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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벤자민이 된다    
글쓴이 : 곽지원    26-03-31 10:35    조회 : 709

누구나 벤자민이 된다

 

곽지원

 

그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무슨 말을 해도 반응이 없다. 매번 같은 질문을 해놓고, 막상 대답하면, “안 들려.”라고 말한다. 이제는 정상적인 대화를 포기하고 핸드폰에 글자를 키워서 보여준다.

** 교수 다녀갔죠? 잘 만나셨어요?”

필답으로 한 질문에 그의 눈과 표정은 미세한 변화도 없다. 제자의 이름이나 그가 면회를 온 사실조차 까먹은 건지, 알 수가 없다.

젊을 때는 해외 유학을 다녀오고 숱한 제자를 둔 대학교수였으며 여러 번역집과 시집도 냈던 그는, 지금 여기에 없다. 종일 침대에 누워서 어두컴컴한 우물 같은 눈만 끔뻑일 뿐이다. 그의 영혼은 어디엔가 숨어있고, 껍데기만 남아 있다. 늙고 병들면 비로소 평등해진다는 말이 맞다.

그나마 자식들 이름이나 얼굴 안 까먹고, 손주들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으니 다행일까? 물론 스무 해도 훨씬 전에 먼저 저세상으로 떠난 아내가 아직도 살아 있는 줄 착각하고 찾을 때도 있다. 그런 질문을 들을 때면, 모골이 송연하다. 해외에 사는 손녀들 사진을 보여줄 때만, 그의 얼굴에는 아이 같은 미소가 피어난다.

스스로 식사하실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야.”

그 방에서 호흡기나 소변 줄 안 달고 있는 분은 아버님뿐이잖아.”

다른 분들은 맨날 잠만 자.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어.”

 그는 가끔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생각한다.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 왜 나는 이 낯선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나? 아내와 아이들은 왜 안 보이나? 나는 왜 계속 누워 있나? 사람들이 하는 말은 왜 윙윙거리는 소음처럼 들리나?

 요양병원에 입원한 1년 반 동안 시아버지는, “, 병원비가 비쌀 텐데 어떻게 하냐?”나 언제 집에 가니?”, 이 두 마디를 후렴구처럼 반복했다.

요양원으로 옮긴 후 그의 낯빛은 훨씬 밝고 상태도 좋아졌지만, 단골 질문은 사라지고 눈빛은 공허해졌다.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삶이 그에게서 서서히 빠져나가는 게 보인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에서 노인의 외모와 건강 상태로 태어난 벤자민은 나이를 거꾸로 먹으며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죽는다. 말도 못 하고 기저귀를 찬 채로.

벽에 똥칠할 때까지라는 농담 아니 저주를,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기저귀를 찬 상태로 직립보행을 못 하는 노인을 보면,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의문이 절로 든다. 숨이 붙어 있기만 하면 사는 건가? 대화가 불가능해도 사는 건가?

 내 눈에서 빛이 사라지기 전에, 그런 모습을 배우자나 자식들에게 보이지 않고 우아하게 죽고 싶다는 꿈이, 어느덧 버킷 리스트에 올라가 있다.


*[한국산문] 26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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