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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두에서 봄을 느끼다    
글쓴이 : 김명희    26-02-04 21:26    조회 : 16

 

만두에서 봄을 느끼다

 

                                                김명희

 

 찬바람이 부는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일을 처리하고 급하게 들어가는데 아파트 상가의 만두집에서 모락모락 김이 오르고 있었다. 만두전골이라도 끓일까 해서 사들고 오는데 큼직한 만두가 예전 엄마의 만두를 생각나게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채인선 작가의 동화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를 읽어 주며 ‘딱 우리 엄마구나!’ 하며 웃던 기억이 났다. 집채만큼 커다란 반죽을 만들고 산더미같이 만두소를 만든 뽀글 머리의 할머니와 만두 만들기를 도우러 온 동물 친구들 모습이 어릴 때의 우리 집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모두 힘을 모아 만두피를 만들고 만두를 빚지만 너무 많아 만두 만들기는 몇 날이 지나도 끝이 나질 않는다. 다들 기진맥진 해 두 손을 들면 손 큰 할머니는 남은 반죽과 소로 한 덩어리의 만두 만들기를 끝냈다. 그제야 모두가 둘러 앉아 즐겁게 만두를 먹었다.

 엄마는 우리가 어릴 때 이웃 아주머니께 만두를 배웠다고 했다. 친가나 외가에서는 먹지 않던 음식을 배워 온 집안에 선을 보였다. 어떤 음식을 하든지 손 큰 할머니의 면모를 보인 분이라 만두를 한번 만들면 온 집안에 한 접시씩은 돌려야 했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커다랗고 시뻘건 고무 ‘다라’는 그때 쓰였다. 셀 수도 없을 만큼의 김치를 꺼내 씻어 다져두었다. 그만큼의 고기도 양념해서 볶아 담아두고 또 그만큼의 파와 양파, 숙주, 당면을 다져 담았다. 그리고 마늘과 후추와 소금 달걀을 넣어 간을 맞추어 섞어 주었다. 소가 준비되면 냉장고에서 커다란 비닐봉지가 두어 개 나왔다. 3킬로 포장의 밀가루 두어 포대를 전날 미리 반죽해 숙성시킨 것인데 가끔은 냉장고에서 작은 봉지 두어 개가 더 나오기도 했다.

 우리에겐 이때부터가 만두 만들기의 시작이었다. 도마와 밀대 방망이가 나오고 빈 소주병이 나오면 한사람은 엄마와 함께 반죽을 밀어 만두피를 만들고 둘은 만두소를 넣고 빚어냈다. 남동생이 들락날락 하며 만두를 담은 쟁반을 이리저리 옮겨주곤 했다. 만두가 쟁반에 쌓이기 시작하면 엄마는 물을 끓여 만두를 삶아냈다. 요즘은 만두를 빚어 바로 냉동시키는 것을 많이 보았는데 엄마는 늘 다 삶아내어 식힌 후에 냉동실에 넣었다. 아침을 먹고 만들기 시작해서 익혀낸 만두가 채반 두어 개를 채울 즈음이면 점심으로 군만두와 만둣국을 먹었다. 그때쯤 옆집 아주머니가 와서 만두를 좀 만들다가 한 접시를 들고 가고 또 윗집 아주머니도 한참을 거들면서 점심을 먹고 한 봉지를 들고 갔다. 그러고 나면 또 몇 분이 와서 옆에 앉아 마들다가 갔다.

 그때 눈치를 보고 잘 빠져나가야 했다. 못 빠지면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계속이었다. 요샛말로 만두지옥이었다. 분명 즐겁게 만두 만들기를 시작했는데 저녁때가 되면 이제 그만하자는 항의성 투덜거림이 들려온다. 엄마는 어지간해서는 끝을 내지 않았다. 만두피 반죽이 모자라거나 만두소가 부족할 때만 어쩔 수 없이 끝내곤 하셨다. 만두피가 남으면 칼국수를 만들어 먹으면 되지만 만두소가 남으면 다음날까지 만두지옥은 계속되었다. 처음 시작할 때면 송편만 하게 만두의 크기를 조절했다. 하지만 끝나가는 저녁 무렵의 만두는 손바닥만 해져서 아버지께 드리는 만두는 늘 커다란 접시에 두세 개가 겨우 올라갔다.

 결혼하고 나서도 만두 만들기는 계속이었다. 딸들이 멀리 사니 오기 전날부터 만들기를 시작해서 다들 모이면 전날 만든 만두를 먹어가며 또 만두를 만들었다. 손자들까지 둘러 앉아 시끌벅적하게 만두를 만드니 늘 잔칫집 같았다.

 만두는 다들 겨울음식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만두를 생각하면 봄을 느낀다. 이건 아무래도 결혼 후 설에 시댁을 들렀다 친정에 들어서면서 느꼈던 감정들 때문일 것이다. 만두 삶는 냄새와 둘러앉은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 혼자만 떨어져 먼 곳에 있다가 다시 원가족의 톱니에 끼워지는 느낌이었을까?

 만두는 대체로 묵은 김치를 이용한다. 다른 재료들도 중요하지만 김치가 맛있으면 반 이상 성공이다. 설 무렵이면 김장김치가 푹 익어 묵은지가 되기 시작하고 다 못 먹은 작년 묵은지도 처리를 해야 할 때가 된다. 김장이 겨울의 시작을 알린다면 만두를 만든다는 건 이제 곧 겨울도 끝나겠구나 하는 기대를 준다. 손 큰 할머니인 울 엄마의 만두는 설에 모여서 이틀을 먹고 큰 통에 한통씩 받아와 냉동실에 얼려두고 또 한참을 먹었고, 마지막 만두를 먹을 즈음이면 봄이다 소리가 나오곤 했다.

 이제 또 설이 멀지 않다. 친정에선 이제 만두 만들기는 하지 않는다. 다들 결혼하여 손자들까지 성인이 되었으니 바쁘기도 하고 그 시간에 얼굴보고 이야기라도 더 하자는 딸들의 이야기를 몇 년 만에 받아들인 엄마의 선택이었다. 손자들도 그때가 좋았다고 하면서도 만들자는 이야기는 없다. 그래도 늘 이맘때면 엄마의 만두가 생각난다. 엄마의 만두로 이웃에 생색도 제법 냈는데 지금은 시판 만두만 먹고 있다.

 너희들 해먹이고 씻기고 닦일 때가 좋았다고 하시는 엄마. 그 때가 엄마의 봄날이었던 걸까? 아니면 엄마의 그 봄날을 갈아 넣어 만들어준 나의 봄날이었을까? 뽀글머리를 하고 뛰어다니던 손 큰 할머니는 이제 호호 할머니가 되었고 둘러 앉아 만두를 만들던 꼬마들은 컴퓨터와 휴대폰을 들고 노느라 만두 만들기를 하지 않는다. 가끔 만두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각자 할 말들은 많아 시끄럽게 떠들지만 내가 느끼는 그 따스함을 아이들도 느낄까 궁금해진다.

                                                                -- 한국산문 2023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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