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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킨즈기 키트    
글쓴이 : 김주선    26-02-24 16:07    조회 : 234
킨즈기 키트/김주선


 가마에서 방금 구워 나온 도자기를 요리조리 살피던 장인匠人이 서슴없이 망치로 내리친다. 멀쩡해 보여도 멀쩡하지 않은 결점이 눈에 거슬렸나 보다. 남이나 주지 아깝게 깬다며 구순의 시모가 망치를 뺏으려는 듯 TV 속으로 들어갈 기세다. 다큐멘터리 「인간극장」 열혈 시청자인 시어머니는 일진을 중히 여기는 분이시다. 복이 달아난다고 이 빠진 그릇은 개밥그릇으로도 안 쓰던 분이 그 장면을 보고 아깝다 하니 새삼스럽다. 아마도 도예가가 망치로 깨부수는 행위는 작품으로서 불완전하고 결함이 많은 불량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쨍그랑~
손이 여물지 못해 그릇을 잘 깬다고 시모는 당신의 설거짓거리를 나에게 맡기지 않았다. 이 빠진 밥공기, 금 간 접시, 주둥이가 깨진 물병 등등. 설거지통에서 구르다가 여기저기 흠집 나고 금이 가는 게 다반사였다. 하물며 접시라도 깨는 날엔 온 집안에 재수가 없다고 해질 때까지 몸을 사린 분이었다. 요즘처럼 그릇이 흔하고 아까울 게 없을 만치 쓰다 버리는 소모품인데도 나도 모르게 뒷덜미가 서늘해지곤 했다.

귀한 손님일수록 일부러 이 나간 접시에 음식을 대접하는 중국인과 달리 우리나라는 징크스로 여기는 문화의 차이가 있다. 유럽도 마찬가지, 전통과 역사가 있는 것이라면 이 나간 것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손님상에 내놓곤 한다. 칠칠찮은 살림살이가 흉이 될까, 우리네 여인들은 버리거나 감추기 십상이다. 오죽하면 사회적 관계에서도 쓸모가 없어지면 우정에 금이 갔다느니 파경을 맞았다고 비유했을까.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는 속담이 생길 정도다.

어느 날, 인터넷 서핑 중에 ‘깨진 그릇 삽니다.’라는 문구가 호객하길래 궁금하여 둘러봤더니 그릇 수선 교실인 ‘킨즈기’의 광고였다. 금이 가고 이 나가고 깨진 그릇을 복원하거나 재탄생하는 수업은 5개월에 총 8번, 수강료는 25만 원에 달했다. 감쪽같이 복원한다기보다는 되레 깨진 부분을 돋보이게 하여 이전보다 더 아름답고 멋스럽게 이어 붙이는 게 본래 의미란다. 수리가 목적이었던 것이 지금은 도자기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전통공예인 킨즈기(Kintsugi, 金継ぎ), 영어로는 금수선공(golden joinery)이라 하여 ‘금으로 이어 붙인다’는 의미가 있는 기법이다. 깨어지거나 흠집이 난 그릇에 옻을 발라 메운 뒤 금이나 은을 칠해 수리하는 것을 말한다. 결함 자체가 디자인의 요소라고 보고 불완전함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고 할까. 16세기 말부터 수리기법이 아닌 하나의 공예로 거듭나면서 도자기 산업에 부가가치를 높였다고 한다. 최근에는 도자기를 의도적으로 부순 후에 킨즈기로 재탄생해 그 의미가 퇴색되기도 한다. 그들은 인생에서의 실패와 상처를 약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성장의 기회로 삼는다고 한다. 균열이 있는 도자기를 버리지 않고 고치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상처를 대하는 자세와 태도를 나타낸다고 하니 우리와는 정서가 많이 다른 듯하다.

필명이 ‘상욱애비’인 모 수필가의 글을 나는 즐겨 읽는다. 그가 대하는 삶의 태도가 배울 점이 많아서이다. 그의 아들 상욱이는 다운증후군 발달 장애가 있지만, 농군이면서 아마추어 보디빌더 선수다. 지금은 래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근육의 반응이 느리고 말을 더듬는 특징이 있지만,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기적처럼 해낸 요즘 말로 핵인싸(인기인)다. 근력이 일반인보다 50%밖에 안 되어 불가능한 조건임에도 신체적 한계를 넘어 인간승리를 만들어냈다. 상욱이가 여러 보디빌더 선수에 섞여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서 있다고 해, 수군거리고 낯선 시선을 보내야 하는 걸까. 아무짝에 쓸모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자가 격리가 아닌 사회참여를 시키고자 세상밖에 세웠다고 한다. 다른 사람보다 지적능력이 떨어지면 어떻고 말이 어눌하면 어떻고 키가 작으면 어떠하냐며, 살아가는 데 아무 불편함이 없는데 비장애인의 곱지 않은 시선이 문제라고 한다. 세상과 부딪히다가 마음에 금이 가더라도 또다시 자갈밭에서 구르기 위해 두려움 없이 집을 나서는 상욱이. 지금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단단한 그릇이 되었다.

그릇의 크기와 모양이 다르지만 다 쓰임이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자기 밥그릇은 들고나온다는 말이 있다. 가마에서 구워질 때부터 결함이 있다고 해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결함을 드러내고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선천적 장애도 이러한데 사고로 후천적 장애가 된 많은 이들이 좌절하고 원망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본래의 도자기보다 킨즈기 도자기의 가치가 훨씬 높다는 것을 안다면 망가지고 부서진 채로 세상을 탓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릇에 역사와 스토리가 있다면 아무리 이가 빠져도 버리기는 쉽지 않다. 가보로 내려오는 유물이거나 비싼 명품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말년에 도예에 빠져 많은 도자기를 남긴 피카소 역시, 다른 도예가가 망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거나 멀쩡하게 빚은 도기를 일부러 뭉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오늘날 킨즈기는 도자기뿐만 아니라 심리적, 철학적 은유로도 사용된다. 관점에 따라 결함은 흠이 아니라 미美의 한 부분이며 불완전의 미학이란 소리다. 특히 개인의 상처와 회복을 강조하는 메시지로 쓰이기도 한다. 불완전함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개념이리라. 저마다 주어진 조건대로 쓰임에 맞는 일을 찾는 것, 그것이 킨즈기의 철학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인터넷쇼핑몰에서 ‘킨즈기 키트’를 판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옻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전통적인 기법 대신 합성 옻을 이용해 간단하게 고치는 방법이라니 솔깃하다. 매우 아끼던 접시에 금이 갔다면 혹은 깨졌다면 한 번쯤 시도해 보고자 한다. 글을 쓰는 일도 상처를 이어 붙이는 치유의 예술인 것처럼 다친 그릇을 치료하다가 금이 간 내 마음 까지 치유될지 혹시 또 모르지 않나. 균열이 심해 도저히 붙여질 것 같지 않은 요즘의 사회를 봉합해 줄 강력 접착제가 있을지,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 보는 중이다.

 
<한국산문 2025.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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