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쪼라와의 이별>>
발렌틴 라스푸틴 (1937-2015)
1937년 시베리아 아탈란타에서 임업국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이 수몰되자 이주지역에서 중등학교 졸업 후 이르쿠츠크 대학 역사 철학부에 입학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크라스노야르스크 신문사 특파원으로 수력 발전소들을 취재합니다.
블라디미르 치빌리힌의 문학 세미나에 참가하여 문학에 눈을 뜨게 되고 전업 작가로 활동하게 되면서 <하늘 가장자리 끝>을 발간합니다. 이후에 이주지역에서 살던 중등학교 때의 생활과 그곳의 자연을 묘사한 <프랑스어 수업>, 수몰된 고향에서 소재를 찾은 <마쪼라와의 이별>등을 발표합니다.
“도스토옙스키로부터 심리적인 긴장감의 재고와 작품의 조직화에 대한 기법을 배웠고, 이반 부닌에게서는 농촌생활과 농촌을 보는 지혜를 배웠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을 만큼 두 대작가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고 농촌문학에 심리학을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시베리아에 대한 에세이들을 집필했고 2015년 78세로 사망하여 이르쿠츠크 즈나멘스키 수도원에 안장되었습니다.
라스푸틴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인간성과 관련된 문제였으며 인간심리에 대한 고찰이 작품의 주를 이루고 스스로 심리작가라고 부르기를 즐겨했습니다.
<마쪼라와의 이별>은 ‘어머니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마쪼라 마을이 수력 발전소 건설로 인해 수몰될 위기를 맞게 되면서 벌어지는 과거 전통과 현대 기술의 투쟁, 구세대와 신세대간의 갈등을 그립니다.
라스푸틴의 농촌문학은 도시화에 따른 생활방식의 변화와, 농촌의 모습을 잃어버린 농촌을 묘사하며 반 유토피아적 경향을 보입니다. 마쪼라와의 이별에서 ‘회상’ 또는 ‘기억’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이 안에 진실과 양심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 이후로 라스푸틴은 농촌과 대비되는, 도시의 문제를 비판하는 것으로 작품 활동이 변화하였습니다.
작품을 읽은 소감은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 속에 끼어 있는 ‘낀 세대’가 전후에 ‘베이비 부머‘로 태어 난 우리세대 같다.”
“속도는 다르지만 어느 나라나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동안 비슷한 문제를 안고 비슷한 방향으로 간다는 것을 느꼈다.”
“이곳 할머니들이 직면한 이야기 모두가 소중하다.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삶도 없는 것이다’라고 말한 다리아 할머니의 말이 와 닿았다.”
“자연묘사가 청량음료처럼 다가왔다.”
“옛날이 있어서 오늘이 있다. 이것이 쌓여서 미래가 된다.”
“그 장소와 사람들의 아픔을 자세하게 그려냈다.”
“물건들의 의인화에 공감했으며, 어린 시절 오래 살았던 집에서 이사 갈 때 그 집과 이별했던 기억이 났다.”
“정책을 만들어 밀어 붙이는 사람들은 그 정책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모른다.”
“유형의 물건이나 장소를 중요시 한 반면, 무형의 감정을 소홀히 여겼던 것에 대한 반성을 했다. 무형의 가치를 생각하게 해준 작품이다.”
수력 발전소 건설은 그 시대의 선전도구였고 공산주의 사회가 잘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대대적인 사업이었습니다.
사회주의 건설과 그 이전사회의 대립을 보여 준 이 소설은 전통을 말살하는 정책에 대한 고발입니다.
마쪼라의 할머니들이 소중히 여기는 ‘사모바르’를 화면으로 보면서 러시아에 가면 꼭 하나를 사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태도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단순히 차 끓이는 용도를 넘어선, 정신이 담긴 물건 같았습니다.
정진희 회장님, 이탈리아 문학기행 후에 몸살 앓고 오셨는데 거하게 점심을 사주셨습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이영희샘의 커피콩 빵도 티타임의 즐거움을 더해주셨습니다.
다음 작품은 친기스 아이트마토프의 <<백년보다 긴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