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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수가 부른 운    
글쓴이 : 이상호    24-03-30 11:31    조회 : 396

실수가 부른 운

  

 

흔히들 인생은 운칠기삼이라고 한다. 그 만큼 인생에서 운이 많이 작용한다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나는 횡재수나 추첨운은 없는 편이다. 평생 경품에 당첨되어 본 적이 거의 없었고 중, 고등학교 추첨에서는 두 번 다 집에서 멀고 평판이 별로 좋지 못헀던 학교에 배정되었다.

35년 전 일이다. 팀장이 복권 한 장을 사 달라고 하여 사는 김에 내 것도 한 장 샀다. 돌아오는 길에 어느 걸 팀장을 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생각하다가 왼 쪽 걸 드렸다. 왼쪽 걸 드린 건 아무래도 오른쪽이 운이 좋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팀장은 2등 백만원 당첨, 내 건 꽝이었다.

그러게 내게 운이 올 리가 없지.’   

비슷한 시기에 재형저축 만기가 되어 목돈이 생겨 J은행주식을 사려고 근처의 증권회사에 갔더니 고등학교 동창이 창구에 앉아 있었다. 계좌를 개설하고 J은행주식을 사 달라고 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한 달 후 거짓말처럼 그 주식이 100%가 올라서 팔려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J은행 그거 많이 올라서 팔란다. 다 팔아도.”

그거 10% 올랐을 때 팔아서 다른 주식 샀는데.”

“……”

결과는 다른 주식이 10% 내려 원금 그대로였다. 분명 친구에게 일임매매를 한 적도 없었는데 친구가 자기 마음대로 매매를 해버렸다. 눈 앞에서 소나타 한 대가 날아갔지만 제법 친했던 친구였기에 말 도 못하고 속만 태웠다. 그렇지만 그 일을 누구에게도 말은 하지 않고 그날 밤 깡소주로 쓰린 속을 달랬다.

30년 전 대학원 동창회 연말 모임에서 마지막 타임에 경품행사가 있었다. 5명에게 상품을 주는데 1등 상품이 홍콩 왕복 비행기표 2매와 특급호텔 3박이었다. “두 두 두 두난생 처음 다섯 번째로 이름이 불렸다. 신이 나서 단상으로 뛰어올라갔더니 사회자가

아 중간에 상품이 하나 추가되어 1등은 여섯 번째로 뽑겠습니다.” 라고 하는 게 아닌가.

고급 외제 화장품을 들고 쓸쓸히 단상에서 내려왔다.

안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30세에 주택청약예금에 들어 30년간 청약을 했지만 한 번도 당첨이 되지 못했다. 경쟁이 심한 곳만 넣은 원인일 수도 있으나 1기 신도시는 물량도 많았고 막바지에 경쟁률도 떨어졌었는데 확실히 추첨운은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실수로 약간의 횡재를 했다. 두 달 전 어느 날 밤에 미국 주식 20주를 사려고 주문을 넣었다. 일 주일 후 조금 오른 걸 보고 잘 샀다 생각하고 다른 주식을 사려고 주문을 넣었더니 돈이 모자란다. ‘이거 뭐지?’하고 계좌를 살펴보니 아뿔싸 계좌에 20주가 아니라 200주가 있다. 잠결에 20200으로 잘 못 입력한 모양이다. 증권가에선 이러한 실수를 팻핑거라고 한다. 자판보다 두꺼운 손가락이 자판을 잘 못 누른다는 의미이다. 팻핑거는 보통 참사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파산한 증권사도 더러 있다.

작년에 이미 많이 올랐던 주식이기에 조금만 사려고 했는데 어떡할까?’ 고민이 많이 되었다. 자칫하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무언가 계시같기도 하여 그냥 운에 맡기고 그대로 두었다. 며칠 전에 보니 두 달 새 주가가 많이 올라있다. 횡재수는 별로 없는 내게 팻핑거가 제법 큰 운을 가져다주어 당분간 좋아하는 여행을 실컷 즐길 수 있게 생겼다. 팻핑거는 운칠이고 종목 선택은 기삼이라 해야 하니 운칠기삼이 딱 맞는 케이스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횡재수는 없었을 수도 있지만 가족, 친구, 선후배로부터 받은 사랑은 과분했으니 운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실수라도 해야 재운이 생기는 현상을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앞으로는 실수거리를 찾아다녀야 할까 보다. 물론 잠결에 주문을 넣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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