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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春〕, 봄〔視〕    
글쓴이 : 봉혜선    26-04-14 08:40    조회 :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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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끝자락부터 기다린 봄이 공중에서 산수유를 터뜨리며 기지개를 켠다. 우격다짐인 겨울이 부리는 하얀 심술을 봄은 기껍고도 온전히 받아 꽃을 올린다. 벚꽃, 매화가 순서를 받아 겨울 눈 닮은 꽃비를 뿌린다. 겨우내 맺고 있던 영근 봉오리를 터뜨린 목련이 진주 빛을 발한다. 진달래로 개나리로 색이 한층 진해진다. 연둣빛으로 눈 뜬 잎이 연초록빛을 발하는 한편, 철쭉이 흐드러지고, 라일락의 향기에 취하면 봄이 절정으로 올랐음을 알게 된다.

 아파트의 봄은 꽃의 색으로 시작하여 향기로, 눈에서 코로, 어쩌다 뻗어 만지는 손끝의 감각으로 완성된다. 성격이 급한 봄은 짧다. 일장춘몽이라는 한 생이 그렇듯. 이 계절은 생명이 아름답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눈이 부시다. 시간과 계절이 50km의 속도로 지나고 있다는 50대의 중반이다. 지금까지와는 달라진 눈으로 맞는 봄은 새삼 새롭고 더 황홀하다.

 겨울은 이 화창한 봄을 준비하느라 그리도 매웠던가. 그 고충을 알아달라고 얼마 전 진달래에게 눈 화장을 하얗게 해놓고 기세 좋게 등등거렸나. 며칠 전 맞춤한 진달래에 눈이 소복하게 내려앉은, 그러나 봄눈이기에 포근하고 부드럽게 눈 화장이라는 이름을 지어 보내준 사진을 세 장이나 받았다. 진달래꽃은 기꺼이 흰 눈을 얹고 의연하게 봄을 지켰다. 진달래의 아슴아슴한 분홍빛은 겨울을 밀어 올리느라 겨우 물든 색인데도 흰 눈에 비해서는 상기되어 발그레 했다. 나가 서보지 않고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봄을 시샘하는 겨울과 감출 수 없는 봄을 알아차렸다.

아이들이 새처럼 모여 바지런을 내며 지저귀는 봄의 놀이터를 지나고 있다. 삼월의 개나리, 벚꽃, 사월의 목련과 오월의 라일락이 한데 밀어 오른 덕에 꽃 잔치다. 작은 동산에 아이들이 그네에 매달려 하늘을 난다. 미끄럼틀에서 보였다 숨었다 하고 사방치기를 하는 장면이 겨우내 옹송거리며 지나치던 놀이터에 발길을 멈추게 한다.

 발밑에는 꽃길만 밟을수 있게 벚꽃길이 나있다. 그 희고 연약한 봄 길을 되짚어 나와 볕 아래 한 시간이나마 앉아 있고 싶다. 아이들의 솜털 같은 부드러움과 지칠 줄 모르고 까르르거리는 웃음소리와 뜀박질을 따라 눈길을 옮기고 싶다. 그러면 내 마음도 하늘의 구름으로 솟아 자유롭다, 자유롭다 두 팔 벌릴 수 있을 테다. 봄은 이스트로 부푸는 빵처럼 매끈하게 다가온다. 하늘거리는 연분홍빛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나오고 싶은 때다.

 부푸는 가슴을 다잡듯 부여잡는다. 봄밭에 나왔다. 오늘, 지금, 여기 바람은, 날씨는, 햇빛은 언제 심술 부렸냐며 한껏 봄빛을 뿜는다. 봄의 가슴, 허리, 발치에 골고루 머물러 본다. 솟구치는 땅의 기운, 발밑이 사춘기의 가슴처럼 부푸는 중이다. 폭신 꺼지는 듯도 하고 솟는 듯한 느낌을 도와 들여다보면, 아무 것도 거부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내주는 맘씨 좋은 봄과 정면으로 만난다.

 봄에는 잡풀도 반갑다. 가장 먼저 돋아나는 풀은 아무래도 생명력이 강하다. 그래서 겨울을 다 버텨온 후에 성급한 성격대로 아무도 방해하는 자가 없을 때 독야청청 피어난다. 질기고 질겨서 뽑아낼 때 힘들어도 우선은 제일로 시선을 받고, 대견하다는 칭찬도 독차지한다. 아직 추운데 괜찮으려나. 어찌 버텼는고. 어찌 뚫었는고. 이럴 때 나를 추동하는 건 안타까움이다. 나도 움츠리고 겨우 지냈는데 너도 그랬구나, 쓰다듬기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기지개를 켜는 만물 중 벌레를 빼놓아선 안 된다. 크고 작은 날것들이 잉잉거린다. 잘 걷지도 못하는 벌레의 이른 외출을 보았다. 발이 많이 달려 자꾸 뒤집어지면서도 할 일이 많은 듯 분주하다. 사람도 발이 저리 많으면 더 바쁘려나. 바쁠 때 발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를 떠올리고 고개가 갸웃해진다. 개미는 벌써 언덕을 쌓고 꼭대기에 구멍을 파놓았다.

 키 작은 꽃과 봉오리를 보려 허리를 잔뜩 구부리거나 무릎을 꿇어보면 그런 수고가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경이로운 세상이 있다. 절로 숨이 작아지고 혹은 멈춰야 하는 세계 속에 들어섰음을 알 수 있다. 무릎 꿇고 있는 자세가 인간의 자세다. 깨달음은 먼 데 있지 않고 봄도 그렇다. 발밑에, 코앞에, 숨을 멈춘 그 순간에 늘 대기하고 있다. 비가 긋고 난 후의 풀밭, 빗방울의 무게에 겨워 앙버티고 빗방울을 눈물인 양 머금고 있는 만개한 꽃다지, 꽃나리, 금계국, 패랭이, 제비꽃들에 카메라를 댄다. 늘 표현하고 싶은 투명한 마음이 거기 있다. 작고 여린 것에 미소 지어지는 봄이다.

 봄잠에 취하듯 봄 느낌도 순식간이다. 나도 상추씨를 뿌리러 나간 길이었다. 봄은 여름을 그리워하거나 부러워하지 않고 스스로 핀다. 봄은 짝사랑하는 나와 닮았다. 봄은 꽃의 계절, 싹의 계절이다. , 모든 숨탄것들이 약동하는 순간들의 집합체다. 모든 계절이 봄을 향한다고 느낀다. ‘봄은 신들이 내려앉는 자리다.’ 고 말한 이 누구인가. 봄은 여름을 흡수하며 변모한다. 여름은 전개일 뿐 절정은 봄에 있다. 가을은 봄에 예고한 본편이다. 춥고 매정한 겨울 역시 봄을 향한 복종이다. 아름다움은 봄에 집중되어 있다.

 그네 타는 아이들의 맑은 외침, 연약한 비틀거림으로 나아가는 벌레들의 겨우 날개를 편 거리만큼의 서툰 움직임, 봄눈을 아릿하게 내미는 산수유의 흐릿한 마무리. 겨우내 버틴 촛불 같은 목련 몽오리의 보드라운 감촉, TV가 전해주는 남녘의 들판에서 들려오는 시금치 달래 냉이의 속살거림. 생명력의 맛, 초록빛 반가움, 살아 있다는 확인, 살아간다는 놀라움. 폭죽처럼 터지는 날것들의 계절. 봄이 보이는 경이로움.


<<26, 수필과비평, 4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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