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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수 문경자    
글쓴이 : 문경자    26-06-01 22:14    조회 : 86

보리수

                                                          

잘 익은 보리수 열매를 따다 한 알 한 알 터지지 않도록 살살 씻어 물기를 뺀다. 보리수 열매는 술을 넣고 담아 음용하기도 했다. 또는 설탕을 이용하여 엑기스를 내어 먹기도 하였다. 소독한 유리병이나 항아리에 담아 날파리나 이물질이 들어 가지 않도록 면 보를 씌워 끈으로 동여 메어 시원한 그늘에 보관한다. 약재의 효능을 갖고 있는 보리수나무는 햇볕이 잘 드는 곳이면 어디서든 잘 자라며 밭 가에나 담장 모퉁이에도 심었다. 산에서 자란 보리수 열매는 작기는 해도 그 맛이 달았다. 6월에 열매는 붉게 익는다. 시큼하고 떫은 맛이 입맛을 잃을 때 먹으면 식욕도 돋을 수가 있다. 살구나 매화는 베어 먹을 것이 있지만, 보리수는 살이 없다.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다. 씨앗을 꺼내 보면 보리쌀을 닮았다. 그래서 보리수라고 한다는 어른들의 말이 생각났다. 믿거나 말거나. 보리수 열매를 장기간 복용하면 천식과 기침에 효능이 있다.

보리수 열매가 파랗게 달려 있을 때는 이파리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열매가 익기 시작하면 루비 보석처럼 주렁주렁 달려 귀하게 보였다. 햇빛에 반짝 일 때는 귀걸이에 달린 보석보다 화려하다. 옆집의 장독대와 담벼락 사이에 서있는 보리수나무는 동네서 인기를 끌었다. 우리는 그것을 따먹기 위해서 아무도 없다는 낌새를 알고는 얕은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서 손을 뻗었다. 보석같은 열매가 작은 손 안에 들어왔다. 힘을 주어서 한 움큼 땄다. 바로 뛰어내리는 순간이었다. 주인의 기침소리에 놀라 손안에 있던 열매가 땅 위로 흩어졌다. ! 보리수야! 하고 부르면서 줄행랑을 쳤다. 한 개도 먹지 못해 팔베개하고 누워 자는데 입 안의 침이 조르르 흘러내렸다.     

나는 그 열매를 보면 지나간 기억이 묻어 난다. 먼 옛일이 되었지만 지금도 가슴 한편에 남아있다. 창원에 살 때였다. 아버지는 재혼을 하여 따로 살았다. 돌아가신 어머니 모습은 가물가물 유월의 햇살에 묻혔다. 할아버지는 우리를 키워 주었다. 밥도 하고 반찬도 만들어 맛있는 밥을 먹고 나면 할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산에서 나무를 해왔다. 그때만 해도 땔감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할아버지의 힘을 덜어주고 싶어 나는 동생을 데리고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갔다. 앞서가는 동생은 신이 나서 힘든다 하지 않고 가니 기분이 좋았다. 산을 오르다 보니 허기가 왔다. 보리수열매가 빨갛게 익어 우리를 유혹했다. 나는 그 열매를 따서 동생의 입에 넣어 주었다. 맛이 떫다 하고 찡그리는 얼굴이 귀여워 더 먹으라고 부추겼다. 둘이 먹는 그 맛은 참으로 달콤하고 맛있었다. 그 때 먹은 그 맛을 생각하면 달콤함이 입 안에 감돈다. 기침하는 할아버지께 드리려고 잘 익은 것을 골라 열심히 땄다. 동생은 왼쪽 손가락을 오므려 밥공기처럼 만들고 오른 손으로 하나하나 따서 담았다. 보리수 따는 소녀처럼 그 모습이 그림 같았다. 따는 재미에 푹 빠져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것을 모아 꽃무늬 손수건에 넣고 잘 마무리했다. 땔감은 애기 베개만큼 해서 머리에 이고 산을 내려왔다. 보리수열매가 눈앞에 아른아른 땔감에 붙어 있는 듯했다. 할아버지가 나무를 많이 해 왔다고 칭찬을 해서 기분이 날아올랐다. 보리수 열매를 꺼내 드리니 귀한 것을 따왔구나 칭찬을 해주었다. 웃으며 기뻐했다. 할아버지가 지어준 저녁밥을 먹고 잠을 자는데 동글동글 얼굴들이 내 곁에 와서 누웠다. 동생은 힘이 들었는지 몸을 뒤척이며 잠꼬대를 하였다. 동생과 만나면 보리수열매를 먹으면서 지나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지난 주말 작은 아들을 데리고 시댁인 거창에 다녀왔다. 그날 처음 아들의 여자 친구와 인사를 했다. 웃는 눈매가 예쁜 아가씨는 오래전에 만난 것처럼 낯설지 않았다. 상냥하며 애교도 많았다. 내 평생 처음 아들의 여자친구를 보니 기쁨이 벅찼다. 고속도로에 접어 드니 먼 산들이 병풍을 두른 듯했다. 매번 가는 길이지만 오늘은 앞에 앉아 있는 아기씨가 예뻐서인지 먼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먼저 시댁 집 근처에 도착하여 조상의 묘가 있는 밭으로 향했다. 마을 회관 정자나무 아래서 휴식을 취하시던 친척아제를 만났다. 시부모님이 떠나신 후 논관리와 밭을 돌봐 주며 집도 잘 지켜주는 고마운 분이다. 우리가 인사를 하자 반갑다며 웃는 얼굴로 반겼다. 아제는 밭에 가니 익은 보리수가 아주 탐스럽게 많이 달려 있는데 그것을 따먹으려고 새들이 날아와서 농작물 피해도 크다며 많이 따서 가져 가라고 했다. 우리는 몇 십년 밭을 오가면서도 보리수 나무를 본 적이 없었다. 처음 듣는 말에 귀가 쫑긋하였다. 여자친구도 처음 만나고, 보리수나무도 처음 만났다. 보통 인연은 아닌 것 같다.

밭 입구에 들어서니 우측으로 밤나무 배나무가 있고 그사이에 붉게 익은 보리수가 바람이 불때마다 얼굴을 내밀었다. 빨간 얼굴들이 조롱조롱 달려있었다. 조상님의 묘를 찾아 인사하는 것은 뒷전이었다. 아제가 챙겨준 비닐 봉지를 꺼냈다. 처음에는 따기조차 아까웠지만 서너 개를 따서 입 안에 넣었다. 새콤달콤한 맛에 취했다. 여자친구가 열매는 보았지만 이렇게 달려 있는 것을 따먹기는 처음이라 했다. 손이 빠른 아가씨는 쉴 새없이 부지런히 땄다. 야무진 것을 보니 살림도 잘 하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금방 투명한 비닐 봉지가 붉은 열매로 가득 채워졌다. 아들은 그만 따고 조상님께 인사를 드리자고 했다. 밭에는 빈틈없이 토마토, 가지, 호박, 상추, 부추, 고추, 들깨, 콩 등등 많은 농작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막걸리를 붓고 안주를 차려 놓고 절을 하였다. 속으로 아들에게도 좋은 일만 있게 해달라고 했다. 보리수나무가 있는 곳으로 다시 왔다. 열매들은 아주 예쁜 모습으로 바람이 불때마다 흔들거렸다. 파란 잎사귀가 가려져 그것을 들추어 보니 귀한 보석들이 달려 있었다. 보는 순간 기분이 좋았다. 잘 익은 열매처럼 너희들도 이렇게 익어 어른이 되어 가면 좋겠다 고 혼자 말을 되뇌었다. 가득 채워진 비닐 봉지를 들고 좋아하는 여자친구 얼굴에 방울방울 땀이 붉게 물들었다. 아들은 그저 졸졸 따라다니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좋았다.   

우리집 베란다에는 여러 가지 술단지들이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으뜸은 3개월 지난 보리수 담금 주이다. 아들은 기침이 날 때 마다 달라고 했다. 혼자 다 먹을 거라며 여자친구와 함께 따다 담은 술이라고 귀하게 여겼다. 새콤달콤한 보리수 열매가 술단지안에서 잠을 잔다.

보리수 나무는 무성하게 자라 작은 숲을 만들어,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까지 담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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