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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권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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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월드 사랑    
글쓴이 : 권순예    26-09-16 12:54    조회 : 35
 딩동. “누구세요?” 하며 문을 여니 장항동에 사는 작은 시누이가 감자 한 상자와 호박, 가지, 양배추, 고추, 오이 등이 담긴 큰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다. 들어오라는 말도 하기 전에 빨리 가야 한다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휙 사라진다. 시누이는 일산으로 시집와 농사일하면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19909, 엄청난 폭우 때문에 한강 제방이 무너지면서 일산 일대 83개 마을과 넓은 농경지가 물에 잠기는 대홍수가 있었다. 걱정되어 달려가 보니, 혼수로 해 온 시누이의 장롱이 기와지붕 위에 올라가 있었다. 참으로 기가 막혔는데, 그 모진 삶의 무게를 어찌나 꿋꿋이 잘 버티어 냈는지 이제는 당당한 촌부가 된 시누이다.

 덕분에 나는 여름 채소를 거의 사지 않아도 된다. 시누이가 보내준 농작물은 마트에서 사는 채소들보다 보존 기간이 훨씬 오래가기 때문이다. 시누이가 주는 가을 상추는 크기가 작은 편인데, 상처 하나 없이 어찌나 잘 따주었는지 물기 없이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면 석달이 지나도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 당근도 흙만 잘 털어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면 1년이 가도 썩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은근히 여름이 되면 시누이의 채소를 목매어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나 보다.

 딱 한 번 어느 해인가, 바리바리 가져다주던 일용할 양식이 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 옥수수는 오겠지 하며 기다렸지만, 옥수수마저 오지 않았다. 뜬금없이 남편이 막내한테서 옥수수 안 왔어?” 하고 물었다. 남편이 나보다 더 기다렸나 보다. 서운한 마음에 앞서 덜컥 걱정이 밀려왔다. '어디 아픈 건가, 병원에 입원이라도 한 건 아니겠지!' 싶어 전화라도 해볼까 했지만, 꼭 농작물 왜 안 보내주냐고 독촉하는 것 같아 그만두고 애타게 기다리기만 했다.

 드디어 추석을 앞두고 반가운 시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웬 선물을 그리 또 보냈냐며 웃음이 듬뿍 담긴 목소리였다. 그러면서 농사일이 너무 힘들고 쉬고 싶어서 올해는 땅을 놀렸다고 했다. 나는 그 고단함을 잘 알기에 아이고 잘했다라며 탁월한 선택이라고 환호를 보냈지만, 내심 한편으로는 말로 다 표현 못 할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그런데 시누이가 눈치를 채서일까, 그다음 해부터 지금까지 내게 '여름날의 산타클로스'가 되어주고 있다.

 파를 다듬어 파란 부분은 숭숭 썰고 하얀 부분은 송송 썰어 냉동고에 보관하고, 한 소쿠리가 넘는 깻잎을 씻어 양념장에 재운다. 굵고 실한 감자를 꺼내 깎다 보니 어김없이야야, 칼로 깎으면 감자 살점이 다 나가서 먹을 게 없단다하시며 훅 뺏어다가 오목하고 넓적한 옹기그릇에 담고는, 볏짚 수세미로 벅벅 문질러 닦아내 살점 하나 깎이지 않은 뽀얀 감자로 변신시켜 가져다주셨던 시어머니가 떠오른다.

 만삭의 몸으로 시어머니 생신에 갔었을 때,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비를 맞아가며 집 뒤 밭에서 큰 감자를 캐 오셨다. 그러고는 깨끗이 씻어 감자 하나를 골라 칼집을 몇 번 툭툭 내시더니 뚝딱 '감자도장'부터 만드셨다. 이어 강판에 감자를 갈고, 기름 종지에 감자도장을 담갔다가, 달궈진 너른 팬에 감자도장으로 기름을 고루 바른 뒤 얄팍하게 감자부침을 해주셨다. 어찌나 기름지지 않고 담백 하던지 아무리 먹어도 느끼하지 않고 맛있었다. 그 감자부침 맛은 그 어디에서도 다시 찾을 수가 없다.

 더운 여름날 아들을 낳아 병원에 있을 때도 어머니는 꿀 한 병을 들고 오셔서 꿀물을 차게 타 주셨는데, 산고의 고통이 싹 사라지는 진짜 '꿀맛'이었다. 산바라지를 해주고 가시면서 쌀은 항아리에 넣고 먹어야 한다며 큰 항아리와 양은 다라와 김치통을 사서 넣어주시며 부지런히 알뜰하게 살아라. 친정어머니도 안 계신 데 동생들 시집갈 때 장롱이라도 보태주려무나하셨던 그 따뜻한 말씀은 지금도 삶이 힘들 때마다 큰 힘이 된다.

 온통 나에게 사랑만 주셨던 어머니는 안타깝게도 갑자기 몸져누우시더니, 내가 며느리가 된 지 2년 만에 황망히 세상을 떠나셨다. 살아생전 정성을 다해 잘해주셨는데 나는 보답할 기회조차 없었던 죄스러움에 어머니가 사주신 그릇들조차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어머님과 따스한 정을 나누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감자만 봐도 늘 어머니가 그립다.

 바쁘다며 무심한 듯 사랑스러운 농작물을 던져두고 돌아서는 시누이의 모습에서, 어머니가 환한 얼굴로 잘 지내지? 이거 맛있게 잘 해 먹어라.”하시며 다녀가시는 것만 같다.

 가까이 살면서 오랜 세월 변함없이 살뜰한 정을 채워주는 시누이가 참 고맙다. 세찬 비바람 속에서도 지붕 위 우뚝선 장롱처럼 삶을 단단히 지켜낸 그녀가 기름진 땅을 일궈 보내온 온정 덕분에 올 장마도 잦지 않고 뽀송뽀송한 쾌적함으로 채워가며 이 더위도 감사함으로 끄떡없이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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