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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화꽃 필 무렵    
글쓴이 : 문경자    26-06-04 22:32    조회 : 6


매화꽃 필 무렵

 

   아침 인사로 지인이 카톡으로 보내준 매화꽃을 보니 코끝에 향기가 스미는 듯 좋았다. 화병에 꽂아 놓은 매화나무 가지에서 밤사이 꽃망울이 맺혔다가 잠자는 동안 꽃들이 아침에 피어났다고 했다. 양지바른 언덕도 아니고 매화를 키워서 축제를 여는 곳도 아닌데 꽃을 피워 주인에게 기쁨을 안겨주었 다니 덩달아 봄이 왔구나 하는 생각에 들뜬 기분이 들었다. 진달래, 민들레, 개나리, 목련, 벚꽃들도 이제 만개할 봄이다. 땅바닥에서 피는 키 작은 풀꽃들도 하나 둘 피어날 준비를 하며 뽐낼 것이다. 벌써부터 꽃놀이는 어디로 갈까! 즐거운 고민을 하게 된다.

 매화꽃술에 파묻혀 꿀을 찾아 윙윙거리는 벌들의 요란한 소리가 들리는 듯 귀를 의심했다. 작고 예쁜 꽃은 추운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의 시작을 알린다. 개화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전국의 명소마다 축제가 열린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 더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한다. 하얀색, 연분홍, 진분홍색으로 핀다. 그 중에서도 하얀 매화꽃이 마음에 와 닿았다. 꽃들도 사연이 있듯이 내 삶에도 꽃을 피우기 위해 살아온 세월의 하얀 꽃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매화꽃이 피면 더 슬픈 계절이라 했다. 가난의 고통이었다. 엄마를 여윈 두 손녀를 키우는 할아버지는 매화꽃이 필 무렵이면 살아갈 일이 태산 같았다. 빨리 봄이 와야 농사를 지어 배부르게 먹을 텐데 하는 걱정이 되었다. 집 담벼락에는 매화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이른 봄에 눈이 펄펄 내리는데 꽃봉오리가 달려있었다. 주름진 할아버지 얼굴이 환하게 웃음 짓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매화나무는 덩치가 큰 것도 아니고 제멋대로 자랐다. 할아버지 다리에 피어나는 구불구불한 가지도 영양분이 모자라 가죽만 남아있었다. 내 동생과 나도 삐쩍 마른 다리는 누가 보아도 궁핍한 모습이었다. 매화꽃을 바라보며 눈 속에서도 저렇게 피어나니 너희들도 지금은 이렇게 힘든 생활을 하지만, 언젠가는 좋은 세월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열심히 공부하고, 친구들과 잘 지내야 한다.

 “할아버지는 얼굴이 왜 길쭉하게 생겼어예. 순덕네 할아버지 얼굴은 넓적하고 다리도 뚱뚱 하던데예.”하고 물어보면 그 집은 농사도 많고 아내가 있어 음식도 잘 만들어 주니 그렇다. 너희 어미가 살아 있을 때는 할비 얼굴도 그랬다.”그늘진 얼굴에는 산골짜기처럼 움푹 파인 골이 너무 깊었다. 삶의 무게도 그랬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지나가는 세월이야 어찌할 수가 없지만 손녀를 위해서 삶을 꾸겨가며 살아 가는 할아버지는 꿋꿋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온 산과 들에는 꽃잔치가 벌어졌다. 그쯤이면 매화꽃은 지고 만다. 잎이 돋아나 푸름의 기쁨으로 야윈 몸을 감쌌다. 매화꽃은 할아버지의 마음속 아픔을 어루만져주며 위로를 해주었다. 하얀 눈 속에 피어난 매화꽃 위에 살포시 내려 앉은 눈꽃송이가 더해져 아름다웠다.    

엄마가 살아있을 때는 매화꽃이 피면 멀리 떨어져 공직생활을 하며 지내는 아버지의 소식이 궁금했다. 다른 집들은 남편과 자식들을 보살피며 즐겁게 사는 모습이 엄마 눈에는 좋아 보였다. 엄마는 매실이 노랗게 익으면 따서 깅자야 이거 보약이라 생각하고 묵어라.”하며 매실을 물로 깨끗하게 씻어 입안에 넣어 주었다. 쓴맛과 신맛에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정성을 봐서 눈을 질끈 감고 꼭꼭 씹었다. 단맛이 졸졸 나왔다. 밥을 많이 먹어도 소화가 잘 되었다. 심심하면 익은 것을 따서 먹었다. 국이네 엄마가 깅자는 잘 묵는데 너는 우째 이래 몬묵노. 얼른 한 개만 묵어라. 감기에도 도움이 되는 기라.”했더니 국이는 혀를 날름 내밀며 매화나무와 멀어져 갔다. 옛날에는 약이 없어 동네마다 약재를 파는데 주로 직접 재배해 공짜로 주기도 했다. 구기자는 어디에 좋고, 치자는 어디에 쓰이며 탱자도 한몫을 했다. 양지바른 곳에 있는 매화나무는 덩치도 크고 꽃도 화려하게 보여 향기가 퍼져 나갔다. 유난히도 다른 꽃보다 사랑받는 것은 먼저 피는 것이 최고의 장점이었다. 노랗게 익은 매실을 잘 말려서 한약방에 내다 팔았다. 푹 삶아 물을 마시면 몸살에 좋은 효과를 본다는 것도 소문으로 들었다.  

요리 연구가들은 여러 가지로 상품을 만들어 돈도 벌고 관광단지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단맛을 낼 때는 설탕보다 매실엑기스를 음식에 넣으면 소화도 잘 되고 자연 식품이라 집에서도 많이 담가 먹는다. 나도 노랗게 익은 매실을 담아 따듯한 차나 음식에 넣어 먹기도 한다. 이런 날은 할아버지 엄마에게 매실차를 대접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26년『한국산문』6월호 신작 수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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