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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봉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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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여 있는 세상    
글쓴이 : 봉혜선    26-10-07 16:14    조회 : 32

모여 있는 세상

 

 장을 보러 나갔다. 함흥냉면, 평양냉면, 양평 해장국, 곤지암 소머리 국밥, 춘천 막국수, 전주비빔밥, 나주 곰탕, 섬진강 재첩, 하동 벚굴, 부산 돼지국밥 ···. 지방별 특산물이 사이좋게 붙어있다. 아파트 알뜰장에 나오는 재료로만 밥을 차리던 눈에 보이는 메뉴다. 저 음식을 다 먹고 싶어 할 텐데 어떻게 다 해낸담. 제 철 아닌 재료는 어떻게 구하고. 손질 못하는 재료는 어쩐담?

 가끔 동네를 벗어나 더 큰 곳으로 장을 보러 간다. 북경 오리, 중화 요리집, 스시 뷔페, 태국 요리집, 베트남 쌀국수, 이탈리안 레스토랑, 프랑스가정집 요리, 스페인 하몽 전문점까지 먹어보지도 못한 음식들이 많다. 전문점이라는 상호를 보니 아마추어가 흉내 내는 솜씨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비법들이 있겠다. 해내기는 언감생심이지만 먹는 것 앞에서는 용감해지는 남편이니 세계 요리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제집처럼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사람들 앞에서 빈 내 장바구니를 감춘다. 빈 장바구니가 무겁다.

 여행의 목적이 먹거리라면 지방 여행을 굳이 떠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맛 기행을 위해서라면 비행기 표 사고 짐 싸는 번거로움을 피해서 그 노력, 그 비용으로 한 나라의 음식이라도 더 먹는 것이 좋겠다. 이런 모습은 서울에 한하지 않고 관광지 풍경도 다르지 않다. 아니면 앉아서 지방 여행이나 세계여행 하는 맛을 보여주려고 저리 모여 있을까. 음식점마다 한 가지 음식점을 팔지는 않으니 다양함을 위해서도 그 방법이 손색없다. 검색으로 인한 헛품을 팔지 않아도 된다.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에도 독일인 마을도 있고 일본 거리를 재현해 둔 데도 있다. 프랑스를 맛볼 수 있는 데도 있다. 동굴 속에도 길을 내두었고 우주 체험관이니 천문대에서 밤을 보내며 밤하늘을 관찰할 수도 있다. 마음을 먹으면 시대를 초월해 시간여행 할 수 있는 장소도 많다. 소설 속 장면을 재현해 둔 장소는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방문하고 체험하고 느끼고 감상할 수 있다. 집안에 들어앉아 책으로만 알던 음식과 장소들이 실재하는 풍경에 눈이 부시다. 왜 몰랐던가.

 아기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유모차를 밀고 나온 젊은 부부의 눈에도 호기심과 즐거움이 가득하다. 나에게 없던 그 풍경에 자꾸 눈이 돌아간다. 젊은 ‘할파파, 할마마’들도 발에 날개를 단 듯 가볍다. 제 2의 인생을 가볍고 흥겹게 살려는 사람들이 온몸에서 발산하는 기운이 세상을 다르게 이끌어간다.

 어린 시절 바나나는 고급의 대명사였다. 지금은 캘리포니아 오렌지, 칠레 포도, 이탈리아 올리브, 프랑스 와인, 노르웨이 산 연어 등 세계적인 산지에서 모인 재료나 음식이 흔하다. 사회는, 음식점은 주부에게 얼마나 친절한가. 가보지 못한 나라와 음식이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한다.

 세상에게 노크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아이들을 키웠다. 아이들이 자기들의 세상을 향해 나간지도 오래다. 세상이 주부를 위하여 돌아간다는 것을 인식하자 가벼운 행복이 손 안에 잡힌다. 집 안에 머무르는 것 외에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되기까지 오래 걸렸다.

주방에 매어있던 지난날을 억울해한다거나 후회만 하고 있기에는 아직 이르다. 어디를 여행해도 음식점 체인점들이 태반이라 멀리 나온 맛이 나지 않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다거나 듣고 싶은 것들만 들린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돌아보니 전 세계와 전국이 나의 주변에 모여 있다는, 주부인 나를 돕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먹어보지 못한 음식점의 불빛에 기꺼이 이끌린다. 취향을 예상한 알고리즘을 타고 유혹하는 장소로 향하는 주말의 발걸음에 박차를 가한다. 먹방 프로그램에도 기꺼이 시간을 내민다. 하나의 음식에 이끌리는 여행도 다닌다.

호기심은 나날을 새롭게 한다. 소화력도 줄지 않았다. 인생총량의 법칙이 있다면 아껴둔 세월이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밥하기에서 손을 떼어도 좋다고 말한 남편 덕에 이제 더 이상 장바구니를 들지 않는다. 나이 들어가는 중에 발견한 가벼움이 오늘을 추동한다.


2026 9 수필과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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