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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절한 그 놈 목소리    
글쓴이 : 곽지원    26-06-03 10:13    조회 : 584

친절한 그 놈 목소리

 

곽지원

 

"곽지원 고객님이시죠?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으시네요. 쿠팡에서 K카드를 신청하셔서 직접 배송해 드리려고 하는데, 오늘 집에 안 계신가요?"

초인종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무슨? 카드도 신청한 적이 없는데 뭔 말?

원래 모르는 번호는 안 받는데, 헤드헌터 일을 시작한 이후로 혹시나 저장 안 한 후보자가 전화할 수도 있으니 받았더니!

 

"아, **, ****생 아니세요?"

내 생년월일을 정확히 알고 있다!

"맞는데요."

"주소가 2021407호 아니세요?"

"네? 여긴 4층까지 밖에 없는 빌라인데 무슨. 주소에 뭐라고 적혀 있나요?"

"마포구인데요.?"

그때부터 얼굴에 열이 오르기 시작한다.

"여긴 경기도고요,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마포구에 살아본 적이 없어요. 쿠팡도 로그아웃한지 꽤 됐고, 카드 신청은 더더구나 한 적이 없고요!"

 

쿠팡에서 내 정보가 해킹 당했다는 무성의한 문자만 두 번 받기는 했지만, 설마설마 했다. 자칭 택배기사라는 양반은 카드가 들어있는 봉투에 신고 전화번호가 있다며, 친절하게 그 번호를 불러 주었다.

씩씩거리며 그 번호를 눌렀더니, 젊은 남성이 받는다.

"네, K카드 고객센터입니다."

전후사정을 따발총처럼 설명하니, 매우 침착하고 친절하게 대응한다. 무슨 은행을 이용하냐, 주식이나 증권사는 없냐. 해킹 당한 게 틀림없으니 카드는 정지시키고 금융권에도 보호 조치를 신청해 준다고 한다. 그때 갑자기 화면에 빨간색 경고등과 함께 느낌표가 달린 문장이 눈을 찌른다. '보이스피싱으로 의심되는 번호입니다!'. 순간 갈등의 기로에 섰다. 그냥 끊을 것인가, 아니면 더 간을 볼 것인가.

아직 계좌번호를 묻지는 않았으니 좀더 두고 보기로 한다. 상담원의 친절은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된다. 심지어 신분증 사진이 앨범에 있으면 또 털릴 수 있으니 삭제하라는 조언까지! 이 정도면 통화를 마무리할 때가 된 듯한데, 상담원은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고객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어플을 깔게 안내해 드릴 테니 플레이스토어로 들어가시겠어요?"

그 순간 빨리 뛰기 시작하는 심장. 때로는 심장이 머리보다 더 현명하다. 심장 박동에 귀를 기울이자.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자. 그 와중에 '감정노동자'인 상담원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겠다는, 난데없는 이미지 메이킹 심리는 또 뭔가!

"아, 그건 나중에 깔게요. 지금 제가 일이 있어서 그만 끊겠습니다."

 

바로 검색창에 들어가서 미친 듯이 정보를 캤다. 아니나 다를까, 쿠팡 K카드 신청, 보이스피싱, 어플, 내가 알고 싶어하는 정보가 줄줄이 뜬다. K카드 고객센터 번호를 찾아서(당연히 택배기사가 알려준 번호와는 다르다!) 누른다.

신호가 가자마자 자동으로 나오는 안내의 말은 나 같은 예비 피해자들을 향하고 있었다. , 대체 언제부터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아찔하다.

이번에는 낭랑한 여자 상담원에게 내가 당한, 아니 당할 뻔한 사연을 늘어놓는다. 그녀는 중간중간에 안타깝다는 추임새도 넣으며, 하루에도 수십 번은 들었을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준다. 내가 어플은 안 깔고 끊었다고 하자, "정말 다행입니다, 고객님."하는 반응에서 그녀의 진심이 읽힌다.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끝까지 품위를 지키던 친절한 그 놈 목소리, 잊고 싶다.


*격월간 <에세이스트> 26년 5-6월호에 게재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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