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를 시작하는데 기쁜 소식들이 너무 많네요^^.
맛난 팥시루떡은 김선희샘께서 내셨는데 정작 본인은 딸내미 중학교 입학식에 가느라고 못 오셨어요^^.
담주엔 꼭 뵈어요~.
김문경 반장과 이순례 반장의 이취임 소식입니다.
김문경반장님이 2년9개월간의 반장일을 그만두고 글쓰기에 더욱 집중하고 싶다는 말로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 동안 총무들이 많이 도와주고 언니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며 월반이 더욱 화기애애하고 글쓰기에 힘쓰는 반이 되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김문경반장님....그동안 한국산문 살림에 월반 살림까지 너무 애쓰셨어요^^~. 너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이순예 신임반장님은 글을 자주 내지 못하고 있어서 반장일을 맡는 것이 너무 부담되지만 김문경 반장의 모토인 ‘카르페 디엠’처럼 목동반에서 송교수님 모시고 더욱 즐겁게 글 쓰는 모임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말로 취임사를 대신했습니다. 월반 홧팅입니다^^~.
오랜 만에 등록하신 옥보명샘의 소개로 한 학기를 시작했습니다.
옥보명샘은 어릴 적 꿈이 글 쓰는 사람과 고등학교 수학선생이었는데 얼마 전 수학교육학 석사를 취득하고 한가람고등학교 수학선생으로 일하게 되어 기쁘다면서, 이제 글쓰기에 좀 더 노력하고 싶어서 다시 등록하게 되었다는 말로 간단히 인사를 했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이에 송교수님은,
자신은 글을 밤에만 썼다. 왜냐하면 가르치는 일과 글쓰는 일을 병행하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글쓰는 사람이 교수를 많이 겸임하고 있지만 전에는 작품 활동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사람이 본인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교수사회에서는 교수나 하지 무슨 글을 쓴다고 하나 하는 시선이었고, 작가사회에 가면 글이나 쓰지 무슨 교수를 한다고 하나 하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평생 퇴근 후 글을 쓰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래서 낮에는 일상을 살고 밤에 글을 쓰면 좋을 것 같다.
박완서 작가는 밤에 남편이 잠이 들기를 기다렸다가 신문을 남편 얼굴에 덮고 불을 켜고 글을 썼다는 일화가 있다. 그렇게 글을 쓰는 일은 주위에서 도와주지 않는 일이다. 글을 왜 쓰나 하는 시각이 많기 때문에 혼자서 글을 써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역시 글을 쓴다는 것은 외로운 일인가 봅니다^^.
오늘은 합평이 1편뿐이어서 송교수님이 비극에 대해서 강의해주셨습니다.
합평내용과 강의내용을 간단히 적습니다.
<등> - 정진희
작가: 등이 가지는 쓸쓸함을 가지고 쓰고 싶었다. 그 쓸쓸함을 생각하다가 천사의 등에 달린 날개가 생각나서 그것과 연결되어 쓰게 되었다. 전에 살던 집 근처 옷 수선집 아저씨의 등을 보면 항상 쓸쓸한 생각이 났다.
송교수: 글쟁이다운 글이다. 좋은 글이다. 정진희 샘의 <등>이 왜 좋다고 생각하는가?
독자: 등에 대해 깊이 사유하는 글이 너무 좋았다.
독자: 작가의 삶이 녹아 있어서 좋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도 잘 나와 있어 좋았다.
송교수: 왜 좋은 글인가를 따져보고 싶어서 문제를 제기했다. 사람들은 각박한 삶을 노래한 글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경쾌하고 가벼운 글은 멋있다하고 하지 ‘좋다’ 라고 하지 않는다. 인류역사상 비극이 먼저 시작되고 자리를 잡은 것 때문이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가 그렇다. 전해져오던 전설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작품화했다는 것은 허구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작가가 부여한 또 다른 면, 즉 삶의 의미 라는가 하는 것이 들어간다. 문학작품을 읽을 수 밖에 없고 연극을 볼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 바로 비극적 인간살이, 인간의 삶이다. 그래서 그리스 비극이 유명한 것이다. 그러다가 인류가 타락하고 세태가 문란해져서 그것을 풍자한 것이 희극이다. 비극이 먼저이고 희극이 나왔다. 그래서 이 글이 좋다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오이디푸스왕>의 얘기를 좀 더 하자면, 오이디푸스왕이 통치를 하는데 흉년, 질병 등 어려움들이 겹치자 신탁을 의뢰했고 그 신탁의 내용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한 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그것을 파헤치다보니 결국 자신이 범인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범인을 색출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아추구, 자아탐색의 과정이었고, 그 과정이 바로 인생이고 문학이다. 오이디푸스는 어떻게 살다보니 수수께끼도 풀게 되고, 어머니도 얻게 되는 삶의 과정을 겪었고 운명의 덫에 걸리게 되었다. 그 운명 때문에 괴로워하고 발버둥 치는 것이 사람이다. 그 괴로움을 떨치고 나가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전설을 이미 알고 있는 관객 앞 무대 위에서 오이디푸스가 겪는 그 갈등과 고뇌를 보는 것이 연극이다. 오이디푸스가 주는 연민과 공포를 관객이 함께 느끼면서 주인공과 관객이 혼연일체가 되는 것이 비극의 성공이고 절정이다. 오이디푸스왕의 운명에 연민을 느끼면서도 왕이 저 정도인데 나는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을까 하는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소포클레스는 그 결말을 오이디푸스가 자기 눈을 찌르고 황야로 떠나는 것으로 만들었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결말을 만들었고,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결말에 공감한다. 만약에 운명 탓을 하고 그냥 살아간다면 관객이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울만큼 울고 후련해지는 카타르시스(정화)의 효과도 얻게 된다. 그런 카타르시스는 인간 짓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운명의 덫에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간이고 그러면서도 사람임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즉 인간적이기 때문에 카타르시스를 주게 된다.
<시시포스의 신화>도 마찬가지다.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가 그 벌로 코카서스 산정까지 돌을 굴려 올라가게 되고 다시 떨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카뮈가 위대한 것이 바로 그런 점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돕다가 고생하고 있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사람다운 것이다. 그런 본질을 다 합쳐서 비극이라고 한다.
서정주 <추천사>도 비극적 원리로 풀어낼 수 있다.
“향단아, 밀어라, 먼 바다로 밀어 올리듯이 밀어라”라는 시구는 그네는 얼마 못 올라가지만 또 밀어 올리고 또 밀어 올리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도 비극의 원리로 볼 수 있다.
<파도>도 마찬가지다. 밀려와서 허물어져버리지만 또 밀려오고 또 밀려오는 것이 파도다.
글도 마찬가지다. 잘 된 글은 거의 무거운 글이다. 그 무거움은 결국 인생살이가 들어 있다는 얘기다. 결국 좋은 작품, 독자가 많은 작품은 인생살이의 무거움이 들어가야 한다.
20% 가벼운 작품, 80%는 무거운 작품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왕가네 식구들>을 처음 보았을 때 그 드라마 작가는 독자의 80%를 겨냥한 것 같아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비속하고 저속하지만 그 안에 인생살이가 들어있었다. 비극적 가치를 지향하느냐, 포기하느냐가 거기에도 들어있었다. 그래서 고뇌하는 작가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정진희샘의 글도 그래서 좋다. 비극적 가치가 들어있고 그 안에 삶이 들어있다.
독자: ‘안쓰럽다’라는 것 등의 묘사는 작가가 너무 드러난 것 같아 그런 부분은 조금 고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송교수: ‘등이 휜 것을 보았다.’보다는 ‘알았다’가 더 좋을 것 같다. ‘신이 났다.’는 ‘신이 나서 자꾸 가져다주었다.’로 구체화시키는 등 문장을 조금 다듬는 것이 좋겠다.
독자: 마지막 문장이 너무 착한 결단인 것 같았다. 다른 식으로 고치면 좋을 것 같다.
송교수: 자신도 그 마지막이 도식적이라고 생각해서 조금 다른 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
# 월반동정:
4월 7일 5시에 <한국산문> 총회가 있습니다. 모두 참석해서 기뻐해주세요^^.
3.14일 역사박물관에서는 에세이스트에서 주관하는 <올해의 작가상> 시상식이 있습니다.
정진희샘이<캐서린, 당신 지금 행복한가요>란 글로 수상하였는데 많이 참석해서 축하해주세용^^~.
경사가 막 겹칩니다^^.
다음 주에는 등단파티(김명희님, 황다연님)가 <토다이>에서 있습니다.
모두 시간을 비워두시고 참석하셔서 축하해주세요^.
점심은 쥐눈이콩 청국장집에서 했습니다.
티타임에서는 옥보명샘이 커피와 팥빙수를 내셔서 너무 맛나게 잘 먹었습니다.
항상 월반은 기쁜 소식이 넘쳐서 행복합니다.
그동안 편집부장으로 너무나 성실하고 열성적으로 일해주신 안정랑샘이 오늘 몸살로 링거를 맞으시느라 못 오셨어요^. 빨리 쾌차하셔서 담 주엔 꼭 뵈어요^^.` 오늘 결석하신 월님들도 담 주엔 꼭 뵈어요^
월님들...한 주간도 건강하시고 담 주에 건강한 모습으로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