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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추잠자리 환골탈태기    
글쓴이 : 장석창    25-07-19 16:13    조회 : 1,391

고추잠자리 환골탈태기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린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애원하지만 에누리 없다. 포기하고 만다. 소중이에 여러 번 비수가 꽂히고 무언가 스며든다. 짜릿한 통증에 비명을 지른다. 그런데 웬걸, 곧 남의 살 같이 무감해진다. 용을 쓴 뒤라 나른하다. 졸고 있는데 천사의 음성이 들려온다. “끝났어요.” ‘아니 벌써, 이거 별거 아니네.’ 살펴보니 아랫도리가 상전벽해桑田碧海. 소중이 주변으로 삿갓이 씌워진다. 이후 몸 자세는 엉거주춤.

 한 때 겨울 방학이면 비뇨의학과에서 하루에도 수차례 볼 수 있었던 장면이다. 소아 포경수술에 대한 사회 인식이 바뀌고, 아이들이 귀해지면서 이제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포경包莖수술은 귀두 포피를 탈피하는 시술이다. 동음어인 포경捕鯨으로 인해 고래잡이라는 은어로도 불리지만, 원래 의학적 전문용어는 환상절제술環狀切除術이다. 고래잡이 시즌이 되면 이를 앞둔 남아들은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부모는 포경수술을 받아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아들을 회유했고, 겁에 질린 아이는 포경수술이 필요 없는 소중이를 천연기념물이라 부르며 부러워했다. 수술의 유용성이나 적정 시기에 대한 이견은 차치하고, 인류 최초 수술은 단연코 포경수술이다. 성경 창세기에는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는 자리에서 남자는 태어나서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으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유대인들은 종교의식 차원에서 남아에게 포경수술을 시행하였고, 예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비뇨의학과 전공의 시절, 나는 고독한 제사장이었다. 삼십여 년 전에는 신생아 포경수술이 유행이었고, 오롯이 당직 전공의 몫이었다. 이 거룩한 제사 의식은 야심한 밤, 모두 잠든 후에 거행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 입원환자 처치, 신환 처리, 응급실에 불려 다니다 보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아무 말 없이 신생아실에 들어서면 간호사가 의식을 치를 아기를 대령했다.

  기저귀를 벗기니 소중이가 드러났다. 아기는 본능적으로 발버둥 쳤고, 간호사는 양 허벅지를 잡아 벌렸다. 나는 무표정했고, 아기는 울상이었다. ‘아가야, 너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니. 고추 달고 태어난 죄지.’ 처음에는 이게 핏덩이에게 할 짓인가.’ 죄의식이 들기도 했지만, 이내 무덤덤해졌다. 의사는 합법적인 칼잡이가 아닌가. 할례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당시 신생아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정설이어서 마취도 하지 않았다. 귀두 포피를 절개하면 머리가 톡 튀어나온다. 처음 세상 구경을 한다. 적당한 크기로 포피를 절제하고 동서남북 네 군데만 봉합하면 끝이다. 할례의 본뜻은 숭고하지만, 행위는 허접했다. 신생아 포경수술은 전공의에게 중요한 수련 과정이었다. 이를 통해 수술기구 사용법을 익히고, 절제와 봉합 같은 기본 술기를 숙달시켰다.

 

  “선생님, 아들 고추 좀 봐 주세요.”

  몇 해 전 유난히 더운 여름날 오후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소년이 아버지 손에 이끌려 진료실에 들어왔다. 걸음걸이가 어정쩡했다. 나는 부산역 건너편에서 비뇨의학과 의원을 운영하므로 가끔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그들도 부산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탑승하기 전 화장실에 들러 소변을 보다가 고추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무더위에 통증을 참느라 소년의 얼굴은 땀범벅이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무슨 일이지? 소변보다가 고추가 어디에 긁히기라도 했나?’ 소년의 아랫도리를 살폈다. 이럴 수가! 반쯤 올려진 바지 지퍼 슬라이더에 살점이 잡혀 있는 게 아닌가. 지퍼를 올리다가 주위 옷자락이 지퍼 슬라이더와 이빨 사이로 말려 들어가듯, 귀두 포피가 끼어버린 것이다. 얼마나 아팠을까. 진작에 포경수술을 받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여분의 포피가 문제였다. 옷자락이 걸렸다면 억지로 올리고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어떻게든 빼냈을 것이다. 하지만 소중한 고추인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작은 움직임에도 당겨지는 포피 때문에 소년은 제대로 걷지도, 앉지도, 서지도 못했다. 이 상황에서 대학 병원에 전원할 수도 없었다. 내가 해결해 줘야 했다. 삼십 년 경력의 비뇨의학과 의사인 나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난감했다. 잠시 후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다. 보호자에게 제안했다.

  “방법은 하나뿐이에요. 말려 들어간 포피를 잘라내야지요. 다행히 아들은 포경수술을 받지 않아서 포피에 여유가 있네요. 피부 결손이 생길 건데 다시 봉합하느니 이 기회에 포경수술을 해버리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해주시면 너무 좋지요. 그렇지 않아도 포경수술을 시키려고 해도 애가 안 한다고 버텨서 고민이었는데.”

  쉬운 수술이 아니었다. 건드리기만 해도 자지러지니 통증부터 해결해야 했다. 소년의 고추에 마취 주사부터 놓았다. 일단 손을 댈 수 있었다. 포피가 말려 들어간 지퍼 부분을 바지에서 잘라내고 바지를 벗겼다. 소년을 수술대에 눕혔다. ‘! 고추 가진 자의 비애로다. 조개였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포피를 잘라내고 지퍼 구성품을 떼어냈다. 포경수술을 하기 위해 재단을 해보니 포피에 여유가 있었다. 다행이었다. 수술 중에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의 얼굴을 쳐다봤다. 초주검이 되었던 녀석이 편안해 보였다. 수술을 마치고 보호용 종이컵을 씌워주며 놀림조로 말했다.

  “여행 잘 다니고 어른이 되어 돌아가네. 이런 걸 일석이조라고 하는 거야.”

보호자가 지하상가에서 새 바지를 사 왔다. 앞 지퍼가 없는 반바지였다.


  고추잠자리 애벌레는 마지막 탈피과정을 거쳐 성충이 된다. 껍질이 갈라진 틈을 비집고 머리부터 힘겹게 밀고 나온다. 그런 인고의 시간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요즘도 포경수술을 집도할 때면 그 녀석의 고추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고추잠자리, 지금 어디쯤 날고 있을까.’

 


   ⃰⃰ 여성 속옷을 뜻하는 제주도 방어. 남녀 성기를 뜻하는 은어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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