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성호 교수님의 수업 자료를 요약한다.
한강(1970- )은 장편소설 『채식주의자』(2007)의 영역 작품으로 한국인 최초로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날상을 수상했다.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216쪽, 창비, 2014)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열흘간 벌어진 학살과 항쟁의 기록을 담고 있다. ‘5월 광주’는 국가라는 괴물의 파국, 인간 잔혹성의 극점, 양심이라는 보석의 빛을 동시에 보여준 사건으로 남아 있다. 저자는 이 소설에서 끔찍하게 죽어간 망자들을 불러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가장 절박하고 내밀한 언어를 부여함으로써 사건에 대한 뚜렷한 증언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5월 광주’를 겪은 이들이 단순 희생자가 아니라 가장 위대했던 항쟁의 주체였음을 은은하고도 당당하게 알려준다. 수많은 실록과 증언이 축적된 터에 저자는 항쟁의 주체들이 남긴 이러한 인간 존엄의 서사를 가장 고통스러운 언어, 어쩌면 고통마저 넘어선 언어로 들려주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중학교 3학년이던 소년 동호(15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매일같이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며 주검들의 말 없는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초를 밝히던 그는 시신들 사이에서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날, 돌아오라는 엄마와 돌아가라는 형, 누나들의 말을 듣지 않고 동호는 도청에 남는다.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일하던 형과 누나들은 5·18 이후 경찰에 연행되어 끔찍한 고문을 받으며 살아 있다는 것을 치욕스러운 고통으로 여기거나 일상을 회복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진다. 저자는 5·18 당시 숨죽이며 고통받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무자비한 국가의 폭력이 한순간에 무너뜨린 순박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무고하게 죽은 어린 생명들에 대한 억울함과 안타까움이 정대의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로 대변된다. 이런 엄혹한 분위기 속에서도 국가의 부조리에 맞서도록 어린 그들까지 시위 현장으로 이끌었던 강렬한 힘은 다만 ‘깨끗하고도 무서운 양심’ 하나였다. 그렇게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느끼며 수십만 시민들이 모여 만든 위대한 ‘양심의 혈관’을 함께 이루었다.
‘그날 도청에 남은 어린 친구들도 아마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그 양심의 보석을 죽음과 맞바꿔도 좋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총을 메고 창 아래 웅크려 앉아 배가 고프다고 말하던 아이들, 소회의실에 남은 카스텔라와 환타를 얼른 가져와 먹어도 되느냐고 묻던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서 뭘 알고 그런 선택을 했겠습니까?’
소설은 이러한 국가의 무자비함을 핍진하게 그려내면서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과거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는 인간의 잔혹함과 악행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어떤 표정, 어떤 진실, 어떤 유려한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한강은 이 소설을 통해 ‘살아남았다’는 것이 오히려 치욕이 되는 사람들이 혼자서 힘겹게 견뎌내야 하는 매일을 되새기며, 그들의 아물지 않는 기억들을 함께 나눈다. 작가는 무덥고 습했던 여름 끝에 가로수 아래를 걷다가, 잘 마른 깨끗한 홑청 같은 바람이 얼굴과 팔에 감기는 감각에 놀라며 동호를 생각한다. 따뜻했던 봄날의 오월을 지나 ‘그 여름을 건너가지 못한 동호, 이런 아침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동호’를 떠올리며 작가는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인간이란 것을’ 되새기고, 인간으로서의 우리가 이들에게 어떠한 대답을 해줄 수 있는가를 간절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리하여 이제는 더 이상 억울한 영혼들이 없기를, 상처 입은 영혼들이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나아가 평온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5·18 희생자들의 ‘눈 덮인 무덤들’ 사이에서 못다 핀 소년 동호를 추모하기 위해 작가 한강이 마음을 다해 밝힌 작은 촛불들이 안타까운 세상에 온기를 더해줄 것이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 수업 후기 작성자는 1980년 5월 초부터 일본 도쿄대학에서 박사후 연구 생활차 장기 체류를 시작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출국 전 군사정부는 이미 언론 통제를 하고 있었고, 특히 한국 관련 외신, 예를 들면 주간지 타임이나 뉴스위크는 게재된 한국 관련 기사를 모두 지우거나 삭제하여 시판했다. 성씨(全)가 한자로 같아서 대학에서 또는 학회에서 만나는 동료들은 친척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는 농담을 듣곤 했다. 물론 본이 다른 성씨이다. 한국에서 출국 전에는 군사 정권의 실력자가 누군지 자세히 몰랐으나 도쿄에서는 한국 관련 기사를 타임이나 뉴스위크로, 일간지로 상세히 볼 수 있었다. 1980년 전후로 우리에게 이런 황당하고 광포한 시대가 있었다.
단편 「귀향」(1946)의 러시아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1899-1951)가 떠올랐다. 그는 『체벤구르』(1929), 『코틀로반』(1930)을 완성했으나 스탈린 체제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탄압을 받으며 살아있는 동안 출판하지 못했다. 그의 15세 아들은 1938년 테러리스트로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2년간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중학교 3학년이던 소년 동호와 같은 나이이다. 폐결핵에 걸린 채 풀려난 아들을 간호하다 플라토노프 본인도 폐결핵에 걸렸다. 그는 스탈린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맹종하는 어용 문인들의 신랄한 비판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금지당했고, 이어 가난과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미국 등지에서 먼저 출판되었으며, 소련에서는 사후 30여 년이 지난 1980년대 후반에야 출판되었다. 15세 소년이 테러리스트이고 정치범이라니 이해가 될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국내 영화 《택시 운전사》(2017)가 생각났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현장취재를 통해 광주의 참상을 해외에 알린 외신기자(독일 제1공영방송 소속)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치만 분)와 그를 도운 택시 운전사 김만섭(송강호 분), 그리고 광주 시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 번 더 감상해야겠다.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스탈린(1879-1953)을 떠 올릴 때 나는 생각이다. 그는 43세에 집권하여 31년간 철권을 휘두르며 수많은 숙청을 자행한 독재자이다. 히틀러와 함께 가장 혐오하는 인물 중 하나이다. 이런 인사가 74세에 병사하며 자연적인 죽음을 맞았다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전세계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전쟁과 분쟁, 폭력의 참혹함과 광적인 인간들의 무자비한 잔혹성을 볼 때마다 드는 의혹이다.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의도는 신의 창조 계획엔 포함되어 있지 않다.”(이병주, 『행복어 사전』)는 표현은 맞는 걸까.
<명작읽기반>의 6개월간 월별 읽기 교재
7월 7일(목) 『필경사 바틀비』 멜빌
8월 4일(목) 『백 년의 고독』 마르케스
9월 1일(목) 『모든 저녁이 저물 때』 에르펜베크
10월 6일(목) 『소년이 온다』 한강
11월 3일(목)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쿤데라
12월 1일(목) 『그리스인 조르바』 카잔차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