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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해 진다는 것은(수정본)    
글쓴이 : 신영애    20-11-15 19:18    조회 : 6,813
   익숙해진다는 것은.hwp (17.0K) [0] DATE : 2020-11-15 19:18:51

익숙해진다는 것은

                                                                                                                        신 영 애

    내가 사는 아파트와 이웃에 접한 아파트 사이에 조그만 샛길이 있다. 마트를 갈 일이 있거나 병원이나 편의점을 가기 위해서 그 샛길을 지름길 삼아 다니고는 했다. 어느 날 늦은 시각 길 건너 약국을 다녀오면서 그 샛길을 걷고 있었다. 10시가 훌쩍 넘긴 시간에 행인조차 없는 야심한 밤이었다. 아파트 4~5층 높이 정도 되는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서 달빛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건너편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좁은 샛길로 슬쩍 옷깃을 스치며 지나갔다. 불현듯 이 길이 초행길이라면 좀 무섭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늘 다니던 길이다 보니 익숙해져서 안심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저녁에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얘기했더니 환한 길을 두고 뭐하러 그 길로 지나다니느냐고 통박을 맞았다

   가끔 출근길에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한두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걸어서 출근한다. 청담역에서 내려 회사가 있는 강남구청역까지 걸어가려면 25~30분 정도 걸린다. 약간의 경사길이라 처음 걸을 때는 땀이 났다. 몇 달을 계속 걷다 보니 익숙해져 걸음이 좀 빨라졌다. 출근길 이다보니 항상 같은 길로 다니는 것에 비해 경로를 바꿔서 걸으면 약간의 긴장감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거리는 비슷하지만, 경로를 바꿔서 걷게 되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듯한 느낌이다. 아마도 익숙함을 벗어났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생각한다. 걷는 동안 익숙하고 편안한 경로가 나오면 나는 일부러 돌아서 새로운 길로 걸어보고 한다. 비록 출근 시간이라 마음이 급하더라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걸어간다. 시간이 여유로지 못한 날은 다음 날 조금 일찍 출발해서 걸어본다. 누구는 바쁜 출근 시간에 걸어서 출근하면 하루 종일 피곤하지 않느냐고 걱정해 주기도 하고, 부지런하다고 칭찬해 주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말한다. “익숙해지면 괜찮아. 라고.

    아는 선배 중에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이 있다. 선배 생각에는 내가 걱정되어서 해주는 말일 수도 있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처음 들어갈 때 많이 받아야 해. 일단 들어가면 더 달라고 할 수도 없잖아. 그걸 왜 받았어? 못하겠다고 하지.” 내가 십 년 전 현 직장으로 이직하려고 했을 때 인수인계도 엉망이고 연봉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대자 선배가 그렇게 말했다. 새로운 곳에 출근하여 익숙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나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거래처 사람들은 새로 맞이한 실장이라는 담당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고, 무엇이든 열심히 할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나의 그런 마음을 어떻게 내보일 수 없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상담하기 안 미더워했다. 지난 15년 정도의 경력이 무색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물러설 내가 아니라는 노래 가사처럼 나는 딱 3년만 해보기로 했다. 그래도 안 되면 더 나이가 들어 이직하기 어려워지기 전에 과감히 접기로 했다.

   20년 전, 공부하기 위해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나와서 전공을 살린답시고 겨우 조그마한 회계법인에 입사를 했다. 당시 세무사사무실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대개 여고 졸업 후 바로 입사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나이가 많은 대졸 신입사원이 들어온 것이다. 선배들은 내게 업무를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커피 심부름이나 복사하는 것 외에는. 그저 시키는 일만 한 뿐. 나보다 나이 어린 선배들 속에서 어쨌든 나는 견뎌내야 했다. 괜히 대기업을 그만두었다고 후회하였다. 그런 내 마음을 아시는 듯 회계사님은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 괜찮을 걸세.” 하시며 내가 이곳에서 잘 견뎌내기를 바란다고 말씀을 하셨다. 어느 날 이렇게 후회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나면 혼자 남아 두세 시간씩 공부했다. 두꺼운 세법 책을 펼쳐놓고 법인세와 종합소득세 등 각종 세금이 산출되기까지의 과정을 이리저리 분석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진도는 잘 나가지 않았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시간만 흘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은 차라리 외우기 시작했다. 얼마 후 회계사님이 회의 시간에 어떤 질문을 하셨는데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던 일을 그저 단순하게 외워버린 내가 대답한 것이다. 순간 직원들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나는 자신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비록 외워서 대답한 것일지라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세무 일로 접어들어서 결혼과 출산, 육아 등의 일로 그만두었다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하면서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그렇게 3년만 해보자고 시작한 이곳에서 10년을 넘기고 있다. 거래처 사람들과도 편안해지고 익숙해져서 가족얘기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게 되었고, 신뢰도 얻었다. 대표님은 나의 업무 스타일을 좋아하셨고 그와 더불어 꾸준하게 연봉도 올랐다. 아직도 부족함이 많지만, 그래도 고객들에게 세금에 대해 설명 해 줄때가 가장 행복하다. 사람들은 내가 이 업종에서 오랫동안 일을 한 것과 관련하여 힘들지 않으냐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럴 때 나는 또 말한다. “익숙해지면 괜찮아요. 라고.

    지금도 나는 나의 길을 찾으면서 가고 있다. 어떤 일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힘이 들지도 모른다. 익숙해지고 편안해진다는 것은 어쩌면 무언가의 끝인 듯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수필 수업을 시작해보니 그동안 내가 익숙하고 편안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속에는 설렘과 함께 약간의 두려움으로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바람과 시린 눈을 이겨내고 난 뒤 비로소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나는 또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어둠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새벽이 온다는 것을 알고, 파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곧 고요가 찾아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별을 보려면 어둠이 필요하다고 한다. 또 다른 기다림의 연속일 수 있는 익숙함으로 나의 삶이 더욱 빛나기를 기대해 본다.


노정애   20-11-27 20:25
    
신영애님
글 고쳐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만 더 다이어트를 해 볼까요.
한 단락에 반복되는 문장은 다른 표현을 찾아보시는게 좋습니다.
아래 단락은 약간의 긴장감을 넣어주시는게 좋겠습니다.
' 건너편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좁은 샛길로 슬쩍 옷깃을 스치며 지나갔다. 불현듯 이 길이 초행길이라면 좀 무섭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늘 다니던 길이다 보니 익숙해져서 안심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 건너편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점점 가까워지더니 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갔다. 불현듯 이 길이 초행길이였으며 좀 무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시로 다니던 길이니 익숙해져서 안심했던 것 같다.

' 아마도 익숙함을 벗어났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생각한다. 걷는 동안 익숙하고 편안한 경로가 나오면 나는 일부러 돌아서 새로운 길로 걸어보고 한다. 비록 출근 시간이라 마음이 급하더라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걸어간다. 시간이 여유로지 못한 날은 다음 날 조금 일찍 출발해서 걸어본다. ' 
---> 아마도 익숙함을 벗어났기 때문이리라. 익숙하고 편안한 경로가 나오면 일부러 돌아서 새로운 길을 걸어보곤 한다. 빠듯한 출근시간에 급한 마음이 들더라도 조급해하지 않고 걷는다. 여유 시간이 없을때는 다음날 조금 일찍 출발해서 탐험하듯 그 길을 걷는다.

제목을 '익숙해지면 괜찮아' 로 바꾸시는것은 어떨까요.

조금씩 수정하시면 좀더 좋은글이 될것 같아 괜한 욕심을 부려봅니다.
메시지도 좋고 신영애님을 잘 보여주는 글이 되어 참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신영애   20-11-29 19:10
    
노정애 선생님
부끄러운 제글에 이렇게 힘과 격려를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고견을 반영하고 보니
저의 졸작이 더욱 빛을 발하는듯하여
기쁘고 감사한 마음 그지없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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