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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가 흔들릴 때    
글쓴이 : 박병률    25-08-02 11:11    조회 : 1,733

                                       뿌리가 흔들릴 때


 소나무는 바위틈에 뿌리를 내렸을까?

 

 솔방울 안에서 푸른 꿈을 키우고 있던 씨앗 하나, 봄바람에 실려 바위에 떨어졌다. 씨앗은 돌 위에 뿌리를 내릴 수 없어서 바람에 부탁했다.

 “바람아, 나를 기름진 땅으로 데려다 다오.”

 “그래, 내가 등을 힘껏 밀어줄게.”

 바람의 힘으로 씨앗이 굴러가다가 바위틈에 빠졌다. 바위틈은 어둡고 답답했다. 씨앗이 탈출하려고 발버둥을 쳤다. 바위에서 구르다 지치면 낮잠을 자기도 하고 잠에서 깨면 신세 한탄을 했다. 하루하루를 절망 속에서 지내는데 바위틈으로 빛이 들어왔다. 하늘에서 별빛이 반짝거렸다. 씨앗이 말했다.

 “별님, 나 좀 도와주세요. 목이 말라서 갈증이 나 곧 죽을 것만 같아요. 바위에 뿌리를 내릴 자신이 없어요.”

 “씨앗아, 조금만 더 힘을 내. 한 발짝 더 내려가면 땅바닥이야, 내가 환하게 비춰줄게.”

 별님은 씨앗에게 용기를 주었다. 씨앗은 젖 먹던 힘까지 쏟아부었다. 바위를 구르는 동안 몸이 멍들고 상처가 났다. 부모를 탓했다.

 “엄마, 기름진 땅에 내려주시지 험한 곳에 저를 버렸나요?”

 엄마를 원망하며 씨앗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으리라 여기고 또 허구한 날 눈물만 질질 흘리고 살 수 없어 용기를 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구르고 또 굴렀다. 며칠이 지났을까, 바닥에 닿았다. 흙이 젖어있었다. 촉촉한 느낌이 엄마 품속 같았다. 씨앗은 흙 속에 파묻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야, 험한 세상에 뿌리를 내리려면 혹독한 훈련이 필요하단다. 어떤 부모가 자식을 못되게 굴겠니? 호랑이도 새끼를 낳으면 강하게 키우기 위해 바위에서 떨어뜨린다는 말이 있는데, 결국에 살아남는 놈만 세상에 남아서 스스로 살아간단다.”

 꿈에서 깬 씨앗은 엄마 목소리에 놀라 정신이 바짝 들었다. 씨앗은 젖 먹던 힘까지 내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새싹이 돋고 줄기가 섰다. 줄기는 자라서 가지를 뻗고 뾰족뾰족 솔잎을 내밀었다. 뿌리를 뻗을수록 바위는 점점 허물어지고 나무는 무럭무럭 자랐다.

 여름 장맛비가 며칠 동안 지속되었다. 산사태가 나서 나무가 뿌리째 뽑혀 흙탕물에 떠내려가고, 축사가 무너져 닭이 죽고, 강물에 소가 떠내려가고, 집이 무너지고, 사람이 빗물에 휩쓸려가는 등 한동안 난리통이었다.

 나무는 눈을 크게 뜨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바라봤다. 세상은 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려면 뿌리가 강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뿌리는 땅속 어두운 곳에서 중심을 잡고 양분을 빨아들이는 역할에 충실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뿌리가 굵어지고 힘이 세지면서 나무는 쑥쑥 자랐다.

 ‘아무리 힘들어도 쓰러지지 않을 거야,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거든.’

 소나무를 오랫동안 바라보는데 나무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이는 듯했다. 나무는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고, 천둥번개가 칠 때 놀란 가슴 쓸어내렸겠지. ·· 바람· 천둥번개에 시달리며 쓰러지지 않고 나무가 버티는 힘은 어디서 나온 걸까? 솔잎이 사시사철 푸른빛을 띠는 이유 또한, 힘든 과정을 참고 이겨낸 훈장인가. 나무는 어른 키만 하고 몸통은 양손을 펴서 둥그렇게 모아 손끝이 닿을 만큼 허리가 날씬하다. 정원사가 정성을 들여 가꾼 소나무처럼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뻗어서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몸을 가꾸기 위해서 나무는 뿌리가 흔들릴 때마다 팽팽하게 조이며 어둡고 단단한 것들을 녹였다. 아차산 둘레길을 걷다가 소나무를 바라보며 혼잣말했다.

 ‘돌 틈에서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다니 자연의 위대함이여!’ 삶이 힘들고 지쳐서 내 안의 뿌리가 흔들릴 때, 돌 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를 떠올렸다.

 

                                       한국산문20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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