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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밭    
글쓴이 : 문경자    26-08-15 00:35    조회 : 33


밀밭

 

 

 

배우 원빈과 이나영씨가 밀밭에서 결혼식을 하기 위해 걸어 나오는 모습은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이색적인 결혼식에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신랑 신부도 멋지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푸른 들판 밀밭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곧장 고향으로 달려가 바람결에 일렁이는 밀밭을 보고 싶었다. 유난히 그 장면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았다. 낭만적인 면도 있었지만 한 켠으로 가난 때문에 살아가는 일이 어렵고 먹는 것도 풍족하지 못했다. 산천은 푸르고 빈 농지에 씨앗을 뿌려야 하는 시기가 오면 동네가 떠들썩 하였다. 밀 씨앗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농부들은 열심히 씨를 뿌리고 가꾸었다. 밀 밭을 오가며 서로에게 밀의 안부를 묻곤 하였다. 요즈음은 농사일에 대한 정보도 자세하게 알아볼 수가 있지만 그때는 경험을 통하여 농사를 지었다.

 

밀밭이 온 통 푸른 바다처럼 펼쳐졌다.

바람에 넘어 졌다 일어서고 하는 장면은 어느 누구도 흉내를 낼 수가 없었다. 얼굴이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아이들은 그 흉내를 낸다고 허리를 뒤로 앞으로 젖히는 모습에 웃음이 온 밀밭을 휘 젖고 다녔다.

밤이면 희뿌연 달빛이 내려와 밀밭에 앉아 노닐 때는 나도 몰래 홀려서 밀밭으로 달려 가곤 했다. 친구들과 술래 잡기도 하고 나 잡아 봐라하는 말을 하고는 밀밭에 납작하게 엎드리면 찾기가 어려웠다. 달이 내가 숨어있는 곳을 구름으로 가려주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달이 뜨면 밤이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 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제는 작은 마을에도 가로등이 서있어 달빛에 고마움과 낭만적인 밤의 향연도 없다.

 푸른 밀은 풋내가 났다. 농부의 땀냄새가 베어 있는 밀밭을 사람들은 좋아했다. 오 갈대 없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그만이었다. 다음 날 쓰러져 있는 밀밭은 사람들의 표적이 되기도 하였다. 달빛은 왜 안개 같은 사연을 남겼을까!

 살구꽃, 복숭아꽃, 진달래꽃이 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밀이 피어나는 것만은 못했다. 밀알이 자라고 나도 따라 커갔다.

 

밀알이 토실해지면 검불에다 불을 지펴서 그 위에 밀을 베어 올려 놓는다. 끝을 잡고 골고루 뒤집어 구우면 밀 겨가 탄다. 그것을 양손바닥으로 비벼서 입 안에 털어 넣는다. 그 맛이 고소하고 쫄깃하여 씹는 맛이 그만이다. 밀 사리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그 만큼 밀 수확이 줄어 들기 때문이다. 연기가 나는 곳을 보고 키가 작달막한 주인이 달려오면서 고래고래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무서워 도망을 쳤다. 땀이 난 발이 미끄러워 고무신이 벗겨져 애를 먹었다. 들키지 않은 논배미 언덕아래 숨었다. 밀 사리를 먹어서 입 주위가 시커멓게 수염처럼 변하였다. 서로 마주 보면서 웃던 그리운 시간도 이제는 한 조각의 구름이 되어 흘러갔다.  

  

산골의 봄은 보리밥 한 덩이 찬물에 말아 목구멍 채우는 것조차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변변치 못한 살림에 대가족 식사를 매 끼니 마다 챙겨야 했다. 힘든 내색이나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참고 견디었다. 때로는 먼 산에 뻐꾸기 우는 소리에 슬픔이 묻어나는 표정을 짓기도 하였다. 하루는 어머님이 아껴 두었던 묵은 밀가루로 수제비를 해주었다. 물을 많이 붓고 밀가루 반죽을 최대한으로 늘려서 펄펄 끓고 있는 물에 던졌다. 그것을 보니 낚시를 하는 선수 같았다. 어머니는 이마에 땀을 닦고는 구수한 수제비 한 그릇을 퍼서 내 앞에 내밀었다. 나는 얼룩이 진 숟가락으로 멀건 국물을 휘휘 저었다. 몇 개의 수제비가 그릇 바닥에 잠수를 하고 있었다. 그나마 어머니는 그것조차 차례가 가지 않았다. 수제비는 묵은 냄새가 나지만 우리에겐 한 끼의 식사로 훌륭하였다. 하루 중에 두 끼는 밥을, 한 끼는 가루 음식을 먹었다.

지금도 수제비를 먹을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수제비를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은 보기만 하여도 흐뭇했다. 그때 어머니도 그렇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뛰어 놀던 밀밭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밀 사리 한다고 소리를 지르던 주인도 이제 다 익은 밀 같이 빳빳하고 얼굴이 누렇게 변하였다.

 

고향의 푸른 밀밭이 그리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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