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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은 어떤 모양일까요? (일산반)    
글쓴이 : 한지황    16-11-28 19:22    조회 : 20,656

완경(完經) / 김선우

 

수련 열리다

 닫히다

 열리다

 닫히다

 닷새를 진분홍 꽃잎 열고 닫은 후

  초록 연잎 위에 아주 누워 일어나지 않는다

  선정에 든 와불 같다

  

  수련의 하루를 당신의 십년이라고 할까

  마는 쉰살부터 더는 꽃이 비치지 않았다고 했다

 

 피고 지던 팽팽한  

 적의(赤衣)의 화두마저 걷어버린

 당신의 중심에 고인 허공

 

 나는 꽃을 거둔 수련에게 속삭인다

 폐경이라니, 엄마,

  완경이야, 완경!

 

 

이 시는 수련이라는 자연을 얘기하다가

자연과 동일한 개념인 어머니를 말하고 있습니다.

폐경이 된 어머니를 여성성을 상실한 존재가 아닌 완성된 존재로 보고

엄마의 삶을 완경이라는 언어로 표현한 시인의 어머니를 향한 사랑이 감동적입니다.



뻘같은 그리움 / 문태준

 

그립다는 것은 조개처럼 아주 천천히 뻘흙을 토래내고 있다는 말

그립다는 것은 당신이 언젠가 돌로 풀을 눌러 놓았었다는 얘기

그 풀들이 돌을 슬쩍슬쩍 들어 올리고 있다는 얘기

풀들이 물컹물컹 하게 자라나고 있다는 얘기

 

그리움을 시각적으로 잘 나타낸 시입니다.

그리움이란 육중한 기계가 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닌

풀이 자라면서 조그마한 돌멩이를 살짝살짝 옮겨놓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이렇게 보이지 않는 관념을 보이게 만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시와 수필쓰기입니다.

시와 수필에 감각적 표현이 필요한 이유이지요.

 

(鳶) / 이재무

 

자른 한지에 바람구멍을 뚫고

엇갈리게 대나무살 붙이고

실 달아 방패연을 만들었다

무연한 것들끼리 포개고 얽혀

새롭게 태어나 이름 얻는 것

어디 연뿐이랴 수소와 산소가 만나 물이 되고

배추와 양념이 만나 김치가 되고

게와 간장 서로의 몸속에 스미고 배여 게장 되고

생면부지 너와 내가 만나

연인이었다가 운명처럼 한 가족 이루었듯이

인연이란 관계의 숙성 아닌가

언덕에 서서 연 날린다

실패의 실 풀었다 감았다 하며

바람의 속도의 크기 조율하는 동안

갓 태어난 새 뿔,

우쭐우쭐 좌왕우왕 천방지축

겁 없이 하늘 찔러대며 오르고 있다

저러다 연, 줄 놓으면 연 다할 것이다

 대나무와 한지처럼 인연이 없던 사물끼리 인연을 맺어 연이 되듯이

많은 무연의 사물들이, 사람들이 인연을 맺으며 살아갑니다.

인연이란 관계의 숙성입니다.

짧은 인연으로 지내다 헤어진 관계들은 겉절이에 불과했던 것이고

오랫동안 만나고 있는 관계들은 묵은지에 해당되겠지요.

인연도 줄이 끊어지면 끝이 납니다.

 

 

오징어 / 유하

  

눈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불빛을 먹이로 착각하는 오징어에게 불빛은 욕망입니다.

욕망을 향해 헤엄치는 오징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입니다.

파면 팔수록 더 커지는 구멍처럼

점점 더 커지는 욕망을 향해 달려드는 인간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에서 가타리나 고진은

풍경이란 주체 내면의 정서, 기억, 경험 등에 의해서

굴절되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즉 동일한 사물이지만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다르게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밤하늘의 별을 보며 배가 고픈 자들은 흩어진 튀밥으로 볼 것이며

사랑에 빠진 사람은 하트로 볼 것입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제 보는 별과 오늘 보는 별이 달라집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이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은 어떤 모양일까요?

 


진미경   16-12-02 06:16
    
아 ! 그러네요. 밤하늘의 별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제가 사는 아파트는 밤에 분리수거를 해요.
추운 겨울이라 그럴 때 핑계삼아 밖에 나가지요. 최근에 본 별은 부옇게 번져 보였어요.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때문이었을까?

고맙게도 두 권의 시집을 받았습니다. 세상 시끄러울땐 시인의 마음으로 사는 것도 방법같아요.
많은 엄선한 시 가운데 눈에 띄는 두 편의 시를 발견했어요.

첫 사랑

김정수


금방 읽어 좋은 짧은 시
한눈에 다 들어온다
잠시 눈을 감으면
미처 들어오지 못한 여운까지
오래오래 가슴에 머문다

그런 날
종이에 손을 베인다


사랑

박소유

마흔에 혼자된 친구는 목동에 산다
전화할 때마다 교회 간다고 해서
연애나 하지. 낄낄거리며 농담을 주고받다가
목소리에 묻어나는 생기를 느끼며
아, 사랑하고 있구나 짐작만 했다
전어를 떼로 먹어도 우리 더 이상 반짝이지 않고
단풍잎 아무리 떨어져도 얼굴 붉어지지 않는데
그 먼 곳에 있는 너를 어떻게 알고 찾아갔으니

사랑은 참 , 눈도 밝다


조금씩 시가 눈에 들어옵니다.
작은 변화에 가슴 떨립니다.
한지황   16-12-03 10:53
    
사랑은 참, 눈도 밝다라는 표현이 재미있네요.
시를 접하면 접할수록 시에 대한 눈도 밝아지지요.
그만큼 마음의 폭도 넓어지는 느낌이고요.
시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소중하듯이
우리도 누군가에게 가슴을 적실 선물을 주고 싶군요.
주말 잘 보내시고 월욜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