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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의 만남-에드워드 호퍼 <햇빛 속의 여인>    
글쓴이 : 노정애    26-04-14 09:39    조회 : 60


                                                  세 번의 만남

                                            에드워드 호퍼 <햇빛 속의 여인>

 

                                                                                                      노정애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햇빛 속의 여인(A woman in the sun)>을 처음 본 것은 시인 최영미의 화가의 우연한 시선에서다. 중년의 여인은 나신에 혼자다. 긴 생머리에 날렵한 콧날, 균형 잡힌 늘씬한 몸에 탄탄한 다리 근육. 햇빛을 향해 서 있는 그녀는 강해 보였다. 큰 키에 늘씬하고 또렷한 이목구비, 긴 생머리, 육상과 유도를 해서 건강미 넘쳤던 언니와 묘하게 닮아서 기억에 남았다.

 몇 해 뒤, 형부의 위암 투병으로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나는 언니가 굳은 의지로 역경을 헤쳐 나가길 바라며 이 여인을 데려와 글을 썼다. 그림을 자세히 봤다. 시선은 밖을 향하고 그녀는 태양 빛에 물들었다. 초록의 벽, 뒤에 놓인 흐트러진 침대, 벗어둔 검정 하이힐, 빛이 들어오는 창 앞에 굳건히 서 있는 여인. 그녀의 강한 의지를 담은 모습처럼 언니도 잘 이겨나가리라 믿었다. 형부도 내 글을 읽었다. “나도 건강해지면 글로 써줘.” 허허 웃던 형부는 다음 해 우리 곁을 떠났다.

 두 번째 만남은 큰아이를 보러 간 뉴욕에서다. 짧은 일정에 엄마만 간다고 했을 때 딸은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었다, 함께하면 무엇이라도 좋았지만, 번잡한 관광지는 피하고 싶어서 산책하듯 미술관이나 가자.” 했다. 그렇게 몇 개의 미술관을 관람하고 현대미술을 보자며 아이가 데려간 곳은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이었다. 낯선 작품과 설치 미술은 재미있고 신선했다. 다양한 연령대와 피부색도 다른 많은 관람객 사이를 누비며 들어갔던 전시실에서 나는 못 박힌 듯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 그림이 여기 있었구나!

 벽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햇빛 속의 여인>을 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주위는 조용했다. 햇빛을 향해서 서 있는 그녀와 나만 있었다. 살짝 눈물이 났다. 그녀에게 조금 가까이 다가갔다. 눈 밑에 붉은 실금이 보였다. 책에서 봤을 때 보지 못했다. ‘울었나? 울고 싶었던 마음이었나?’ 강해 보였는데 눈물을 삼키며 서 있는 것 같았다. 5년 전 형부의 장례식장에서 붉게 충혈된 눈으로 손님을 맞던 언니가 떠올랐다. 이 그림을 먼저 봤다면 글을 좀 더 잘 쓸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가까이에서 그리고 몇 걸음 뒤로 가서 보고 또 봤다. 멀리 창밖으로 보이는 산의 능선도, 윤곽만 보이는 그림 액자도, 짙은 초록의 바닥에 비친 긴 그림자도, 손가락에 끼워진 불 꺼진 담배도 보였다.

 호퍼가 떠나고 아내 조세핀은 휘트니 미술관에 내 남편의 진가를 알아봐 줘 고마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자료 일체와 그의 작품 3,000여 점을 기증했다. 그래서 이곳에 호퍼의 작품도 많았고, 별도의 전시 공간도 있었다. 이 그림이 작가의 다른 작품에 비해 101.9x152.9cm로 크기는 했지만, 벽면을 가득 메운 대형 그림은 아니었다. 관람객도 많았다. 그 순간 왜 그렇게 크게 다가왔으며 주위에 아무도 없는 듯 느낀 것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다시 조우한 것은 5년 후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223.4.20 ~8.20)는 한국 최초로 전시되는 호퍼의 개인전이었다. 회화, 소묘, 판화 등 270여 점이 전시되고 공동 주최가 휘트니 미술관이라 보기 전부터 기대가 되었다. 평일 오전에 갔는데도 관람객은 넘쳐났다. 화가의 삶을 좀 더 자세히 작품과 함께 감상할 수 있었다. 호퍼는 5살 때부터 드로잉에 재능을 보였다. 그가 그린 광고 미술과 삽화용 에칭 판화들도 볼 수 있었다. 삽화가로 명성을 얻어 광고 포스터로 1등 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그림이 제대로 평가받고 팔리기 시작한 것은 조세핀 니비슨 호퍼(Josephin Nivision Hopper,1883~1968)를 만나고부터였다. 조세핀은 교사였으며 수채화를 그리는 화가로 명성을 쌓아가는 중이었다. 활달한 성격에 사교성도 좋아서 주변에 늘 사람이 많았다. 1924년에 과묵하고 자기 그림 속에서만 살았던 호퍼와 결혼했다. 아내는 남편의 조력자이며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었다. 예술 딜러, 컬렉터, 큐레이터 및 기자들과 교류하며 호퍼의 작품을 홍보했다. 그의 그림을 알리고 전시하고 판매되도록 힘썼다. 한때 극단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남편의 그림 속 모델이 되었다. 자세를 취해주면 호퍼는 상상 속에서 다른 여인들을 만들어냈다. 많은 그림에서 모델 조세핀이 등장한다. 부부는 항상 함께였다. 문학, 영화, 연극 등을 통해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고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다.

 <햇빛 속의 여인>은 관람객이 너무 많았고, 뜻밖의 만남이 아니어서였는지 처음 봤을 때의 전율은 없었다. 이 그림은 호퍼의 나이 79세인 1961년에 완성했다. 그는 작품을 완성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렸는데 말년에는 1년에 두 점 정도 만 그렸다고 한다. 그즈음 완성한 이 그림도 아내가 자세를 취해주고 화가는 자신의 상상을 더 해 완성했다. 작업 당시의 상황과 특징 등을 꼼꼼하게 메모한 <작가의 장부>가 전시 중이었다. 남편은 한 작품을 완성하면 그 그림을 작은 스케치로 그려 넣었고, 아내는 작품에 대한 일화나 세부 사항까지 생생하게 작품을 설명했다. 판매 내역, 대여와 전시 이력 등 자세히 기록했다. 장부는 3권이었다.

 장부에 기록된 <햇빛 속의 여인>의 조세핀 설명을 보니 이른 10월 추운 날에 그리기 시작함. 작은 여성의 비극적 모습 더 멀리 동쪽을 바라보는 언덕 면에 비치는 햇살, 바깥 하늘은 아직 어슴푸레해서, 방 안도 온통 청록색, 침대 아래 검은 하이힐 구두, 담배와 여자의 슬픈 얼굴은 그늘짐.’

 ‘여자의 슬픈 얼굴은 그늘짐’ 5년 전 휘트니 미술관에서 내가 봤던 붉은 실금이 생각났다. 남편의 폭력과 자신의 그림에 대한 조롱으로 작품 활동을 접다시피 한 조세핀. 190cm를 넘긴 장신의 호퍼와 150cm 남짓한 조세핀은 자주 격렬하게 다투었다고 그녀는 일기에 남겼다. 78세의 그녀가 10월의 추운 날에 포즈를 취할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장부에 남긴 작은 여성의 비극적 모습은 본인을 말하는 것이었으리라. 모델이 되어 그림 속에만 있는 자신의 신세가 울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태양 빛에 물들어 있지만 어쩐지 슬퍼 보였던 그녀.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할 이유가 없다.”라는 호퍼의 말처럼 그는 그림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었나 보다. 슬픈 아내의 마음을 담아낸 이 화가를 예술가로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80세에 부부는 많이 아팠다. 호퍼가 떠난 다음 해에 조세핀도 남편 곁으로 떠났다.

 전시장을 나오며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내년이면 큰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며 아이들 이야기만 한다. 가까이 딸이 살지만, 혼자인 언니다. “외롭지 않아?” 물으니 외로울 틈도 없다. 바빠서 하루가 너무 짧다. 아직은 건강해서 일할 수 있으니 그저 감사하지,” 역시! 언니다.  

 

                                                                                     <한국산문>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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