 직접 학교에 가지 않아도 가능한 사이버대학이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 비록 밖과 안의 다른 세상이지만, 중증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나누는 사랑과 온기는 그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집에만 있다고 세상과 단절되는 것은 아니었다. 문은 바깥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내 마음 안에도 굳게 닫힌 문이 있었다. 그 문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 그 문을 열 때 진정한 소통도 가능한 것이라는 걸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직업, , 명예, 지위, 우월한 힘도 아닌 사람들 간에 서로를 위하는 진심 말이다. 그 진심을 느낄 때 세상은 힘을 잃지 않고 밝게 빛날 수 있다.

앞으로도 열린 문으로 눈 부신 빛을 내 온몸에 가득 안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나아가길 나 자신에게 굳게 약속한다.

 

문을 활짝 열고 나가자. 세상의 눈 부신 빛을 내 안으로 다 끌어들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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