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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론의 꽃    
글쓴이 : 유영석    26-04-05 10:27    조회 : 571

샤론의 꽃

유영석

 

새벽예배 가시던 그 걸음으로 장모님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20249월 찾아온 88세의 이별은 갑작스러웠다. 그날 이후 우리 가슴에는 겨울이 왔다. 장인어른과 부부의 연을 맺고 자녀를 믿음으로 키운 그분이 남긴 것은 지워지지 않을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매일 새벽 우리를 깨운다.

장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샤론의 꽃이 떠오른다. 성경 속 샤론의 수선화와 골짜기의 백합화처럼 그분의 삶은 소박했으나 깊은 향기가 있었다. 그 향기는 그늘을 가리지 않고 스며들어 말없이 빛을 건넸다. 봄의 냇가라 불리는 춘천(春川)에서 조용히 피어 세상을 아름답게 했다. 한 송이 꽃이 그렇게 졌다. 하지만 그분의 향기는 남았다.

어느 날 구두닦이 청소년을 집으로 불러 밥상을 차렸다. 거리에서 구두를 닦던 아이의 손은 까맣고 거칠었다.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먹는 동안 장모님은 조용히 기다렸다. “너는 귀한 존재란다.” 따뜻한 밥 한 그릇에 그 말씀을 담으며 아이의 눈을 마주 보셨다. 그분의 낮은 자리는 누군가의 눈높이에 맞춰 앉는 것이었다.

장모님은 평생 가계부를 쓰셨다. 결혼 후 오랜 기간 한 권도 빠짐없이 기록하셨다. 그 성실함은 장인어른의 사업 장부에서도 빛을 발했다. 훗날 세상의 엄격한 잣대가 그 장부를 훑었을 때도 단 하나의 결격이나 추징이 없었을 만큼, 그분의 기록은 정직한 삶의 증거물이었다. 당신의 손은 한 푼 앞에서는 닫혔으나 어려운 이를 위해서는 주저 없이 열리셨다. 춘풍추상(春風秋霜),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했고 이웃에게는 봄바람처럼 온화했다. 먼저 자신을 비워 남을 채우셨다.

새벽마다 일어나 예배당으로 향하던 뒷모습이 선하다. 삼십 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한겨울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그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어둠 속을 걸어 첫 불을 켜는 이가 장모님이었다. 늘 손 닿은 곳에 둔 성경책은 영혼을 깨우는 창이었고, 무릎 꿇은 기도는 하루를 여는 문이었다. 교회 장로로 선교와 봉사에 마음을 쏟았지만, 그분에게 믿음은 직분이 아니라 삶이었다. 기도는 말이 아니라 발걸음이었다.

장모님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셨다. 장인어른이 시작한 그 일을 평생 이어가신 것이다. 당신은 고기를 드시지 못하면서도 성가대원들을 위해 갈비찜을 정성껏 끓이셨다. “내 음식은 모두가 맛있다고 해.” 그렇게 말씀하시며 웃으셨다.

명절이면 며칠 전부터 손길이 분주해지셨다. 자녀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손수 만드셨다. 문 앞에서 기다리시다 환한 미소로 맞이하셨다. 전화를 끊을 때마다 말씀하셨다. “항상 건강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하길.” 그분에게 사랑은 마음에 담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장인어른이 치매로 고생하시다 먼저 떠나셨다. 장모님은 홀로 남으셨다. 당뇨와 싸우며 텅 빈 집을 지키셨다. 밤이 길어지는 날이면 불은 일찍 꺼졌다. 평생 장인어른의 사업을 돕고 교회 일에만 헌신하셨지만 정작 당신을 위한 시간은 없었다. 내가 뵐 때마다 말씀드렸다. “산책도 하시고 운동하세요.” 장모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노년에 교회 친구분들과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셨다. 처음으로 당신을 위한 시간이었다. 버스 여행에서 찍은 사진 속 모습은 소녀처럼 환했다. 그분에게 봄은 늦게 찾아왔다.

추석에 장모님을 모시고 산책을 하기로 했었다. 아내와 그날을 기다리며 여름을 보냈다. 소천하시기 며칠 전 무더위 속에 계실 장모님 생각이 났다. “이번 주에 춘천 가자.” “그래야지. 이번 주엔 꼭.” 그러나 일이 생겼다. 아니, 핑계를 찾았다. 우리는 미뤘고 끝내 가지 못했다. 그 미룸이 그렇게 오래 남을 줄 몰랐다. 발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했다. 가까운 곳이 가장 먼 곳이 되었다. ‘이번 주는 영원히 오지 않았다. 장모님도 어머니다. 우리는 불효자가 되었다.

사위가 쓰는 글을 누구보다 애틋하게 아끼셨다. 문인들과 함께 낸 공동문집을 드리면 혼자 쓴 책인 듯 자랑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 나만의 책을 내고 싶었다. 2년 전 첫 저서 바다를 꿈꾸는 개구리를 드렸다. 장모님은 책을 가슴에 보듬으며 소녀처럼 좋아하셨다. 사진 속에는 당신의 환한 미소와 문장의 향기가 함께 숨 쉰다.

샤론의 꽃 예수는 장모님이 즐겨 부르신 찬송가였다. 새벽에도, 저녁에도, 명절날 가족이 모이면 으레 불렀다. 장모님의 찬송 소리는 꾀꼬리처럼 맑고 밝았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불렀다. 찬송가는 여전히 우리 안에서 울린다. 홀로 선율을 따라 부를 때면 낮게 깔리던 그분의 화음이 등 뒤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장모님이 두고 가신 흔적들이 있다. 손때 묻은 성경책엔 밑줄이 빼곡하고, 가계부엔 한 푼 한 푼이 기록되어 있었다. 사위의 글을 축복하며 환하게 웃으시던 그날의 기록도 남았다. 명절이면 우리를 맞이하던 춘천의 그 집. 문을 열면 장모님이 계신 것 같다. “어서 들어오렴, 배고프지?” 목소리는 사라졌지만 집은 아직 온기를 품고 있다.

장모님은 떠나셨지만 그 사랑은 지금도 내 안에 머문다. 새벽예배 가던 그 걸음이 나를 걷게 한다. 낮은 자리에 앉던 그 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따뜻한 밥상을 차리던 그 손길이 나를 쓰게 한다. 죽음은 사라짐이 아니라 새로이 피어남이었다. 샤론의 꽃은 아직 시들지 않았다.


- 한국산문 202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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