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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순    
글쓴이 : 봉혜선    26-04-04 15:20    조회 : 51

보리순

 

봉혜선

 

남편이 찾아준 대로 보리순 1kg를 주문했다. 틀림없이 주문했다고 생각하고 기다렸는데 생물임이 확실한 보리순이 오지 않은 채 며칠이 지났다. 배달비를 아끼려고 한 번에 다른 상품을 합배송 주문했으니 늦어지는 것이라 여기고 또 다른 주문에 깔려 잊었다.

퀵 배송을 자랑하니 이상했지만 주문품들이 계속 도착하고 있어 남편의 채근에만 적당히 대꾸하고는 잊었다. 내가 게으름을 피운 게 아니니 피해갈 데는 있는 셈이다. 이제는 먹는 것에 대한 욕망을 자제할 줄 알게 된 남편을 이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나? ‘그래, 어디 가서 보리순을 베어오거나 타작해 오라지 않는 것만도 어디냐, , 조그마한 주말농장에 보리를 기르자 하지 않는 것도 고맙다.’

검색하면 다 나오는, 배달의 민족 후손다운 혹은 배달의 천국에 사는 요즈음이다. z세대인 막내와 세 식구 각자 같은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가동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배달비가 상품보다 비싼 경우, xyz세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어느새 구세대가 되어 있는 상태로서는 결제 직전 포기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월정액을 내야 하는데 주문하는 달이 없을 때도 있어 안 그래도 취소할까 하던 참이었다. 직접 보는 것이 제일 믿을 만하지 않은가. 그래도 어쨌든 말이다. 합의 하에 내 것만 남기고 다 취소했다. 주문은 내 몫이다.

붕어가 들어 있지 않은 간식에 하필 그렇게 붙인 이름인 붕어빵을 먹으면서 쓴 글에서 밝힌 바 있지만, 끓인 생선을 먹지 못하는 나로서는 홍어는 물론 그 간이라는 를 먹는 건 내내 풀지 못할 숙제다. 그래도 남편이 직접 산지를 수소문해 잘 삭힌 홍어를 주문하는 옆에서 어깃장을 놓거나 하지는 않는다. 내가 없을 때 먹으라는 주문만 했을 뿐이다. 뾰족하던 편식도 그저 피해갈 뿐, 결혼 40년이 되어가니 이제는 따로 또 같이 각자 좋아하는 음식으로 단독 식사가 가능해진다.

홍어 애를 먹기 위해 남편은 혼자 먹기에 다소 많은 홍어 한 마리를 주문했다. 날개 등 부위별로 주문하면 애를 주지 않는다고 했다. 전문음식점에서도 애탕은 단골들에게만 조금씩 내놓는 음식이라고도 했다. 애탕을 끓여 먹으려고 보리순을 주문한 것이다. 보리순은 홍어 애탕을 끓이려면 꼭 들어가야 하는 재료라 한다. 살진 홍어가 끌어올려지는 늦겨울에 맞춰 순이 오르는 보리순을 넣어 끓이는 지혜를 새삼 돌아본다. 메밀에 무를 섞어먹는 지혜를 발휘한 조상들처럼, 그런 지혜를 어떻게 어떤 면에서 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곤 한다. 지혜로운 조상이 있으니 후손으로서 자랑스러움과 책임감을 잃지 않는다면 결국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까.

아무래도 주문을 잘못했지 싶어 혼자 찾아 다시 주문했다. 주문품은 다음 날 즉시 도착했다. 커다란 종이 박스는 급한 손길일까, 배달 시의 문제였을까, 많이 찌그러진 상태였다. 속에 것이 형태가 없으니 그럴 수도 있다. 밭에서 막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신선한 상태를 유자하기 위해 급 배송 되었다고 생각하니 맘이 편했다.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렸다.

보리의 순은 처음 보는 풀이다. 주말농장 아무 데나 마구 올라오는, 길고 모양 없고 이름을 알 필요 없는 잡초와 닮았다. 내 손 아래에서 무참히 뽑혀나가는 무성한 잡초, 딱 그 모양이었다. 보리 열매를 매달지도 않았고 혹시 보리 냄새가 나려나 싶어 맡아보았으나 서울 촌놈으로서는 구별 불가다.

1kg이 많기도 많다. 냉동해 둔 홍어 애를 들여다보니 애가 풀 사이에 들어가 헤엄을 치면 보이지도 않을 것 같았다. 급히 보리순 먹는 방법을 검색했다. 머위 잎처럼 데쳐 무치면 먹을 수 있다고 나왔다. 머위 잎 맛은 알고 있으니 맛이 짐작되기도 했고 곡식인 보리를 반찬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새로웠다. 찬 성질이니 냉장 보관하면 한 달이 가능하다고도 나왔다.

나물용으로 두 주먹을 데쳤다. 푹 끓이지도, 설렁설렁 넣었다 빼지도 않는 그 중간쯤으로. 애탕용은 씻어 물기를 뺐다. 다소 많다. 남은 건 습기 방지용으로 넣어 주었다고 짐작되는 신문지에 둘둘 감아 냉장고 행으로 갈무리가 끝났다. 냉장고를 열면 일부러 신문지와 눈 맞춤하기도 했다. 이틀 후 다시 1kg이 오기까지는 신문물처럼 새로운 걸 경험하듯 좋았고 부부간 대화거리로도 충분했다.

보릿고개, 보리 문딩이, 겉보리 서 말이면 처갓집 신세를 안 진다, 에 이어 보리차, 보리굴비, 보리고추장, 보리건빵, 보리수, 보리암(菩提庵), 열무 냉면이나 칼국수 집에서 서비스로 나오던 보리밥 등 보리가 들어간 말이 떠오른다. 보리 혼식을 검사하던 초등학교 시절 보리를 많이 섞은 도시락을 싸온 친구도 생각난다. 검은 밥을 한 숟갈 빌려 흰밥 위에 섞던 초등학교 장면이 소환된다. 보리 투성이 밥을 부끄러워하던 그 친구가 최고로 인기가 있는 날이었다. 보리밥 색을 닮은 친구 집에 놀러가 엄마 없는 빈 집을 자유스러워 하던 기억까지. 보리는 생활 친화적이다. 다만 내게는 익숙하지 않다. 보리밥을 입에 넣으면 쌀과 분리되어 입속에서 따로 노는 느낌 때문에 친해지지 못했다.

신혼 초 보리밥을 지으라던 남편의 요구에 따라 쌀과 함께 지어놓으니 쌀에 비해 세 배는 더 커진 모양에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내 모습. 따로 삶아 두었다가 밥 지을 때 넣으라는 방법은 끝내 익숙해지지 않아 새댁 밥 짓는 솜씨가 낙제였던 기억도 보리와 친해질 기회를 앗아갔다. 푹 무르지 않은 보리알로 인해 혼났던 상처는 아물어지지 않은 채 덮여 있었나 보다. 납작보리라는 불리지 않아도 된다는 보리쌀을 사다 섞은 밥은 또 다른 퉁박거리일 뿐이었다. 남편이 집어던진 뜨거운 보리차 주전자에서 쏟아져 흩어진 검고 팅팅 분 보리는 지금도 여전히 아프고 뜨겁다.

엄마가 끓여 두던 보리차는 정겹고 구수했다. 추억이나 책 속의 단어 등을 차치하자. 새로 온 보리순이 먼저 주문한 것인지 나중 것인지 이미 안중에 없다. 지금 문제는 보리가 자라는 모습을, 아니 보리 열매가 달린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는 채로 나타난 보리순이 너무 많다는 현실이다. 보리순 사태다. 홍어를 큰 놈으로 두 마리쯤 더 사라고 해야 할까. 먹는 걸 도울 수는 없어도 맛 외에 단순 기호 식품이 아닐 수 있으니 남편 건강에 좋을 수 있다. 내 간장이 탄다.

어릴 때 해보거나 먹어보거나 익숙했던 것들이 생활로 인해 밀려 났다가 나이가 들며 회귀되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요즘이다. 목숨을 잇기 위해 먹었던 음식이 건강식품, 웰빙 식품의 이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거친 음식이나 전통 음식이 외국에서 케이(K) 푸드라는 이름으로 환영받고 있다고 한다.

보리는 여름 더위에 제 격이라 했다. 보리를 사다 푸욱 끓여 밥을 하고 냉동해 둔 보리순을 무치고 보리 된장국을 내어 놓는 여름을 상상한다. 이만하면 ‘K- 아내아닌가. 낯설고 모르던 보리가 나를 케이 마크가 찍힌 검증된 아내가 되게 해줄지 모른다. 결국 알 것은 알게 되는가. 깨우치며 사는 세상오늘도 세상 발견아는 것, 그것만이 내 세상

 

<<수필미학. 2026,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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