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황 반장님과 이정선 총무님이 3월 첫 개강 인사를 합니다.
이어서 신입생 3분이 나오셔서 인사합니다.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서점에 가면 수많은 수필 이론 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를 선택해서 열심히 읽고 “자! 이제부터 읽은 대로 써보자.”한들
말처럼 쉽게 써질까요?
물론 약간의 도움은 받겠지요.
흔히들 알고 있는 대로 수필을 대표하는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라거나
‘무형식의 형식“이라는 말처럼 과연 수필은 마음 내키는 대로 쉽게 끄적거려도 되는 걸까요?
아닙니다.
형식은 엄연히 존재해야 하며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무시한 글은 재미기 없고
과장해서 말하자면 “언어폭력”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요.
책은 궁극적으로 나무를 훼손한 종이로 만들어집니다.
생태계까지 파괴해 가면서 쓰는 글쓰기 행위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 자괴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 함부로 글을 써서는 안됩니다.
종이를 낭비하는 차원을 벗어나려면 좋은 글을 써야지요.
무조건 제목부터 정하고 자판을 두드리는 행위는 잘못된 글쓰기 방식입니다.
무엇보다도 개요 작성을 먼저 해야 합니다.
전체 줄거리인 요강을 작성해야 하지요.
건축으로 말하면 설계도에 해당하는 것으로
요즘은 하다못해 개집까지도 설계도에 따라 짓는다는데
글은 두말나위 할 것 없지요.
소설처럼 완벽하게 윤곽을 짜지는 않더라도
어떻게 열고 본론으로 들어가고 마무리를 할 것인지의 윤곽만은 꼭 짜고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중구난방, 논점이탈의 우를 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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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구성 방식엔 첫째, 3단 구성이 있습니다.
서론, 본론, 결론으로 나뉘지요.
요즘 수필은 짧아져 가는 경향이 있어서 10매 내지 15매의 분량이 좋습니다.
소설처럼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읽는 수필은
길면 아예 읽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죠.
글도 체형처럼 날씬해야 합니다.
초보자는 대개 도입부가 긴데 15~20%의 분량이 적당합니다.
본론은 경험 내용을 씁니다.
예를 들어 예시, 인용, 비교 ,대조 이유제시 등으로 60~70%의 분량이 좋습니다.
결론의 반은 본론을 요약하고 마지막은 깨달음으로 맺는 것이 좋지요.
서론과 같이 15~20%의 분량이 바람직합니다.
둘째, 기승전결의 방식으로 ‘기승’은 서론에 해당됩니다.
‘전’이 가장 중요하며 ‘그러나’, ‘그런데’와 같은 접속 부사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요.
셋째, 선경후정입니다.
특히 기행문에서 많이 쓰이는 방식으로 먼저 객관적 풍경을 묘사하고 사실을 제시한 다음
객관적 사실에 대한 필자의 느낌과 깨달음을 쓰는 방식입니다.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복효근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섰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떼가
누우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잠그는 것을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우떼는 강을 다 건넌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중 몇 마리는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1,2,3,4연은 객관적 사실을 옮긴 것으로 언어로 그린 그림에 해당됩니다.
즉 묘사이지요. 묘사는 감각에 비유를 더한 것으로
묘사를 잘 해야 문학적인 글이 됩니다.
설명만 있는 글은 재미가 없지요.
5,6 연은 자신의 생각을 썼습니다.
이렇게 선경후정 방식을 쓰면 시, 수필은 무한정으로 쓸 수 있지요.
넷째, 서사적 구성 방식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일대기를 쓸 때 해당됩니다.
여기엔 순차적 구성 즉 전개식 구성과 역순행이 있는데
시간의 추이에 따라 쓰는 순차적 방법보다는
현재에서 과거로 들어가는 역순행의 방식을 쓰는 게 좋습니다.
이 방식은 또한 이야기 수필 형식으로 엽편 즉 짧은 소설처럼 쓰면 좋지요.
중국의 유명 작가 노신의 작품 대부분이 엽편 소설입니다.
여승/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냄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 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1연은 여승을 만나는 장면으로 현재입니다.
2연부터 과거 회상이 나오는 데 10년 전 만난 적 있는 가난했던 여인을 떠올리지요.
3연은 남편의 가출을 얘기하고 아이를 때리는 어미의 서러움을 말합니다.
4연은 머리 자르고 여승이 된 것을 묘사합니다.
이렇게 2~4연은 왜 여승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구성으로 역순행의 좋은 예입니다.
거듭되는 내용이지만 봄 학기의 첫 시간이므로 새로 오신 분들을 위하여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점을 다시 강조해 봅니다.
첫째, 주제의식과 동기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에게 전달이 되지 않지요.
대강이라도 주제의식을 적어놓고 시작하세요.
그 다음에 주제에 관련된 소재를 찾습니다.
경험, 일화, 이웃집 얘기, 신문 자료, 고전 등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런 다음 가지치기 즉 배제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주제에 관련된 것만 남기고 과감히 버려야지요.
이제 구성에 맞춰서 쓰기 시작합니다.
내용과 형식은 음식 재료와 그릇의 관계와 같습니다.
재료에 맞는 그릇에 담아야지요.
둘째,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거창할 필요는 없어요.
아주 사소한 깨달음이면 충분하지요.
수필은 일기도 수기도 아닙니다.
경험을 그대로 옮겨서는 안되고 재구성 할 떼 굴절을 해야 합니다.
사실 기록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상상력을 동원해서 경험을 가공해야 합니다.
음식의 원재료를 알 수 없는 요리처럼 문학은 발효를 해야 합니다.
시와 소설이 거짓에서 진실을 찾고
역사가 사실에서 진실을 찾는 것이라면 수필은 그 중간 정도에 해당되지요.
경험을 바탕으로 과장, 왜곡이 필요합니다.
글쓰기는 연기력입니다.
배우나 탤런트들이 영화나 드라마를 찍고 난 후 후유증을 느끼듯이
소설가가 소설 탈고 후 자신이 죽인 주인공 때문에 슬럼프를 겪듯이
수필 또한 그 정도로 몰입을 해야 합니다.
한 편의 수필을 쓰기위해 우리는 얼마나 성심성의껏 매달렸는지
너무 자신을 믿고 소홀히 글을 대하지는 않았는지
깊은 반성을 해봅니다.
새로 오신 세 분의 회원들 까지 문우들로 강의실이 꽉 찼습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첫 수업에 임해 주셔서 참 기뻤습니다.
무척 심한 감기에도 불구하고 나오신 박인숙샘과 윤정미샘 어서 나으시길 바래요.
특히 맛있는 빵으로 간식 준비해 오신 박인숙샘 감사합니다.
봄기운이 무르익어서인지 마음이 들뜨는 것을 막을 수 없네요.
옷차림도 한결 화사해지고 벗들의 얼굴도 덩달아 환해졌습니다.
희망의 돛대를 단 일산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