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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박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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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에서 봄 ..............(순수문학 11월호)    
글쓴이 : 박경임    25-12-04 10:29    조회 : 34
   가을에서 봄.hwpx (80.1K) [0] DATE : 2025-12-04 10:29:21


가을에서 봄

 

박경임

 

나는 11월을 좋아한다.

나뭇잎이 다 떨어져 앙상하게 나신으로 선 가로수.

하늘이 잿빛으로 내려앉아 낮아진 거리.

수채화보다는 연필화로 그려 넣어야 더 어울릴 것 같은 풍경.

11월의 바람은 움츠리지 않고 맞을 만하게 차가워서 얼굴에 닿는 알싸한 감촉이 좋다.

단풍 구경에 들뜨던 사람들이 사라진 스산한 거리를 혼자 걸으며 퇴색해가는 그것들처럼 나도 습기를 덜어내곤 했다. 내 몸을 접어 어느 한구석에 웅크려 숨어도 찾아 줄 사람이 없는 그런 시간이 좋았다. 떨켜가 닫아버린 물줄기처럼 입을 닫고 겨울잠을 준비하는 미물이 되곤 했다.

11월은 고독하다. 가을의 끝이지만 겨울은 아직 시작되지 않아 어중간하게 서 있는 시간이 나 같았다. 그래서 인디언의 어떤 부족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다가올 겨울을 위해 준비할 것이 많았지만 부산해지지 않았다. 가슴 한쪽에 부는 시린 바람을 안고 부단히 방황했다. 그렇게 11월을 보내고 한 해의 마지막이 되면 나는 늦은 월동준비에 바빠지곤 했다.

 

첫눈에 젖으며 비로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겨울은 침묵해도 좋은 계절이다. 온몸을 위장하듯 옷으로 감싸고 거리에 나서면 미끄러운 길을 내려다보느라 사람들은 타인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그래도 사랑하는 이들은 서로의 안전을 빌며 손을 붙잡고 언 손을 서로 녹이며 호주머니에 사랑을 담는다. 하지만 혼자인 나는 불 꺼진 집으로 가는 길에 시선이 자꾸 발부리로 내려갔다. 옷깃을 여며 자신을 보듬어 안으며 그렇게 체온을 가두기도했다. 실내등을 끄지 못하고 어슬렁거리며 길어진 밤을 책망하기도 한다. 겨울은 언 채로 나를 묶어 두었다.

한 해가 하릴없이 사라지는 시간을 겪으며 새해 아침을 별 기대 없이 지나기도 했다. 나이 든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종착역이 머지않음이 위안이 되기도 했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내 안에 숨어있었다.

 

다시 봄이다.

새색시 저고리 빛깔로 개나리가 거리를 점령했다. 배시시 옷고름 잡고 웃던 이웃동네 아낙이 생각난다. 벚꽃은 부풀어 오른 춘정을 이기지 못해 사방으로 흩어져 날린다. 차창에 부딪혀오는 작은 꽃잎을 입김으로 날려본다. 목련이 제 화려함을 이기지 못하고 뚝뚝 떨어지는 순간 마음에 남은 사람의 눈동자가 목련가지 끝에서 웃고 있다.

겨우내 죽은 듯 엎드려있던 작은 풀들이 초록의 빛깔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하늘거리는 가로수의 여린 잎들이 공기를 달게 데우고 있다. 비가 내린다. 비에 젖은 나무의 듬성듬성 난 잎사귀가 병아리에서 중닭이 되는 과정에 있는 닭벼슬처럼 어설프다. 그러나 며칠 후에는 꽉 찬 잎사귀가 봄날의 햇살을 받고 아름답게 하늘거리겠지.

 

이런 것들이 싫었는데 이 봄에 나는 비로소 봄을 느낀다. 살아낸다는 것의 황홀함을, 겨울을 견딘 것들의 대견함을 바라보며 미소가 지어진다. 베란다 창틀에 앉아 입맞춤하는 참새가 사랑스럽다. 겨울의 침묵을 덜어내고 봄의 웅성거림을 받아들이고 싶다.

이제껏 외면하며 살았던 생명의 재잘거림을 느낀다.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위해 자웅은 서로를 찾아 나선다. 나는 생산능력도 다 사라졌는데 이제 와서 왜 몸이 들썩거리는지 황망하다. 결빙의 계절엔 혼자도 좋았는데, 비에 젖은 나무 아래서 나도 젖어보고 싶다. 새삼 이 나이에

새롭게 태어나는 것들에 기대 내 삶도 다시 피워보고 싶다. 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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