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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무 기질    
글쓴이 : 봉혜선    26-07-24 13:42    조회 : 21

총무 기질

 

 딱히 미신이나 점괘에 매달리거나 믿는 것은 아니므로 신년 신수나 운세를 보지는 않는 다해도 휴대폰에 나오는 심심풀이 성격풀이를 외면하게 되지도 않는다. 이런 통계에 근거해 내 운명이 어떤지, 정말 그런지 내보일 수는 없지만 그래, 맞아. 하며 무릎을 탁 치게 하는 풀이 글을 보았다. ‘리더나 총수나 사장감은 아니되 아무리 큰 인물이라도 보좌는 거뜬하다.’

 보좌의 대명사인 총무의 특징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위를 탐내지 않으며 도움을 기꺼운 자리로 아는 사람, 드러나지 않는 자리가 더 편안한 사람, 주인공보다 뒷자리가 편한 사람, 무대 위에 오른 주인공을 자랑스레 봐 줄 수 있고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내 일처럼 기뻐해 주는 사람, 조연의 기회라도 주어지면 언제나 무대에 오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소양을 갖추었으나 손사래 치고 물러날 줄 아는 사람, 가장 가까운 사이, 없으면 안 되는 자리, 믿고 맡기는 자리.

 사전에 따르면 무수리, 고려와 조선 시대 궁중에서 잡일을 맡아보는 여자 종을 이르는 말, 스태프, 영화 방송 광고 제작 분야에서 출연진 이외의 제작진, 행사의 기획 및 진행 담당자, 기업에서는 의사결정자에게 조언을 하는 기관. 매니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의 일과 수입 따위를 관리하는 사람. 그림자처럼 존재하거나 따라다니되 카메라에 노출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 준비 위원! 중요한 직책에 있는 사람 아래에 속하며 기밀문서나 사무를 맡는 자. 들러리, 중심인물의 주변에서 그를 돕거나 그를 돋보이게 하는 인물을 이른다. 있으나 보이지도 부각되지도 않는 자리. 그런 사람이 있어 집이, 사회가, 사람 사는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마음에 드는 글들을 옮겨 적을 때나 필사를 하고 싶은 책이 있다. 책을 읽어나갈 때는 걸리지 않는 부분들이 걸려 자꾸 쳐다보게 된다. 딱 맞다고 생각되는 단어에 탄복하고 있는 순간에 단어들 사이, 문단을 구분하거나 나누는 빈칸이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글자들만 있다고 생각한 책에서 그 빈칸을 무시하거나 마음대로 쓰면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고 만다. 주인공들의 숨소리를 받아주는 총무의 자리는 그런 데가 아닌지 생각한다.

 책이나 드라마에 가끔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등장한다. 돈키호테의 산초 같은 조금 모자란 이들이 충직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며 부각된다.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삶에 장해가 되지 않는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오장육부 심신이 멀쩡해도 오히려 뻘짓한다면 차라리 입과 귀가 닫혀야 하는 것이 아닌지. 가끔은 그런 말 없고 입 무겁고 들어도 못 들은 척 할 수 있는 무거움을, 그러면서 삭이거나 거를 줄 아는 진중함을 가졌는지 생각해 본다.

 무한 경쟁의 학창 시절을 겪는 동안 막내아들은 왜 1등만 하라고 강요하느냐, 1등 못하면 낙오자냐, 다 그 자리만 탐낸다면 2등이나 꼴등을 누가 하느냐고 했다. 순간 멈칫했다. 대든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화책에서 매번 쫓기는 피터 팬보다 힘세고 강한 후크 선장이 더 되고 싶다고 한 아이었다. 후크선장이 당할 때가 더 적었다는 기억이 반박을 못하게 했다.

 아이는 어른의 잣대로 재지 못하는 순수함을 지닌 존재여서 어떤 질문도, 어떤 궁금증도 품을 수 있고 의문을 제시할 수 있다. 나쁜 짓을 하고도 끝까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더 많은 부조리한 현실을 아이보다는 더 겪은 어른으로서 말 막히는 순간이었다. 권선징악 류의 전통적 사고방식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니 앞에 나서기 좋아하고 생색내는 것이 기질에 맞고 주인공이 아니면 맥이 빠지는 사람들이여. 유능하고 충직하고 말없고 일 잘하는 총무를 곁에 두기 바란다. 그 리더가 훨씬 책임이 막중하고 일을 많이 해내야 하고 무겁다는 것을 간파해낸 사람이라면 오르려고 하지 않으려니와 기꺼워하리라고 보장할 수 있다. 단 진정으로 믿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다. 과정 중심의 삶에서 나서기보다 나서지 않음이 더 충실한 순간들임을 알아차려가고 있으니 이건 나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게 되어간다고 할까. 생의 뒤안길을 보았다고 해야 할까.

<<에세이 포레>> 2025,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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