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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 작고 가난한 나의 얼룩    
글쓴이 : 유시경    26-04-01 00:43    조회 : 150

, 작고 가난한 나의 얼룩

 

 20251225, 남편과 나는 전동차에 몸을 실었다. 서른아홉 해 만에 우리의 신혼집 주변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탐방하기로 의견일치를 본 것이다. 1986년 신혼을 꾸렸던 동네가 어찌 변했는지 알고 싶었다. 청량리 588번지 건너 미주 아파트, 미주 상가와 동산 병원 뒤편에 숨은 작고 낮은 집들이 모르긴 해도 재개발에 파묻혀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 거였다.

 전동차에서 내린 39년 전의 풍경은 과연 기억 속에서나 떠돌았던 걸까. 집창촌集娼村맘모스 백화점이 공존했던 자리엔 또 다른 화려함이 들어서 있었다. 주변의 낮은 지붕들이 모두 헐리지는 않았다. 오래된 건물과 새로 지은 빌딩들이 뒤엉켜 있었다고나 할까.

 크리스마스의 청량리는 한산했다. 건물 사이로 혹한을 예고하듯 따가운 바람이 뭉쳤다 흩어지길 반복하였다. 우린 횡단보도를 지나 미주 상가 쪽으로 걸어갔다. 재건축되었으리라 예상했던 상가 A동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탄성을 지르다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천장 조명등이 깜빡이고 출입문 삐걱대는 소리가 들렸나. ‘소나타라는 제목의 다이어리를 손에 쥔 촌뜨기 소녀가 불안한 눈으로 우동집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복도 창가에 붙어 서서 안을 들여다본다. 새하얀 위생복을 입은 이십대 말쑥한 청년이 분주히 음식을 내놓는다. 소녀는 그 남자에게 한눈에 반해버린다. 그리고 어찌어찌하여 두 청춘은 눈을 마주치게 되고 그의 퇴근을 기다려 커피숍에 가게 되고 그렇게 사랑하게 된 것이다.

 복도는 예전모습 그대로였다. 우동집과 젊은 주방장은 보이지 않았지만 출입문과 창문이 있던 자리는 여전했다. 저 끝에 주방이 있었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빴어. SY가 헤어졌다더라고. D는 세상을 떠났대. K는 어디서 무얼 하는지. 견고한 바닥을 걸으며 그이가 과거를 회상했다.

 기다란 복도를 걸어 나왔다. 내 몸을 진단했던 후문 밖 동산 병원은 건물과 그 이름만이 댕그라니 남아있었다. 우린 또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남편과 팔짱을 끼고 그날처럼 꼭 붙어서 걸었다. 석양과 함께 내려앉은 겨울바람이 두 사람의 외출을 돈독히 했다.

 기억을 풀어헤치며 찾은 동네는 사라졌을까. 안동할머니 댁은 허물어졌을 거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크고 작은 주택과 상점들 사이에서 그때의 신혼집은 쓰러지지 않고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곤고하던 담장이 무너지지 않고 수십 년 간 제자리에서 견디고 있다는 사실에 우린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곳에서 남편의 품에 둥지를 튼 나는 첫아기를 낳았다. 일기장에 아기의 성장을 기록하며 더 나은 내일을 꿈꾸었다. 가진 것이라곤 수저 두 벌과 한쪽 관절이 빠져버린 소반 하나, 케케묵은 스테인리스 그릇 몇 개뿐이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산부인과 병원 분만비를 아끼려 조산소로 향했었다. 물어물어 옆집 삼남매 어머니가 알려준 곳으로 찾아갔다. 대문을 열고 들어선 주택 마당은 아늑했고 마루는 윤이 났다. 산모의 방은 넓고 따스하며 밝은 기운이 맴돌았다. 내 친정이 이런 곳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구토와 진통으로 밤을 새웠다. 아침 햇살과 함께 눈을 뜬 아기가 제 어미의 목소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삭아 내린 콘크리트 담벼락을 본다. 1미터 남짓한 빨랫줄을 걸고 기저귀를 몇 장씩 겹쳐 널던 집이다. 나에게 겨울은 고난의 계절이었다. 추위는 여지없이 뚝뚝한 바람을 몰고 왔다. 얼룩진 천기저귀는 동태처럼 얼어붙었다. 한지韓紙에 풀 먹인 양 빳빳해진 기저귀를 걷어 방바닥에 널어놓으면, 자리를 차지한 기저귀 때문에 방바닥 열기도 금세 식었다. 붉게 튼 아기의 뺨을 따뜻한 물에 적신 거즈로 다독거리며 그렇게 또 한 계절을 보내곤 하였다. 연탄불이 온 방을 따스하게 만들진 못했다. 뜨겁게 만드는 것은 오직 사랑뿐. 젊다는 것, 꿈과 미래를 가졌다는 것.

 부엌문을 열면 나타나는 아파트 몇 동. 부자들이 산다는 아파트 꼭대기를 올려다보며, 거기까진 못가더라도 저 아래 어디인가 중간정도는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청량리 한복판 음각된 곳에서 우린 한 편의 시처럼, 시인의 은유隱喩처럼 독하고 간절하게살아냈다.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다 제일 슬픈 구절들을 / 예컨대 이렇게 쓴다 밤은 별들 총총하고 별들은 푸르고 멀리서 떨고 있다” (중략) 오늘 밤 나는 제일 슬픈 구절들을 쓸 수 있다 / 이제 그녀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를 잃었다는 느낌에 잠겨. - 파블로 네루다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다*부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걷다보니 몸이 배고픔을 참지 못한다. 끼니를 거르는 것에 익숙해질 법하건만, 밥때가 지나니 밀려오는 허기를 견딜 수 없다. 중년重年할수록 배고픔의 의미가 과거와 다르게 다가오는 듯하다. ‘젊은 허기를 굶어 몹시 배고픈 것이라 한다면 나이 듦의 허기란 그냥 속이 빈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른이 되어 본 사람들은 배고픔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을 터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향기 없는 바람이 도시를 향해 쓰라린 입김을 내뿜는다겨울은 벌거벗은 누군가의 등허리 같다미련 없이 내려놓은 비구니 승의 머리 같다꿈속의 자작나무 숲 같다물 빠진 수영장 타일 같다철판 위 오목새김 같다.

 나무들은 마른 몸을 견디며 섰고 보도블록은 녹슨 쇳덩이처럼 투박하다. 겹겹이 색을 입고 있는 것은 프랜차이즈 카페 메뉴판과 대형백화점의 조명뿐이다사람들의 시선이 제 심장을 뚫고 들어갈 것만 같다육교 아래 비둘기들조차 날개깃을 한껏 웅그린 채 목을 파묻고 앉아있다.

 지난겨울은 파랬다파르란 겨울처럼 도시의 벽과 기둥들은 두텁고 차가웠으며 묵묵했다젊었던 부부의 과거는 젖은 채로 우그러졌다한 시절말려서 쓰고 싶었지만 한 번도 바짝 마른 빛을 거둬들이지 못했다급행열차에 몸을 구기듯 지나가버린 시간들은 안개처럼 쓸쓸하고 축축했다.

 바람은 쉬는 법이 없고 기억은 말소되지 않는다던가. 넓게 트인 길, 번쩍이는 쇼핑몰, 정비된 재래시장, 북적이지 않는 크리스마스의 청량리를 걸으며, ‘더 이상 청춘이 아니게된 부부는 어수룩하고 가난했던 작은 방들의 시간을 되새김한다. 주석으로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빈 점포들과, 골목길과, 우리의 신혼집 담장을 바라보며 주인집 안동할머니는 어디로 떠나셨을까, 저 문간방엔 어떤 이들이 살고 있을까, 비슷한 우리가 살고 있을지도 몰라, 또 다른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지도 몰라, 뇌까리기도 하는 것이다.

 삶이 문학이 아니라면, 세상이 시가 아니라면, 당신이 우주가 아니라면 우린 무엇으로 존재할 수 있을지.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을 닫으며, 나의 가난과 젊음과 두려움에도 얼마나 많은 비유의 알갱이가 담겨 있었는지 곱씹어 본다.

  *파블로 네루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정현종 옮김)』42쪽

 

 -2026년 한국산문3월호 특집시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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