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리나무 / 이재무
애써 가꾼 한 해 양식을
지상으로 돌려 보낸 뒤
한결 가벼워진 두 팔 들어올려
하늘 경배하는 그대들이여
주머니 속
때묻은 동전에 땀이 배인다.
몇 푼 되지도 않는 동전에 집착하는 나와
한 해 양식을 지상으로 돌려보내는 상수리나무를 대조해서 쓴 시입니다.
상수리라는 자연을 보며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지요.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 지혜에 귀 기울이는 시인의 자세를 배워봅니다.
폐가 / 이수익
빈 산막엔
능구렁이 처럼 살찐 고요가
땅바닥에 배를 깔고 숨을 몰아쉬고 있다.
흙담이 무너져 내려 썩고, 나무기둥이며 문살이
오랜 비바람에 썩고 썩어 향기로운 부식의 냄새를 피워 올리는,
이 버려진 산막 하나가 고스란히 해묵은 포도주처럼
맑은 달빛과 바람소리와 이슬을 먹고 발효하는 심산의 특산품인 것을,
신이 가끔 그 속을 들여다보신다
‘능구렁이처럼 살찐 고요’라는 표현이 기가 막힙니다.
고요라는 관념을 보이게 씀으로써 관념의 감각화를 잘 했습니다.
달빛과 바람, 이슬이 발효되어 포도주가 되었다는 표현도 멋지지요?
꼭 기억해야만 할 시입니다.
버려지고 망가진 느낌이 아닌
발효된 느낌으로 폐가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따스합니다.
묵화 /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소를 쳐다보며 동병상련을 느끼는 할머니의 모습이 가슴뭉클합니다.
소 /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 나오도록 울어 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 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한마디의 말도 할 수 없는 소는 눈으로 말을 하지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슬픈 눈으로 꿈벅거리기만 하는 소를
보면 덩달아 슬퍼집니다.
울분의 나날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상수리나무를 닮기가 이토록 힘든 것일까요?
낙엽이 되어 땅으로 돌아간 단풍들을 보며
우리의 삶 또한 결코 길지 않다는 것을 배웁니다.
시인이 <십일월> 이라는 시에서 읊었던
‘쇄골을 드러내는 산과
여위어 가는 강을 바라보며‘
자연의 섭리를 되새겨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