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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쉰은 왜 펄벅의 『대지』를 비판했나(명작과 수필반)    
글쓴이 : 오정주    26-10-06 23:58    조회 : 39

시월, 가을 학기 첫날, 시월이라는 말이 어쩐지 시립니다.

늘 항상 곁에 있는 문우님들은 언제나 따뜻한데 말이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창문을 넘고 한 해가 어느새

끝을 향해 기울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가 봅니다.

『대지』는 오래전부터 익숙한 작품이지만,

루쉰이 펄 벅의 중국 이해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사실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젊은 날 읽었던 책을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만나면

같은 문장이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옵니다.

책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달라졌기 때문이겠지요.


시월은 조금 시려도

우리들의 화요일은 오래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1부> 펄 벅(Pearl  S Buck,1892~1973) 

루쉰은 펄벅이 그린 중국 농민상이 중국 현실의 깊은 층까지 들어가지 못했다고 비판. 펄벅이 중국을 자기 조국처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국 중국에서 성장한 미국인 선교사 가정 여성의 시선이며, 그녀가 파악한 것은 중국의 ‘표면적인 사정’에 머문다는 것.

루쉰이 “외국인은 중국에 대해 쓰면 안 된다”고 단순하게 주장한 것이 아니다. 당시 중국은 군벌, 지주제, 빈곤, 제국주의, 혁명 등 거대한 사회적 모순 속에 있었다. 루쉰과 그 주변의 좌파 문인들에게 중국 농민의 가난과 고통은 단순히 가뭄·홍수·운명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와 권력관계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런데 펄벅의 『대지』에서 왕룽은 가난한 농민으로 출발하지만 땅을 사고, 부자가 되고, 다시 가족의 균열을 경험한다. 펄 벅은 무엇보다 농민과 땅의 끈질긴 관계, 가족, 굶주림, 생존, 욕망을 인간적인 차원에서 그렸다. 바로 이것이 서양 독자들에게는 강렬했지만 당시 중국의 일부 지식인들에게는 부족하게 보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1938년 펄 벅이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스웨덴 한림원이 높이 평가한 것 역시 바로 중국 농민 생활에 대한 풍부하고 진실하며 서사적인 묘사였다. 펄 벅 자신도 노벨 강연을 아예 「중국 소설(The Chinese Novel)」이라는 제목으로 하고, 자신이 중국의 이야기 전통에서 작가로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즉 같은 『대지』를 놓고

서양에서는 “중국 농민의 삶을 처음으로 인간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했고, 중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중국 농민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 현실의 뿌리까지 보여주지는 못했다”고 본 것이다.

펄 벅에 대한 중국의 냉대에는 루쉰의 평가보다 훨씬 큰 정치적·역사적 요인도 있었다.

1949년 이후 미·중 관계가 단절되고 펄 벅이 중국 공산정권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그녀의 작품은 중국 본토에서 오랫동안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웠다. 훗날 그녀의 중국 방문도 허가되지 않았다. 따라서 루쉰이 비판해서 펄 벅이 중국에서 배척된 것은 아니다.

 

고선생님이 뽑은 『대지』의 명장면 2개

1. 기근 속에서 오란이 소를 죽이는 장면

왕룽은 농사꾼에게 가족과도 같은 소를 차마 죽이지 못한다. 오란이 대신 나선다. 왕룽이 미래의 땅을 생각할 때 오란은 지금 굶고 있는 생명을 선택한다. 오란의 냉정한 생명력과 실천성이 가장 강렬하게 드러남.

2. 오란의 죽음과 왕룽의 뒤늦은 깨달음

오란은 죽어가면서“ 내가 괜찮은 아내였나요?”라고 물었다.

오란이 땅을 꼭 지키라고 말하자 왕룽은 “당신은 땅이야”라고 말했다. 이 말에는 사랑뿐 아니라 뒤늦은 깨달음과 죄책감이 함께 들어 있다.

평생 가족을 떠받쳤으면서도 사랑받지 못했던 오란. 왕룽은 그제야 자신이 잃어가는 것이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깨달았다.



<2부> 합평            이명환/김 숙/ 오정주(존칭 생략) 

*예술가들 이야기는 어려운 철학보다도 에피소드가 많아야 잘 읽힌다.

 *글감은 가을 길거리의 낙엽처럼 무수히 쌓여 있다.

우리는 그 많은 글감을 청소부처럼 쓸어 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