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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의 오지랖    
글쓴이 : 표경희    18-05-17 23:58    조회 : 4,746
   내 마음의 오지랖.hwp (25.0K) [1] DATE : 2018-05-17 23:58:55

내 마음의 오지랖

표 경 희

평창에서는 패럴림픽이 한창이다. 내게는 TV 화면에 장애인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는 못된 버릇이 있다. 참 못난 행동이라는 것을 알지만 모른 척 외면한다. 불편하고 애가 쓰이니 마음 편하고 싶은 속셈이다. 장애는 누가 원한 것도 아니고, 아무도 바라지 않은 사고라는 것을 알면서 그런 행동을 하는 내가 어이없다. 나는 자비심이 없는 무자비한 인간인가? 아니면 나와 내 가족은 아니니까 하고 안도하며 외면하는 이기적이고 비겁한 사람인가? 하는 상념들이 똬리를 틀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그들이 당장 무엇을 도와달라는 것도, 무엇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혼자 왜 지지고 볶고 난리인가?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온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대로 바라보면 되는 단순한 일을 왜 피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길을 걷다가 장애인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일 때가 많다. 나서서 도와주어야 하는지, 안전하게 지나가는지 지켜봐야 하는지, 혼자 힘으로 헤쳐 나가도록 그냥 지나치는 것이 나은지 멈칫거리다 돌아선다.

장애인을 마주하는 일상이 왜 불편할까? 그 끝에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두려움과 마주할 용기가 없다는 것이 정확하다. 깊은 의식 속에서 나와 가족이 혹시 사고로 저들처럼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과 그런 일이 현실이 될까봐 겁이 나서 미리 피하고 도망가는 것이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았음에도, 두려움과 어리석음에 휘둘리는 것은 아직도 세상사는 지혜가 많이 부족한 탓인가 보다. 장애를 무심히 그냥 다름으로 보는 것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한다, 패럴림픽 컬링 경기에 채널을 고정하고 열심히 보면서 생각한다.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숙명에는 순응하고, 세상사를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수양을 쌓아 평화롭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싶다.

국립국어원에서 농 문화 이해와 농인과 소통에 열린 태도를 위한「수어의 이해」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다. 청각장애인을 남편으로 둔 강사의 강의는 현실적이고 생동감이 넘쳤다. 선천성 청각장애 아들만 둘을 둔 강사 시댁에 큰며느리는 같은 청각장애인이고, 둘째며느리가 자신이라고 했다. “청각장애인이 가장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가 무엇인지 아세요?” 이어지는 강사의 대답이 “짜장면 시켜 먹는 것입니다.” 어느 날 서울에 출장 중인 자신에게 남편으로부터 짜장면 좀 시켜 달라는 문자가 왔다고 한다. 그래서 지하철 안에서 주위 눈치를 살피며 시골 집 근처 중국집에 “짜장면 3그릇하고 탕수육 큰 것 하나 ㅇㅇ로 배달해주세요.”하고 주문을 했는데, 한참 뒤 중국집에서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대답이 없어서 돌아왔다는 항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그 후에는 남편에게 현관문을 조금 열어두라고 하고, 중국집에는 그 집은 청각장애인들이 살고 있으니 그냥 문 열고 들어가라고 일러둔다는 일화를 들으면서 웃을 수가 없었다. 일상의 소소함이 누군가에게는 선망이고 큰 부러움이라는 사실에 사지육신 멀쩡함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처음이었다.

내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또 있다. 사기결혼으로 달포 만에 신혼생활을 접고 30년 넘게 혼자 지내는 막내시누이다. 어느 날 집으로 전화가 왔다. “언니, 갑자기 한쪽 귀가 먹먹하고, 벽에 막힌 것 같고, TV소리도 볼륨을 확 낮춘 것 같이 안 들려.” 해서 토요일 진료하는 이비인후과를 알려주었다. 의사가 돌발성 난청이 의심되니 귀 전문의가 있는 대학병원으로 빨리 가라고 해서 같이 갔다. 돌발성 난청은 입원해서 고압산소치료를 하면 대부분 정상으로 회복되나 간혹 10% 남짓은 치유가 안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시누이가 그 10%에 해당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한 쪽 청력을 잃었다. 형제들이 모이면 시동생은 막내누나가 너무 시끄럽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정작 시누이 자신은 한 쪽은 들리니 목소리만 좀 커질 뿐 사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보청기도 귀찮다며 안하고 지내다가, 10년이 지난 어느 날 또 한 쪽 귀가 예전하고 같은 증상이라며 울부짖는 전화를 했다. 이번에는 다른 대학병원에서 입원치료를 했는데 또 10%였다. 보청기를 하려니까 한쪽은 보청기도 할 수 없는 청력이라 지금은 한쪽 보청기로만 간신히 지낸다.

성인이 된 후에 청력을 잃어서 말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간단한 의사전달 외에 소통은 어렵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으니까 아집도 점점 깊어지는 것 같다. 상처받은 아기 새 돌보는 어미처럼 작은 일에도 예민하고 공격적이다. 평소에는 어머님께 살뜰한 막내딸 노릇을 잘 하다가도, 자기 기분에 좀 거슬리면 자기 설움이 가득 담긴 말 폭탄을 막무가내로 퍼 붓는다. 가장 아픈 손가락이 쏟아내는 억지에 어머님은 억장이 무너진다. 형제자매들도 조금씩 거리를 두는 눈치다.

아들이 어릴 때는 어린 시누이가 안쓰러워 자주 나들이에 동행했다. 가족여행도 한 자리 비는데 하는 생각으로 같이 다니다 보니 우리 가족만의 여행 경험이 별로 없었다. 아들이 대입 준비를 하는 몇 년 동안은 여행을 거의 안 다녔다. 대학에 몇 번 실패하고 입대하겠다는 아들이 애처롭고, 어린나이에 군대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입대 전에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2박3일의 짧은 여행을 우리가족 셋이 다녀왔다.

시누이와 조금씩 서먹서먹해지기 시작한 것이 그 때부터 인 것 같다. 우리 여행에 항상 동행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준 것이 잘못이었다. 의사소통이 힘든 시누이에게 이해를 구할 수도 없었다. 몇 년이 지나버린 지금은 그 마음을 모른 척하면서 지낸다. 같이 다니면 목소리가 너무 커서 주위 눈치가 보이고, 고분고분한 성격이 아닌 시누이에게 작게 말하라고 자꾸 주의를 주기도 쉽지 않다.

자매들도 예전 같지가 않다. 남자 형제들은 신경 쓰이는 귀찮은 일은 피하는 종족들이니 더는 깊이 생각지도 않는다. 나도 가끔 마음의 면죄부가 필요하면, 남편에게 “아가씨도 같이 갈까?” 하면 “됐어”하는 예상 답이 돌아온다. 이제는 공식적인 가족모임 외에는 함께하지 않는 것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시누이의 외로움과 섭섭함을 모른 척하는 것이 마음에 굳은살로 자리를 잡아간다.

인간이, 가족이 그러면 안 되지 하는 마음의 소리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면 아무리 꾹꾹 눌러도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다. 아가씨도 홀로 서기가 필요하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과 친구하며 사는데 뭘. 스스로 감당할 몫이지 이런저런 구실로 아무리 도망쳐도 마음이 불편하다.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는 평소 지론과 또 그 놈의 마음 속 오지랖이 얼굴을 내민다. 어쩔 수 없다. ‘시누이에게 다시 상처를 주는 기대감을 심더라도, 큰 목소리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얼굴이 붉어지더라도,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자.’ 다음 나들이에는 남편에게 “당신 동생 숙이도 데리고 가자.” 해야겠다.


김단영   18-05-18 23:14
    
두려움과 마주하는 용기를 잘 풀어내셨네요.
편견없이 장애인 가족을 대한다는 게 그리 쉽지많은 않더군요.
탄탄한 문장력과 감정의 흐름이 돋보이는 글인 것 같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가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최로미   18-05-27 11:24
    
진솔한 글이네요.
학우님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자.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잘 읽었습니다. ^_^
박영화   18-06-08 00:40
    
진실한 감정표현이 돋보이는 글이네요.
한번쯤 생각하고 반성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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