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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정이 물어 나르는 봄    
글쓴이 : 전계숙    26-07-30 17:09    조회 : 114

모정이 물어 나르는 봄

 

전나문

 

 IMF 위기는 기업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생계까지 흔들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건축업을 하던 남편은 직격탄을 맞았다. 거래처 사장이 폐업 위기에 놓이게 되면서, 공사대금을 모두 떼었다. 암울하고 힘든 시기였다. 나는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그때 문득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김밥집으로 대박이 난다는 친구가 떠올랐다. 친구를 만나 조언을 듣기로 했다. 친구의 말은 새벽을 깨우는 돋을볕 같았다. 친정 언니의 도움으로 준비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점포는 풍납토성 근방에 얻었다. 종일 서 있어야 하는 일이므로 발바닥에 느껴지는 작열감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성공 여부의 절박함이 공포로 등뼈를 관통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굳은살 박인 발바닥처럼 마음도 단단해졌다. 그런대로 장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1,000원짜리 김밥을 사려는 사람들의 줄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주민 모두가 단골손님이었다. 단골손님 중에는 눈에 띄는 노숙인도 있었다. 손님과 줄을 서서 나도 한 줄이요.”라고 외쳤다. 그는 매일 한두 번씩 김밥을 얻으러 왔다. 울산에서 왔다고 했다. 직원에게도 그냥 주라고 당부했다.

 중간 쉬는 시간에는 토성을 걸었다. 방수용 플라스틱 슬리퍼를 운동화로 갈아 신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걸으면서 맡는 풀 냄새는 긴장감으로 응축된 마음을 녹여주었다. 네잎클로버를 찾기도 하면서 생활의 긴장을 풀었다. 늘 같은 시간대에 걷다 보니 마주치는 할머니가 있었다. “매일 이 시간에 오시네요.” 할머니가 먼저 말을 걸어 왔다. “잠깐 쉬는 시간이라서요. 할머니께서는요?” “혈압약 먹고 나서는 꼭 걸어야 한다고 의사가 그러더라고. 근데 토성 가까이 사시나?” “, 이 근방에서 장사하고 있어요.” 장사는 잘 되시? “요즘 경기가 너무 안 좋다고들 난리야.” “그럭저럭 괜찮아요.”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서로의 삶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사람과 사람과의 삶의 향기가 풀 냄새와 어우러졌다. 그곳은 또 다른 삶의 현장이기도 했다. 경쾌한 걸음으로 걷는 사람, 천천히 달리는 사람이 스쳐 갔다. 나는 가쁜 숨소리를 들으며 삶의 현장으로 돌아오곤 했다. 까치와 비둘기 떼는 무리 지어 토성을 누볐다. 사람과 작은 생명체가 유기적으로 얽혀 상생하며 살아간다. 그 안에서 느끼는 평안함이야말로 행복이다.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건물 뒤에는 토성의 터줏대감 길고양이들이 진을 치고 살아간다. 고기를 좋아하는 녀석, 사료를 좋아하는 녀석 등 개성도 다양하다. 그중에는 커플을 이룬 녀석들도 있다.

 그해 여름은 무척 무더웠다. 폭우가 아침부터 쏟아지던 날이었다. 직원이 들어오면서 다급하게 소리쳤다. “고양이가 새끼를 낳으려고 해요.” 주방 뒷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겨울 동안 밥을 주던 고양이 한 쌍이었다. 안전을 위해 모두 자리를 물리고 라면상자를 깔아 주었다. 비가 들이칠 것 같아 비닐을 쳐주었다. 대형 휴지 상자로 입구가 작고 아늑한 집도 만들어 주었다. 무늬가 모두 다른 새끼 네 마리를 받았다. 녀석들도 사랑 받고 있다는 걸 아는 것 같았다. 나는 거리를 두고 눈인사로 깜박이며 신뢰를 쌓아 갔다. 이름을 지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미인 암컷 삼색이는 알콩이, 검은 수컷은네로라고 지어 주었다.

 어느 날 고양이 가족 모두가 사라졌다. 온 동네를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다. 가슴 한편이 빈 듯 허허로운 바람이 지나가는 듯했다. 밥을 먹으러 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늘 사료 그릇을 채워놓고 기다렸다. 또 비가 왔다. 알콩이는 다시 새끼를 물고 가게를 찾아왔다. 그 질긴 모정. 어미는 새끼를, 아니 모정을 물어 나르고 있었다. 새끼를 물고 올 때마다 한 마리씩 수가 줄었다. 별이 된 모양이었다. 새끼들은 나와 어미의 공동 육아로 자랐다. 어느 날 새끼를 물어가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6주째 되는 날이었다. 알콩이는 저 닮은 새끼를 물어다 놓고 사라졌다. 그 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만나고 헤어짐이 삶의 순리라지만 어디에서도 다시 볼 수 없음에 뭉근한 서운함이 밀려왔다. 길을 걷다가 비슷한 녀석만 보아도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곤 했다. 남은 새끼 고양이는 내게 또 다른 의미였다. 처음에는 그저 불쌍해서 돌봐주었다. 아직 어리므로 수시로 먹이를 주고 밤이면 안전한 곳에 있는지 확인했다. 어느새 그 작은 생명체가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그 속에서 돌본다는 것보다 위로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 남은 어린 새끼에게 어미는 제 터전을 물려주고 떠난듯했다. 고양이의 위탁과 뻐꾸기 탁란의 봄, 차이는 무언가? 사랑은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라 떠나기 위해서 오는 건가? 미완으로 완성되는 것이 삶인가? 나는 어린 고양이를 안고 집으로 향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린 고양이 눈에서 푸른 샛별이 자라고 있었다. 그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던 순간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나 역시 할머니의 품에서 자랐다.

 시간은 멀리 나를 데려왔다. 그리도 춥던 겨울밤, 바람 소리만큼이나 잠을 설쳤다. 어머니는 몇 번이고 시집 보내는 것 같다고 했다. 서울 가서 입으라고 자잘한 꽃무늬가 있는 융으로 된 바지 잠옷 한 벌을 내주었다. 몇 번 겹쳐 접은 약간의 돈도 쥐여주었다. 꼭 자수성가해서 잘 살아야 한다.” 몇 번이고 당부했다.

 서울을 향하던 완행열차에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두 팔로 끌어안은 커다란 가방 안에는 어머니가 챙겨준 새 옷가지며, 여자아이는 발이 차가우면 안 된다고 굳이 안쪽으로 밀어 넣어 주던 민들레 꽃버선이며, 먹거리와 삶은 달걀이 들어 있었다.

 어린 고양이는 어머니의 모정에 승차해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어여 가. 애미 돌아보지 말어.” 대문 나설 땐 백지 빚문서처럼 징그럽던 서울로 가까워지면서는 어머니 터진 손등처럼 먹먹했던 나를 키운 그 봄.

 

한국산문202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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