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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집의 여인, 프리다 칼로( 미주문학 26년 봄호)    
글쓴이 : 국화리    26-04-05 07:11    조회 : 514


                               푸른 집의 여인, 프리다 칼로


                                                                                                                                                국화리

                  코요아칸의 푸른 집


   영화 프리다(2002)를 통해 그녀의 삶과 작품을 우리는 먼저 접했다.

불구의 몸으로 고통의 메시지를 담은 그녀의 그림들을 보며 화살을 맞은 것처럼 아팠다.

자신의 작품전시장에 침대에 누워 참관했던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

그녀의 화풍은 초현실주의, 상징주의, 그리고 멕시코의 토속 문화가 깊이 녹아든 독창적인 예술 언어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녀의 그림들은 모두 고통의 실체라 말하며 초 현실 주의라는 평가는 동의하지 않는다.


  20세기 페미니스트 아이콘으로 불리는 그녀의 삶의 근원, 코요아칸의 푸른 집(Casa Azul)’은 프리다 칼로 뮤지엄이 되었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랐으며, 혁명적인 벽화가 이자 연인이며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와 살던 곳이다. 사랑하고 싸우고 또 화해하며 살았던 안식처이자, 동시에 고통과 시련을 견뎌냈던 장소이기도 하다. 

  뮤지엄 입구에 서면, 벽을 이룬 강렬한 코발트블루와 정열적인 붉은색 창틀, 그리고 태양을 담은 듯한 노란색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목조 건물이 시선을 잡는다.

  예약된 인원만이 입장할 수 있어 집 주위로는 긴 줄이 있다. 작은 대문을 통과하면 좀 넓은 안 뜨락 같은 정원. 이곳은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그녀의 그림 곳곳에 등장하는 멕시코 토종 식물들과 그 생명의 에너지로 채워져 있다실내에는 그녀가 소장했던 소품들과 가구들이 시간이 멈춘 듯 전시되어 있다.


  그녀는 여섯 살에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가 가늘고 짧아졌다. 그러나 열여섯 살에 겪은 교통사고는 그녀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다시는 제대로 걸을 수 없을 것이며, 아이도 가질 수 없다는 절망적인 진단이 내려진 것이다. 그녀는 척추 수술만 일곱 번, 서른다섯 번의 수술을 감당해야 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던 기나긴 시간. 어머니는 침대에 이젤을 세우고 화판을 놓아주었다. 천장에 달린 거울로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그녀가 거울을 보며 붓을 들던 모습은 아프게 아름다웠다. 자신의 깨진 몸과 상처받은 영혼을 가장 정직하게 마주한 독학의 화가이다. 그녀는 자화상을 그리며 나는 가장 잘 아는 주제인 나 자신을 그린다고 말했다. 그녀가 남긴 쉰 점이 넘는 독특한 화풍의 자화상들이 이를 증명한다.

 

 가족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그녀는 다시 걷는 기적을 경험했다. 그동안 누워서 그린 그림들을 평가받기 위해, 그녀는 멕시코의 국민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를 찾아간다. 디에고는 그녀의 독창적인 화법을 단번에 알아보고 극찬했다. 22살의 프리다와 43세의 디에고가 격정적인 사랑에 빠졌다. 가족의 반대에도 디에고의 세 번째 아내가 된다. 하지만 바람둥이였던 디에고는 계속 외도를 했다.

  뮤지엄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고통과 애증의 기록이다. 아이를 간절히 원했던 그녀는 기적적으로 세 번 임신했으나 모두 유산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작품 헨리 포드 병원. 병원 침대에 누운 프리다 자신이 등장하는 충격적인 자화상이다. 멕시코 민속화처럼 소박하게 그려졌지만, 공중에 떠 있는 붉은 혈관들이 그녀의 몸과 연결되어 유산된 태아, 달팽이, 깨진 골반뼈 등 고통의 상징물을 끌어온다. 어머니가 될 수 없었던 여성의 심리적 고통을 예술의 언어로 번역된 인류 보편의 슬픔임을 느끼게 된다.

  

대표작인 우주의 사랑의 포옹은 디에고와의 복잡한 관계를 압축한다. 유년기의 모습으로 그려진 디에고를 어머니처럼 품에 안고 있는 프리다의 모습은, 단순한 부부 관계를 넘어 디에고의 아이 같은 남성적 속성을 보호하려 했던 그녀의 사랑을 보여준다. 격정적이고 때로는 잔인했던 그들의 관계이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그림은 부서진 기둥이다. 상반신을 벗은 몸에는 관능적인 두 개의 유방이 활짝 피어있다. 부서진 척추에 검고 긴 철판을 심고 몸을 지탱하기 위해 철제 코르셋을 입고 있다. 검고 긴 머리를 풀어 헤친 그녀의 모습은 관능적이면서도 매혹적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무용수처럼 아름다운 몸에는 수십 개의 못을 박아 고통을 심었다. 미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지만, 표정은 '나 잘 참고 있어'라고 말하는 듯 흐트러짐 없어 섬뜩하다.

  

   이혼을 넘어 사랑으로

 남편의 여동생과 불륜을 목격하고 부부는 헤어진다. 그녀는 그 슬픔을 이기기 위해 해외로 나갔다. 뉴욕 초대전에서 그녀의 독창적인 화풍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매력적인 그녀는 남성들뿐 아니라 동성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중의 미국의 사진작가와 데이트를 즐겼고 그는 수많은 그녀의 인물사진을 남겼다.

  프랑스 파리전에서는 피카소와 모딜리아니도 전시회에 참가하여 우리는 아무도 그녀처럼 그릴 수 없다라고 극찬했다. 머리에 꽃 장식을 달고 멕시코 풍 색조의 디자인 옷을 입은 사진이 보그지에 실렸다. 파리전에서도 대성공을 거두며 그녀의 작품은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하는 영광을 얻었다.

  이혼한 지 일 년 후 그들은 재결합했다. 둘은 잠시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디에고는 계속 바람을 피웠다. 프리다는 그 고통을 그림 안에서 말하고 해석하며 화면을 채웠다. 그들은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는 부부로, 고통 속에 살면서도 서로에게서 헤어질 수 없는 운명이었다.

  프리다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러시아에서 방문하여 그들 집에 머무는 트로츠키와 마음이 부딪쳤다. 이들의 불꽃같은 사랑은 트로츠키 부부가 그 집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그녀의 외로움에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


그녀의 척추는 다시 무너졌고, 발가락 괴사로 결국 절단 수술을 받았다. 프리다는 다시 누워서 그 고통을 그림에 쏟아 부었다.

  디에고의 주선으로 멕시코에서 그녀의 첫 개인전이 열렸다. 누워 지내던 그녀는 들것에 실려 자신의 개인전에 나타난 것이다. 참관하던 관객들의 환호에 그녀는 웃음으로 여유 있게 답했다.

  다음 해, 그녀는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고, 디에고도 3년 후 그녀의 뒤를 따랐다.

  사랑과 고통으로 얽혔던 그들의 결혼 생활은 마침내 막을 내렸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했던 침대의 등장을 잊을 수 없다. 들것에 실려 전시회장에 나타나 태양처럼 붉게 빛나던 그 얼굴이다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그녀는 많은 말을 남겼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을 때, 그녀는 말했다.

       “발이 왜 필요한가, 나는 날 수 있는데.”

    그녀는 이제 우주를 날고 있다. 자유롭게 어느 별에서 보내오는 그녀의 목소리가

    우리들 위로 내려앉는다.

      ‘내 앞에서 고통을 말하지 마라. 너도 나같이 해 보라.’

 

      * 그녀의 전 작품은 멕시코 국가예술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2025년 뉴욕 쇼더비 경매에서, 1940년 작 자화상 (침대)

          여성화가로서 최고가 $5740(805억원)에 낙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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