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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잣말 이야기    
글쓴이 : 봉혜선    26-06-16 07:38    조회 : 737

혼잣말 이야기

 

 초등학교 2학년 때 일기 숙제를 받은 이후 꾸준히 일기를 써왔다는 것 알고 있지. 일기를 쓰기 시작하고 익숙해지자 일기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잖아. 현실의 친구는 쉽게 가까워져도 때로 소원해지고 드물게 싸우거나 멀리 떠나갔어. 학년마다 바뀌는 친구나 선생님보다 일기는 더 믿음직하고 누구보다 내 말을 잘 들어 주었으며 아무 말이나 들어주고 어떤 투정도 받아 주었지.

 일찍부터 일기장으로 묻혀 들어가 있었으므로 거절당해보지 않던 말하기는 어쩌면 없었을지 모르겠네. 혼잣말에 너무 익숙해서 대화를 못하게 된 걸까. 말하고 싶었을까. 바쁜 날은 일기가 비더라. 남에게, 세상사에 휘둘렸다는 것인데 나와 대화할 시간이 없는 그런 날은 비어버린 날이라 여겼지.

 너무 나에게 함몰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 자폐증에 걸리거나 우울증보다 심한 조울증에 걸린다고 걱정해준 사람도 있었고. 나무를 보느라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저지를 우려가 있다는 거야. 그러나 숲을 이루는 나무를 보고, 나무에 가려진 풀잎을 보고, 아침 이슬을 보고, 거기에 숱한 생명들이 깃들어 있음을 살피는 것이 숲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어. 일기장은 나를 가꾸는 텃밭이야. 씀으로써 다 이룬 희망인 듯 개운하게 살게 해주었으니까. 막연하나마 그런 믿음이 없으면 살 수 있었을까?

 자주 혼자 연극을 보러 다녔어. 연극 대사 중 독백을 제일 잘 알아듣더라. 아무도 듣지 않아야 하는, 뒤돌아서서 하는 듯한 방백도 동병상련의 느낌으로 이해할 수 있었어. 방청객에게만 들린다고 설정한 말인 줄은 나중에 알았지. 내가 나에게 숱하게 말하던 투였으니까.

 이어폰 속 속삭임은 너무나 다정했고, 그리고 노인의 웅얼거리는 소리로까지 이어진 혼자만의 이야기는 큰소리 내본 적 없는 약자라 동감할 수 있었어. 세상은 목소리 큰 사람만의 것은 아니어야 했으므로. 이건 마치 괄호 속 세상 같지라고 생각했어.

 매일 일기장만 붙들고 있으면, 하소연할 데가 있으면 지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어. 쓸 때만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었던 시기였어. 그러니까 아무도 아무 것도 위안이 되지 않는 때의 낙서 닮은 자기 고백만이, 어쩌면 혼잣말만이, 그것이라도 해야 살 수 있었던 안네의 일기와도 같은 혼잣말은 공기와 같았지.

 남편은 턱, 하고 무엇이든 나를 막았지. 남편 앞에서는 무슨 말도 옳지 않은 게 되어버려. 갑갑하고 답답해서 울어도 혼이 났어. 나가지 못하게 하고 친구를 만나지도 못하게 하고 전화 이력을 추적도 했던 남편 ···.

 그 앞에서 난, 벌레처럼 꿈틀할 수도 없었어. 그것은 그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었을까.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을까. 혹은 나에 대한 소유욕이었을까, 자랄 때 자기 것이 별로 없었다던 막내를 최대한 배려해 양보하고 물러나주던 나는 장녀의 마음으로 감수했지. 그러나 장녀인데 말이 없을 수는 없었어. 혼잣말은 그때가 전성기였던 것 같아. 나도 내가 옳아야 하니까. 결혼 후 일기장은 때로 혹은 희망을 가두는 곳이라고 해야 맞을 거야.

 내 텃밭에는 물 한 방울 나지 않고 햇빛도 들지 않았어. 스스로는 물 한 방울도 공급할 수 없었고, 막아선 빛을 요구할 수도 없었거든. 막막해도 희망을 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 흰 바탕에 까만 글씨로 점점이 놓는 수는 내가 그만두는 순간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버릇처럼, 습관처럼, 틱처럼 나도 모르게 펜으로 내 마음을 일기장에 가꾸고만 있었어.

 혼잣말은 느려. 나를 주장하지 않으며 나를 달래는 말이야. 세상에 나를 드러내지 않고, 세상에 대해 욕심 부리지 않는 나를 살리는 말이지. 우주에 붙는 각주에 불과하다는 짧은 우리의 날, 주인공의 큰소리보다는 소외되어 있거나 외면당한 사람들을 찾는 눈 밝은 이, 혼잣말을 알아듣는 귀 밝은 이 되기가 소망이야. 혼잣말을 들어줘.

<<에세이문학 174. 2026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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