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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짝반짝 노란색    
글쓴이 : 곽지원    25-12-11 09:17    조회 : 200

반짝반짝 노란색

 

                                                                                                               곽지원

잿빛으로 우울할 것 같다는 선입견에, 유럽의 다른 도시와 달리 현대식 건물이 많아서 볼거리가 없고, 따라서 별 매력이 없는 도시라는 편견을 안고 향한 베를린.

 

친구 Y의 집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면, 동네 산책을 핑계로 매일 아침 로터리까지 한 블록을 걸어가서 커피를 마셨다. 그때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마켓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출근 전에 점심 도시락을 사거나  푸드 코트에서 아침을 먹는 시민들이 보였다.

처음 보는 자전거 전용 신호등도 신기하고, 한 국가의 수도이자 큰 도시인데도 너무나 공기가 맑아 자주 큰 숨을 들이쉬며 조금이라도 더 느끼려고 애썼다. 줄무늬 없이 반짝이는 갈색의 청설모(Red Squirrel)를 처음 보고 탄성을 질렀는데, 친구네 아파트 단지 중정과 공원에서 자주 마주치며 익숙해졌다.

막내딸과 함께 탔던 전철에서 한 번은 무조건 다 하차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이유를 말 안 하는 게 이상했다. “원래 이유 말 안 해줘.”라는 아이의 말에, “사람들이 항의 안 해?”라고 묻자, “하도 자주 있으니까 그러려니 해.”라는 답이 돌아왔다. 두 번 연속 강제하차를 당할 때 그 이유가 방송되었고, 독일인들은 그렇게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철이 늦어도 지각으로 치고 그만큼 더 일을 한다고 한다.

작센 스위스 국립공원에서 하이킹을 할 때는 집채만 한 개와 등산하는 현지인들이 제법 있었는데 다른 개와 마주쳐도 신기하리만치 조용하고, 한 번도 짖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동네에서 주인과 산책하는 개들도 마찬가지. 국민성이나 견성(?)이나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친구 Y의 남편은 공무원인데, 이웃 도시인 포츠담까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도착한 다음 날 차를 타고 포츠담으로 갈 때, Y의 아들이 저기가 아빠가 일하시는 건물이에요.” 해서 놀랐다. ‘아니, 이렇게 멀리 자전거로?’ 회사에는 샤워 시설, 거리에는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고, 택시는 비싸고 전철은 연착이 잦으니, ‘기승전 자전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만큼 자가용 운전자가 적기 때문에 공기가 맑은지도 모르겠다.

 

태어나서 집 열쇠 처음 봤어요.”라는 친구 조카의 말마따나, 독일 집들은 아파트 입구부터 앞뒷문을 죄다 열쇠로만 연다. 딸은 한때 자기가 하숙생이었던 Y의 집 뒷문 열쇠를 3개나 주면서 종류별로 사용법을 알려 주었지만, 반평생 번호 키에 길들여진 우리 부부에게는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낑낑대며 열쇠를 이리저리 돌리는데 안에서 소리를 들은 Y가 나와서 열어 준 적도 있고, 친구가 출장 중일 때는 조용히 들어가려다 끝내 실패하기도 했다. 그 후로 우리가 열쇠 따는(?) 방법에 익숙해질 때까지 딸은 계속 확인 또 확인했다! ‘잘 들어갔어?’, ‘이런 문자는 우리만의 유머 코드였다.

 

독일 유학을 다녀와서 독문과 교수로 정년 퇴임하신 할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았는지, 막내는 한국인이 손꼽히게 드문 대학에서 독어로 수업을 듣고 발표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도 그 조그만 입으로 어찌나 유창하게 말을 하던지, 신기할 지경이다. 내가 독어를 못 해서 더 경이롭게 느껴졌나 보다. 알바하랴, 공부하랴 힘들게 모은 돈으로 이 엄마의 버킷 리스트중 하나인 베를린 필하모니에서의 공연까지 예매해 주고, 남편의 환갑 기념 여행에 오히려 내가 더 혜택(?)을 입은 기분이다.

 

 한국보다 훨씬 많이 보인 것 중 으뜸인 노란색의 버스, 트램, 건물, 벤치 등 거리 풍경에서 노란색을 빼고는 독일을 얘기할 수가 없다. 반짝이는 노란색이 보일 때마다 사진을 찍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누가 베를린을 회색 도시라고 했나? 그늘이나 파라솔 없이 햇살을 고스란히 받으며 광합성을 하는 사람들인데!   

 등골 브레이커 2가 지었던 만면의 미소도 독일의 햇살처럼 샛노랗게 반짝반짝, 눈이 부셨다.

 

*이 글은 한국산문 25년 12월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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