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문학회 >  회원작품 >>  ㅎ

* 작가명 : 홍승섭
* 작가소개/경력


* 이메일 : ryanseungsub@gmail.com
* 홈페이지 :
  축제의 뉴 노멀    
글쓴이 : 홍승섭    26-11-07 22:12    조회 : 57

축제의 뉴 노멀

홍춘봉(春奉)

 요즘은 축제의 시대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철마다 다양한 축제를 개최하니 연중 축제가 아닌 날이 없을 정도다. 각 지역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특산물을 이용하다 보니 볼거리와 먹거리도 풍성하다. 올겨울에도 곳곳에서 겨울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화천, 포천, 평창, 강화 등에서 겨울의 상징인 눈과 얼음을 배경으로 산천어, 송어, 빙어 등을 주인공 삼아 축제를 열고 있다.

고향 춘천에 가는 길에 한 축제장에 들렀다. ‘청평 설빙 송어 빙어 축제’ 생각보다 넓지 않은 장소에서 참가자들이 얼음낚시를 하고 있었다. ‘맨손으로 고기 잡기’는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였다. 도망칠 곳 없는 작은 튜브형 수족관에서 송어를 잡은 참가자는 희열감에, 억센 손에 잡힌 송어는 절망감에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송어와 빙어를 회나 찜, 튀김으로 조리하여 맛있게 먹고 있었다.

한동안 이곳저곳을 돌며 시끌벅적한 광경을 지켜보자니 불편한 마음이 일었다. 생명 경시의 한 단면을 보았기 때문일까? 사람들의 손에서 펄떡이는 송어와 뜰채 안에서 팔딱이는 빙어들이 애처로워 보였다. 주인공이 희생되어야 하는 축제라니. 사람들은 즐거울지 몰라도 물고기들에게는 너무도 슬픈 일일 듯싶었다. “들어와서 싱싱한 송어 맛 좀 보세요~.” 식당 아주머니의 친절한 권유에도 식욕을 느낄 수가 없었다.

눈앞의 물고기들에게 연민의 감정이 이는 것은 왜일까? 불심(佛心)이라도 발동한 것일까? 하기야 어려서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니며 수계(受戒)까지 받았으니 아주 아니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살생을 금하는 불가에서는 먹어도 되는 고기가 따로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삼정육(三淨肉)이다. 이는 ‘자신을 위해 죽이는 것을 직접 보지 않은 고기’, ‘자신을 위해 죽였다는 것을 전해 듣지 않은 고기’, ‘자신을 위해 죽였다는 의심이 들지 않는 고기’를 말한다.

나도 채식주의자는 아니므로 당연히 육류와 생선을 먹는다. 다만 직접 잡아먹지 않고 주로 마트에서 사 먹는다. 그러니 불가로 따지면 삼정육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스님도 아닌 내가 고기의 출처를 따지는 것은, 적어도 내가 먹는 고기는 축제장에서 먹는 것과는 다름을, 결코 일시적인 즐거움을 위해 해친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어서다. 궁색하기는 해도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싶어서라고나 할까.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생명을 소중히 해야 할 이유는 많다. 예전과 다르게 지금은 다양한 종류의 동물과 식물들이 인간의 반려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인간은 심지어 반려자들을 위한 집사를 자처하며 애지중지 그들을 돌보고 있지 않은가! 이 같은 시대 흐름에 걸맞게 주체와 대상이 나뉘는 축제가 아니라, 모두가 주체가 되어 서로 즐길 수 있는 축제를 꿈꾼다면 너무 이상적일까?

인간은 과도한 자연 개발로 기후 및 생태계의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도 제공했다. 그 결과로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생물종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한다. 60초마다 하나의 종이 사라진다고도 하고, 1시간에 세 개의 종이 사라진다고도 한다. 자칫 우리의 경솔한 행위들이 모여 자연계의 생명 그물을 끊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이런 마당에 축제라는 이름으로 생명체를 함부로 해치면 되겠는가?

문득 인간이 축제의 주체가 아닌 대상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먼 우주 어딘가 고도로 발달한 행성에는 인간을 초월하는 생명체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해마다 ‘지구 인간 축제’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연다면 어떨까? 곳곳에 함정을 파고, 활로 쏘아 잡기도 하고, 굶주리게 만들어 서로 싸우게 하거나 고기를 달아 낚시도 하고, 심지어 맨손으로 잡기까지. 꿈에서조차 마주하기 싫은 상상이다.

먼 곳의 우주 생명체를 떠올릴 필요도 없다. 이미 인간은 서로를 제물로 삼아 축제를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헝거게임」은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참가자들의 목숨을 건 게임이 축제 분위기 속에서 실시간 중계되고 이를 지켜보는 관중이 있다는 것이다. 핵심 관중인 게임 기획자들은 참가자들을 전사로 치켜세우며 그 전사들이 차례로 죽어 나가는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본다. 영화 속에서 인간은 축제의 주체이자 대상, 목적물이다.

어릴 적 나는 시골의 개구쟁이 악동이었다. 수많은 잠자리와 개구리들이 영문도 모르고 내 손에 하늘나라로 갔다. 그래서인지 지금 고향에 가면 그 옛날 흔히 보았던 고추잠자리와 된장잠자리를 보기 어렵다. 개구리의 울음소리도 약해졌다. 이것이 내 탓인 듯하여 후회의 감정에 잠기기도 한다. 새삼 인간을 포함해 살아있는 모든 생명이 소중함을 느낀다. 어찌 생명에 순위를 매길 수 있겠는가!

겨울이 지나면 봄 축제가 우리를 기다린다. 함평 나비 축제, 고창 청보리밭 축제, 곤지암 화담숲 봄 수선화 축제, 서울 장미 축제 등이 상춘객들을 맞을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자연의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듯하다. 형형색색 꽃들의 꾸밈없는 아름다움과 자연의 생명력에 취할 것만 같다. 봄 축제는 이렇듯 만물을 소생시킬 뿐만 아니라, 꽃과 나비와 사람 모두 주인공이 될 수 있어 좋다.

세상은 변했다. 우리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뉴 노멀이 일반화되었다. 뉴 노멀의 기본은 비대면, 비접촉이다. 사람들이 모여야 하니 비대면은 어렵다 해도 비접촉 축제로는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제발, 만지지 말고 보기만 하세요!’ 주로 역사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문구다. 생명이 없는 것을 대함에도 이렇다면, 살아있는 것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할까. 어쩌면 이 말은 생명체를 가지고 축제를 개최할 때 전제되어야 하는 원칙이 아닐까 싶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니까.

 2026. 10. 한국산문


 
 

홍승섭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1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글쓰기 버튼이 보이지 않을 때(회원등급 … 사이버문학부 11-26 121134
공지 ★(공지) 발표된 작품만 올리세요. 사이버문학부 08-01 122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