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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글쓴이 : 김현주    24-03-30 15:29    조회 : 818
그날

금현주

   그날이 되기 사흘 전 목구멍이 슬슬 간지러웠다. 뭐 겨울철에 건조하게 자고 나면 일어났던 증상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방심은 금물이라 했던가? 하룻밤 지나니 증상은 확연히 달라졌다. 38도를 훌쩍 넘는 열에 목구멍 통증도 심했다. 돌이켜보니 동거인 2와 3의 감기 증상이 보였다가 사라지고 있는 시점 아니었던가. 아차 싶었다. 


  이틀을 앞두고 이게 웬 날벼락인가? 컨디션이 좋아도 내 나이에 무리일 수 있다는 인터넷 후기 글들이 떠올라 깊은 고민에 빠진다. 취소하려고 보니 온라인으로 불가능하단다. 우편으로도 가능한 날짜가 지났다. 아픈 몸을 이끌고 왕복 3시간 거리를 다녀와야 하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하고 싶었던 거라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기로 했다. 최대한 휴식을 취하고 내일까지 병증을 지켜보기로 했다. 동거인들에게 에미가 아프니 끼니는 간단하게 먹자고 했다. 더 좋아한다. 고맙게 생각하고 말아야 한다. 여기서 그간 열심히 차려주었던 내 밥상은 뭔가 하는 그런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게 정신 건강에 좋다.

 

  아침 해가 떴다. 체온을 재보니 열이 뚝 떨어졌다. 목 통증도 약해졌다. 야호를 외치며 신이 나 노래를 불렀다. 부르다 보니 목이 묵직하고 기침을 한다. 내일 저녁 시간이니 몸이 회복할 충분한 시간이 있다. 집안일을 하면서 틈틈이 누워 휴식을 취하고 평소 안 챙겨 먹던 비타민도 먹어본다. 미룰 수 있는 일들은 최대한 미루기로 한다. 아니 언제는 안 그랬나. 헛웃음이 나온다.

 

  그래 그날이다. 기분이 좋다. 내 몸뚱이도 눈치가 있는지 좋단다. 그래서 동거인들을 위해 김밥도 가볍게 말았다. 내가 저녁을 먼저 먹고 나가야 하기도 했고 차려놓고 가기에도 적당한 메뉴다. 남의 편인 동거인 1은 에너지를 거기 가서 쏟아도 모자랄 판에 김밥까지 말았느냐고 했다. 김밥은 사랑이라고 했다.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옷을 골라 입어야 한다. 최근 살이 쪄 밴드로 된 긴 치마만 입었다. 치마를 입고 제자리에서 뛰어본다. 역시 치렁치렁 별로다. 문득 중학생 딸인 동거인 2의 통이 넓은 카고 바지가 생각나 입었다. 딱 좋다. 내가 20대 때 유행했던 스타일인데 다시 유행이 되고 있다고 하니 반가웠다. 그다음에 운동화다. 3시간을 서서 점프도 해야 하기에 쿠션감 좋은 러닝화를 선택하느냐 잘 보이게 키높이 운동화를 선택하느냐 이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문제는 쉬웠다. 바지가 길어 키높이 운동화를 신어야 했다. 

 

  드디어 현장에 도착했다. 인터넷 후기글 찾아 공부한 대로 사물함에 두꺼운 외투를 보관하고 가볍게 입장했다. 이제 1시간 가까이 남은 시간 동안 바닥에 앉아 기다리면 된다. 

 

  그리움이 쌓이는 때가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 내겐 그러하다. 인디밴드 음악을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들의 음악은 자유로웠고 신이 났다. 하늘을 달리는 듯했다. 창밖에 눈이 내리는데 문득 그 시절로 이동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핸드폰을 꺼내 콘서트를 검색하니 고맙게도 예매 중인 공연이 있어 바로 클릭했다.

 

  혼자 콘서트를 보러 간 건 처음이다.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는 '크라잉넛'의 공연에 내 젊음을 태웠다. 3시간 반을 서서 달리고 나오는데 하늘에서 눈이 탐스럽게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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