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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에 관한 소론    
글쓴이 : 박태원    14-02-23 12:13    조회 : 3,752

불법에 관한 소론


   法門 박태원


불법에 관하여 진리와 행이 어떠한가를 論의 형식으로 설명한다.

1.自性論

자성이란 나의 생각,감정,행동,욕망과 사랑 등 知,情,意의 본래 성품을 의미한다.

자성은 본래 청정하다. 正定이며 眞空妙有하다.

번뇌는 자성의 발동형상인 知情意이나 자성이 청정한 성품임을 깨닫게 되면

번뇌도 본래 청정한 것이다. 번뇌는 곧 반야보리인 것이다.

반야보리의 발현으로서의 지정의는 그대로 보살의 대자대비행이 된다.

자성이 청정하므로 보살의 지정의는 머물지 않고 집착이 없다.

여실하게 法界를 보며 어리석은 생각과 감정을 일으키지 않으며,

번뇌를 실체로 생각하고 집착하여 고뇌하는 중생을 지혜롭게 인연따라

구제할 수 있는 것이다.

보살도를 순숙하면 대덕성 대지혜인이 되어, 공덕이 원만하고 고상한 인격자로 완성된다.

2.修證論

자성을 증득하는 것을 깨달음이라 한다.

동요하는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한 곳에 집중하여 번뇌를 가라앉히고 고요한 空에 들어가 妙悟를 증득하는 것이다.

단계별로 진행하거나 곧바로 들어가 수습할 수도 있다.

相分,見分,自證分,證自證分의 단계가 있는데, 자증분이란 내가 나를 보는 것이며, 증자증분은 始覺과 本覺이 합일된 妙覺이다. 一合相은 이름을 굳이 붙인 것이지 그런 형상이 있는 것이 아니다.

화두의단이 순일해지면 생각이 일어나지 않고 몸과 마음을 잊으며 무기에 빠지지 않으며 성성하고 적적한 가운데 법열을 즐기게 된다.

생각과 감정과 몸이 허공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해탈하려 해도 속박한 것이 없는 것이다.

화두를 의심하는 것을 간화선이라 하는데, 이것이 빠른 경절문이다. 원돈문이란 단계별로 증득해 나가는 것이다. 즉 불교의 이치를 공부하고 事 즉 육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다.

간화선을 통해서 자성을 증득하면 理事에 걸림없이 보살행을 하기에 경절문이라고 한다.

간화선은 어떻게 참구하여야 하는가

간화선은 화두를 의심하면서 이치를 이해하거나 감정을 다스리고 몸을 경안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화두를 의심하면서 심의식의 변화를 체험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화두를 참구하면서 집중과 의단이 뭉쳐져서 정신세계를 바로 초탈하는 것이다. 심의식, 지정의가 발동하기 이전의 적정무위의 세계를 깨닫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자성이다.

화두의단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영감을 얻듯이 문득 자성과 합일할 수 있다. 정신세계의 개벽을 얻으려면 좌선을 통해서 몸,뜻,감정을 평안히 다스리고 취침 중에도 화두의심을 해야한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참구할 때 의단이 지속되는 것이다.

화두를 의심하되 낙처가 무엇인지 의심의 포커스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의단의 포커스를 잃고 의식적으로 궁리하여 찾으려 하면 안된다. 다시 처음부터 좌선을 통해서 몸과 감정, 뜻을 평안히 가라앉혀야 한다. 고요한 가운데 낙처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혜암현문 선사의 문중에서는 검산법문, 수미산 화두, 무자 화두, 이뭣고 화두를 주로 참구한다.

자성을 깨닫고 나서는 보임을 하고 공을 들여야 한다.

확철대오를 하였다면 理事無碍 즉 지성과 감성의 조화를 이루어 대자대비의 보살행을 하여야 할 것이다.

성철선사는 본지풍광을 저술하여 주옥같은 공안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간화선을 수행하거나 깨달은 수행인이 보임하고 공을 들일 때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3.功德論

공덕이란 자성을 증득하고 지혜와 자비를 구족하는 것이다.

언제나 일상사에서 자성을 떠나지 않으므로 머물지 않고 집착없는 대자유인의 삶을 살게되고 반야지혜로 대원경지를 발휘하니, 세상사를 관조하여 중생을 미망에서 구할 수 있다.

번뇌가 허공꽃과 같은 줄 알며 보리반야가 작용하니 지혜롭고 청정하다.

몸과 마음을 갈무리하여 덕을 기르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自利利他行에 편안히 머무르니 三空(아공,법공,구공)을 증득했기 때문이다.

4.반야론

보리반야, 반야지혜라고 하는데 그 실상이 무엇인가.

금강경에서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으면 반야바라밀을 증득한다고 한다. 相을 相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나타난 현상이 신기루같고 그림자와 같고 파도와 같으니 실상은 모두 자성의 작용일 뿐이다.

水不離波 波不離水이니 물이라는 자성이 일어났다 사라진 것이다.

한생각 일어나면 相이요 無念이면 본성으로 돌아간 것이다.

원효대사는 대승기신론소에서 진여는 무념의 여래장이며 空여래장, 不空여래장이라고 설명한다.

여래장은 아뢰야식의 바다이며, 반야지혜가 의거하는 곳이다.

여래장을 떠나서 반야지혜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아뢰야식에 의거해서 지혜가 발현되므로 불공여래장이다.

아뢰야식이 반야지혜가 아니므로 진여는 공여래장이다.

진여를 체득하면 무명이 없는 것이다. 반야지혜가 어두우면 我相이 있어 제7말라식이 제8아뢰야식에 의거해서 경계6식을 나를 중심으로 분별 판단하게 된다. 반야지혜는 자성을 여의지 않으며 평등한 가운데 차별을 보고, 집착하지 않고 머물지 않는 사유를 의미한다.

원효대사는 금강삼매경론서에서 머물지않는 사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무릇 일심의 근원은 유무를 떠나 홀로 깨끗하며 三空의 바다는 眞.俗을 융화해 맑다.

맑으므로 진.속의 둘을 융화하였으나 하나가 아니요, 홀로 깨끗하므로 有.無의 邊을 떠났으나 中이 아니다.

中이 아니나 유.무의 변을 떠났으므로 있지 아니한 法이나 곧 無에 住着하지 않고, 없지 않은 모양이나 곧 有에 주착하지 않으며,

하나가 아니나 진.속의 둘을 융화하였으므로 眞이 아닌 일이 비로소 俗이 되지 않고, 俗이 아닌 理가 비로서 眞이 되지 않으며

진.속의 둘을 융화하였으나 하나가 아니므로 진속의 性이 존립하지 않는 바 없고, 染.淨이 모양을 갖추지 아니함이 없으며

유.무의 변을 떠났으나 中이 아니므로 유.무의 법이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고 시비의 뜻이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破함도 없고 파하지 않음도 없으며

존립함도 없고 존립하지 않음도 없으니

가히 이치없는 지극한 이치요

그렇지 않지만 크게 그러한 것이다.

즉 반야일심은 不住열반하며 絶言之法이다.

범부와 성인, 생사와 열반은 같은 것도 아니지만 다른 것도 아니다.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없는 것도 아니다.

같지도 아니하고 다르지도 아니하다

얻는 바가 없으면서도 얻지 아니한 바가 없다

들어가는 바가 없으면서도 들어가지 아니한 바가 없다

떠날 것이 없으므로 떠나지 않을 것도 없으니 大滅이요

도착할 것이 없으므로 도착하지 않은 것도 없으니 大度이다.

5. 우주론

욕계,색계,무색계의 三界는 사람의 감정과 육체와 정신세계이며 소우주인 동시에 전체 우주의 생성소멸의 이치와 다르지 않다.

시간은 빛이라는 물질에너지를 매개로 하여 거리와 위치에 따라 상대적으로 과거현재미래가 있게 된다. 지구에서 현재 바라보는 은하수는 수억광년을 지나온 과거의 빛이며,현재의 지구의 빛은 다른 행성에서는 아직 보지 못하는 미래의 빛이다.

팽창하는 우주는 과거현재미래의 삼계가 있지만, 축소하여 일점 불랙홀이 된다면 거리가 없고 상대성이 없어져 시간이 소멸한다.

물질마저 소멸하고 빛도 따라서 없어지면 시간과 공간이 없는 태초의 우주의 시원이 된다.

이것은 자성을 깨달음과 같다. 진공묘유인 것이다.

질량과 빛이 없지만 우주를 생성할 수 있는 무한대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선가에서 집중을 통해서 삼계의 번뇌에서 해탈하고 空한 가운데 妙覺을 증득하는 것과 같다.

불교에서 우주를 事事無碍法界라고 한다.

이것을 설명하는 이치는 화엄경의 六相圓融說, 十玄緣起說, 법화경의 十界互具說, 一念三千說이 있다.

이것은 의상대사의 법성게인 一微塵中含十方 一卽一切多卽一 이며, 겨자씨에 수미산을 넣고 한생각도 일으키지 않을 때 허물이 수미산인 도리와 같다.

즉, 자성은 만물을 포용하며 만물은 자성으로 귀일한다. 제법실상이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1) 육상원융설(六相圓融說)

법계는 원융무애하며 유기체로서 상즉상입하여 무진연기한다.

一卽多多卽一의 연기의 이치는 평등과 차별이 원융무애하다.

즉, 總相과 別相, 同相과 異相, 成相과 壞相이 원유무애하며 조화 통일을 완성한다.

(2)十玄緣起說

법계는 원만무애하며 사사무애하다.

同時具足相應門

동일본성이 상즉상입하여 다른 형태로 연기하여 조화와 질서를 이룬다.

廣狹自在無碍門

자성은 부분과 전체에 상즉상입하여 자재로이 융합하여 무장무애하다.

즉, 광즉협 협즉광이다.

一多相容不同門

같은 본성을 지녔으므로 다르면서 같고 같으면서 각각 다른 존재로서

一多無碍하다.

諸法相卽自在門

자성은 모든 법에 상즉하여 자재하다.

隱密顯了俱成門

하나가 드러나면 하나가 숨어서 겉과 속이 일치하니 은현이 동시이며 미묘하게 상즉상입한다.

微細相容安立門

거울이 일체 영상을 비추듯이 一多.大小가 원융하여 현상을 유지하니 미세한 것을 용납하여 일체법이 일시에 나타난다.

因陀羅網境界門

자성은 법계에 상즉상입하여 연기가 중중무진하다.

託事現法生解門

연기가 事法에 의지해서 무진법문을 시현한다.

十世隔法異成門

일념즉무량겁 무량겁즉일념이어서 상즉상입 중중무진 연기이지만 구세 가 각각 다르며 전후장단의 다른 모양을 지닌다.

10世=3世x3세+전체一世

主伴圓明具德門

만법은 주객이 명확하며 일즉다 다즉일 로서 상응,상용,상즉하여 만덕을 갖춘다.

(3)十界互具說

불.보살.연각.성문.천인.아수라.인간.축생.아귀.지옥의 十界는 각각 역시 十 界를 구족한다.

(4)一念三千說

삼천대천세계도 일념(일심)에 귀일하고, 일념이 삼천대천세계를 연기 생 성한다.

6.體用論

중국화된 불교인 선종은 체와 용, 본체와 작용, 定과 慧가 둘이 아님을 설한다.

고준하고 어려운 불교를 대중의 현실세계로 일상화시켰다.

불법은 평상심이다. 無念이 體요 한생각 일으키는 것이 用이다.

水不離波 波不離水라서 파도와 물이 둘이 아니다.

자성을 증득한 선사는 밥짖고 나무하는 것등 일상사가 불성의 작용이다

무위심으로 집착하거나 이기적인 분별없이 한가한 마음으로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다.

선사는 본분을 지키고 본분사를 설법하여 미망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다.

7.공안탁마

성철스님의 본지풍광에 나오는 공안에 문답하는 형식으로 자성을 탁마하여 본분을 지키며 보임하고 공을 들여 반야지혜의 검을 닦고자 한다.

(1) 목주스님이 중을 불러,

“대덕이여.”

하니, 중이 머리를 돌리자 목주스님이 말하였다.

“판대기 짊어진 사람이로다.”

탁마 : 목주 스님의 의중이 무엇인가?

법문 : 습득이 한산을 그리워하나 도무지 소식이 없구나

(2) 鎭州 금우스님이 날마다 스스로 밥을 지어 대중에게 공양하였다. 밥 때가 되면 밥통을 메고 僧堂 앞에 와서 춤을 추며 크게 웃으면서 말하였다.

“보살들아, 밥 먹으러 오너라.”

탁마 : ..................한마디 이르십시오

법문 : 별총총 깊은 밤 하늘이 땅과 닿으니

별을 따던 다정한 이는 깊은 잠에 들었구나

꿈결에 선녀가 이슬을 머금고 다가서니

문득 꿈에서 깨어났거늘 어찌 다시 별을 따리오

(3)풍혈스님에게 어떤 중이 물었다.

“말하거나 묵묵함이 離徵에 포섭되니 어떻게 하여야 통탈해서 犯하지 않겠습니까?”

“항상 생각하노니, 강남 삼월에 자고새 우는 곳에 百花가 향기롭더라.”

탁마 : “말하거나 묵묵함이 離徵에 포섭되니 어떻게 하여야 통탈해서

犯하지 않겠습니까?”

법문 : 훈풍이 시나브로 불어오니

뜰앞의 매화가 앞다투어 피는구나

(4)향림스님에게 어떤 중이 물었다.

“어떤 것이 방안의 한 개 등불입니까?”

“세 사람이 거북을 증명하여 자라로 만든다.”

탁마 : "세사람이 거북을 증명하여 자라로 만든다" 라고 하니 무슨 뜻인가?

법문 : 긁어서 부스럼을 만든다

(5)현사스님이 蒲田縣에 이르니 백가지 놀이로 영접하였다. 다음 날 소당장로에게 물었다.

“어제 그렇게 시끄러웠던 것이 다 어디로 갔습니까?”

소당장로가 袈裟 자락을 들어 올리니, 현사스님이 말하였다.

“전혀 틀렸습니다.”

탁마 : 어제 그렇게 시끄러웠던 것이 다 어디로 갔습니까?

법문 : 짝!

"전혀틀렸습니다"

법문: 짝!짝!

(6) 목주스님이 한 중이 오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現成公案하니 그대에게 三十 방망이를 때리노라.”

“제가 그렇습니다.”

“山門 앞 금강신장이 어째서 주먹을 세워드는가?”

“금강신장도 그렇습니다.”

목주스님이 갑자기 그 중의 등을 때려서 쫓아버렸다.

탁마 : 산문 앞 금강신장이 어째서 주먹을 세워드는가?

법문: 퍽!퍽!

(7) 어떤 중이 수산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佛法의 큰 뜻입니까?

“초나라 왕성의 汝水가 동쪽으로 흐른다.”

탁마 : 어떤 것이 불법의 큰 뜻입니까?

법문 : 매봉에 해가 걸리고 성긴 머리털 사이로 잔설이 분분하다

암자에 어둠이 덮이니 부시시 허리를 세우고 촛불을 켠다

(8) 운문스님에게 어떤 중이 물었다.

“어떤 것이 正法眼입니까?”

운문스님이 답하였다.

“넓다.”

탁마 : 어떤것이 정법안 입니까?

법문 :악!

(8) 협산스님에게 어떤 중이 물었다.

“어떤 것이 협산의 境界입니까?”

“원숭이는 새끼를 안고 푸른 봉우리 뒤로 돌아가고,

새는 푸른 바위 앞에서 떨어진 꽃을 무는구나.”

탁마 : 협산의 경계가 어떠한가?

법문 : 하얀 안개는 산허리를 돌아가고

목동은 황소등에 앉아 풀피리를 부는구나

“부산이 말하기를, ‘물소가 달 구경 함에 문채가 뿔에 생기고, 코끼리가 우레 소리에 놀라니 꽃이 잇빨에 들어간다’고 하였으니 또한 어떠합니까?”

“그대가 또 호떡에서 즙을 짜는구나.”

탁마 : 무슨 허물이 있는가?

법문 : 낙엽이 떨어지는데 지붕 위에 꽃이 피고

서리를 밟고 지나가니 둥근달이 산끝에 걸렸구나

투자 청선사가 頌하였다.

달 밝은 푸른 소나무에 학은 꿈이 길고

푸른 하늘 붉은 계수나무에 羚羊 뿔이 걸렸다.

바위 높아 깍아지른 절벽인데 천봉우리 눈이요

돌 죽순 가지 나니 한 밤중 서리로다.

탁마 : 댓구를 읊어보십시오

법문 : 은빛 푸른 강위에는 잉어가 펄쩍거리고

별도 잠든 구름 끝에 어머니의 미소가 피었다

잔설 쌓인 산머리에 하나 둘 등불이 켜지면

백설기 머리에 이고 고양이 소리를 밟는다

보봉 상선사가 頌하였다.

옛 거울을 다시 갈아 또한 새로우니

한번 칼집을 나옴에 한번 사람을 놀라게 한다.

석두성 아래 바람과 우레 소리치니

늙고 늙은 큰 스님이 요긴한 나루를 잡았네.

탁마 : 댓구를 읊으세요.

법문 : 긴수염을 쓰다듬으며 강가를 산책하니

발자욱 소리 졸던 오리를 깨운다

물안개 쓸고 가는 미풍은 꽃으로 피어나고

멀리서 어부가 그물을 거두어 드린다.

천동 각선사가 상당하니 어떤 중이 물었다.

“협산이 말하되, ‘원숭이는 새끼를 안고 푸른 산봉우리 뒤로 돌아가고, 새는 바위 앞에서 떨어진 꽃을 문다’ 고 하였는데, 법안이 말하기를 ‘내가 二十년 동안을 다만 境界를 보인 말로만 알았다’ 하니, 境界를 보인 말로 알지 않으면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각 달은 성긴 수풀에 떨어지고 흰 구름은 깊숙이 돌을 감싼다.”

탁마 : 댓구를 읊으시오

법문 : 하루종일 드리운 안개가 등불을 감싸고

산그림자는 강물위에 집을 짓는다

(9) 암두스님이 佛法 沙汰를 만나서 ?渚 호수가에서 뱃사공 노릇을 하였다. 양쪽 언덕에 각각 판대기 하나씩을 걸어 놓고, 어떤 사람이 호수를 건너려고 할 때 판대기를 한번 치면 암두스님이 “누구요?” 하였다. 그 사람이 “저쪽으로 건너 가려하오” 하고 하면, 암두스님이 이에 노를 들어 춤추며 그를 맞이하였다.

어느 날 한 노파가 아이를 안고 와서 말하였다.

“노를 잡고 춤추는 것은 묻지 않거니와, 나의 팔에 안긴 이 아이는 어디서 얻어 왔는가를 말해 보시오.”

암두스님이 문득 뱃전을 세번 때리니 노파가 말하되,

“내가 일곱 아이를 낳아 여섯은 아는 이를 만나지 못했는데 이 한 아이마저도 또한 얻지 못했다.”하고는, 갑자기 물속에 던져버렸다.

응암 화선사에게 어떤 중이 물었다.

“노를 잡고 춤추는 것은 묻지 않거니와 노파의 팔에 안긴 이 아이는 어디서 얻어 왔는가를 말해보시오 하자, 암두가 뱃전을 세 번 두드렸으니 그 뜻이 어떠한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뜨거운 벽돌을 치니 속까지 얼었도다.”

법문 : 노파의 입을 봉하다.

“당시에 만약 스님께 물었다면 어떻게 대답하셨겠습니까?”

“한 몽둥이로 때려 죽였을 것이다.”

법문 : 자비가 넘치는구나

“노스님이 모자를 살 때 머리를 재는 것과 같습니다.”

법문 : 죽은자는 말이 없다

“그대는 어느 곳에서 암두를 보는가?”

“찌르겠습니다(箚).”

법문 : 할!

“엉터리 선객이로구나.”

법문 : 500대중을 거느릴만 하다

“노파가, 일곱 아이를 낳아 여섯 아이는 아는 이를 만나지 못하였더니 이 한 아이마저도 얻지 못했다 하고 갑자기 물속에 던진 것은 또한 어떠합니까?”

“분별없이 자만함이로다.”

법문 : 이것이로다

“암두가 모르는 사이에 혓바닥을 내민 뜻이 어떠합니까?”

“즐거운즉 같이 기뻐함이로다.”

법문 : 천둥 번개가 서로 따라온다

(10)운문스님에게 어떤 중이 물었다.

“나무가 마르고 잎이 떨어진 때는 어떠합니까?”

“몸이 가을 바람에 드러났느니라.”

탁마 : 나무가 마르고 잎이 떨어진 때는 어떠합니까?

법문 : 바람이 부니 풍경이 운다.

(11) 조주스님에게 어떤 중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주입니까?”

“동문, 서문, 남문, 북문이니라.”

법문 : 조주城은 난공불락 이구나

(12) 남전스님이 대중에게 말하였다.

“같고 같다고 부르면 벌써 변했으니, 요즘 사람은 모름지기 다르고 같은 가운데로 行함을 행할지로다.”

탁마 : 다르고 같은 가운데로 행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

법문 : 내일 대비원에서 재가 있다.

조주스님이 僧堂 앞에서 남전스님을 만나 말하였다.

“다른 것은 묻지 않겠습니다만 어떤 것이 같은 것입니까?”

남전스님이 두 손으로 땅을 짚으므로 조주스님이 발로 한번 밟으니 남전스님이 땅에 거꾸러졌다.

탁마 : 같은 것이 어떤 것인가? 라고 물으니 남전이 두 손으로 땅을 짚은 뜻은 무엇이며, 조주가 어째서 발로 밟았는가?

법문 : 사람을 속이지 말라.

조주스님이 延壽堂으로 달려 들어가 소리쳐 말하였다.

“뉘우친다 뉘우친다.”

남전스님이 시자를 시켜 물었다.

“무엇을 뉘우치는가?”

“두번 밟아 주지 못한 것을 뉘우친다.”

탁마 : 두번 밟아 주면 다를 것이 있는가?

법문: 여여라 하여도 이미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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