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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정원    
글쓴이 : 김명희    26-02-04 21:19    조회 : 23

                  나의 정원

                                                      김명희

 

 내가 어릴 적 살던 곳이 빈민가였을까? 장하준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의 머릿글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그가 묘사한 빈민가가 어릴 적 우리 동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빈민가의 모습이라고 말한 풍경들, 늦은 저녁 마당의 흐린 불빛아래서 시퍼런 작업복을 치대고 방망이로 패가며 빨래를 하던 사람들, 빨랫줄에 열병식을 하듯 줄서서 매달려 있던 퍼런 작업복들은 내게 익숙한 것이었다.

 건너편 언덕위의 양옥집이 모인 곳은 우리 동네보다 좀 더 집이 크고 반듯하고 예쁜 색이었지만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 집 주변엔 비슷한 단층집들과 드문드문 이층집 몇 채가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오래 된 우리 집의 슬레이트 지붕은 어딘가 조금씩 틀어져 반듯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늘 손을 보셨고 우리 집은 이웃집보다는 조금 더 새집 같았다.. 마당 가운데는 두어 그루 작은 나무가 서 있었고 곁에는 펌프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수도가 있었다. 공장에 다니는 언니들 몇 명과 또 다른 공장에 다니는 아저씨와 아줌마들 몇이 띄엄띄엄 작은 마당을 공유하며 함께 살았다. 남들이 보면, 혹은 건너편 양옥집에 사는 사람들이 보면 가난한 풍경이었구나! 가난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고 살았던 나와 가족들이, 내 이웃들이 그렇게 보였구나 싶었다.

 행복한 시절이었다. 마당에서는 수다를 떨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소리가 늦게까지 들렸고 빨래가 덜 마를까 널기 전에 여러 번 탁탁 터는 소리가 이어졌다. 가끔 자다 깨어 변소 간다고 동생이랑 손잡고 나가면 어느 방에서는 코고는 소리가 어느 방에서는 깔깔대는 수다가 들리곤 했다. 마당에 평상을 놓고 주무시던 아버지는 잠이 깨서 우리를 지켜보시곤 했다.

 풍경은 마당의 무화과가 해를 지내며 더 많은 열매를 준 것처럼 점점 더 편안해지고 여유로워졌고 사람들은 무언가를 조금씩 모으고 늘려서들 떠나갔다.

 

 발 딛고 쉬라고 내줄 곳이/선잠 들라고 내준 무릎이/살아오는 동안 나에겐 없었다/내 열무 밭은 꽃밭이지만/나는  비로소 나비에게 꽃마저 잃었다 

                                         - 문태준 <극빈>부분

 

 처음 시를 읽으면서 이 구절이 마음에 들었다. 내게 발 디딜 곳이 되어준 아버지와 언제든 선잠자라고 무릎을 내어준 어머니를 생각했다. 아니 그것조차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시인의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는 말이 맞겠다. 그리고 그 시절 함께 풍경을 나누던 이들을 생각했다.

 열무 꽃에 앉은 나비에게 유일한 열무 밭마저 내어주고 이제 꽃마저 잃었다고 하는 시인의 말에 나는 ‘빈(貧)’이라는 말, 가난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발 딛고 쉴 자리도 선잠 잘 무릎도 없었다는 그 말이 숨이 막혔다. 아무것도 없는, 빈 시간들을 막막하게 그려보았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없음, 혹은 비어있음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채움의 공간일 수 있다. 다행히 그 시절의 공간은 내게 비었던 적이 없었고, 늘 내 자리임을 확인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가진 것을 잘 지키고 내어주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런 요구를 받게 될까 열심히 도망을 다닌 결과이기도 했고 다행히 내가 가진 것은 딱히 남이 탐낼만한 것이 아니기도 했다. 덜 가져오지만 덜 내어주는 구조인 셈이다. 나는 세상을 보는 눈이 무디다. 세상을 날카롭게 보지 못하고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때가 많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세상이 주는 충격에도 많이 무딘 편이다. 그래서 가능했던 삶의 구조인지도 모른다.

 나는 유일한 꽃밭에서 나비에겐들 내 꽃을 내어 줄 수 있을까? 그는 꽃마저 잃었다고 이야기하지만 누가 보아도 그것은 내어 준 것이다. 어쩌면 그가 가진 유일한 것이었는지도 모를 그 꽃을, 어쩌면 꽃을 피우기 위해 기울였던 그 모든 노력까지도 그는 모두 내어주었다. 나는 누가 내어준 것을 받으며 살았나 싶다. 부모님이 나에게 그리 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받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기적으로 자랐다. 그래서 내가 가진 것을 손에 꼭 움켜쥐고 살았다. 세상에 내어주지 못한 ‘나의 것’ 들은 무엇이 있나?

 작은 꽃밭으로 나비가 또 날아든다. 낯선 나비다. 나는 나비를 쫓으려 손을 휘휘 내저었다.

 

 -2024년 6월호 한국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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