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벗들과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 수 있어 좋은 봄날입니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 간간히 불어오는 새침한 봄바람, 길게 늘어선 자동차들 사이로 바삐 혹은 조금 여유롭게 다니는 사람들, 지난 한주를 잘 보내고 다시 만나는 기쁨이 넘쳐나는 금요반.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지난해까지 한 교실에서 1교시 수업을 들었던 나연선님이 금요반 식구가 되었습니다. 김옥남님의 절친이십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김옥남님의 발걸음이 사쁜사쁜 나비처럼 가벼워 보이셨답니다. 잘 오셨습니다. 저희반 모든 분들이 환영합니다.
수업 시작합니다.
상향희님의 <아! 이어도>
지난번 내신 글인데 수정 부분이 많아 다시 쓰신 글입니다. 상향희님의 글을 보면 나이를 잊게 합니다. 이어도에 대해 알리고 싶은 마음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 다시 쓰게 되었는데 글이 한결 간결해지고 좋아졌습니다. 저희반은 이 글 덕분에 이어도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송교수님의 평
잘 정리가 되었습니다. 특히 앞부분 이청준의 소설이야기는 아주 좋습니다. 이 글은 발상이 신선하고 좋습니다. 뒷부분에서 글의 숨을 끊게 만드는 부분은 고쳐야합니다. 이런 부분은 글의 흐름을 놓치게 만듭니다. 너무 사실에 집착하는 글은 빼고 전설이 현실이 되었음을 부각시키면 더 좋을듯합니다.
조병옥님의 <실패하는 게 뭐 어때서요, 아부지?>
이글은 지난해 합평을 통과해서 이번 <<한국산문>> 5월호에 실릴 예정이었던 작품입니다. 글을 책에 담기 전 한 번 더 합평을 받기 위해 다듬어서 내신 글입니다. 아버지의 삶이 담긴 소설 형식의 글입니다. 조병옥님의 글은 한편의 연극을 보는 듯합니다. 다 읽고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 동안 멍하니 있었답니다. 제 아버지도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힘든 시간들을 어찌 다 견디셨는지...
송교수님의 평
누구나 마음속에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들어 있습니다. 쓰고 싶지만 발표하지 못하는 문인들이 많습니다. 담겨 있는 것을 다 보여주기 힘든 글이 아마도 이런 글일 것입니다. 소설 형식의 이글은 잘 쓰였습니다. 앞부분은 조금 수정되어야합니다.
(이 글은 조금 더 다듬어서 바로 5월호로 갑니다. 딱 5월호여야만 하는 글이라서...>
오세윤님의 <앵두>
오세윤님이 모범학생으로 돌아오셔서 매주 글을 내시고 있답니다. 덕분에 금요반 수업이 더 풍성해 졌습니다. 이글은 아파트 1층에 사시면서 화단에 있는 앵두를 따는 위층 아주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1층의 사는 즐거움과 불편함이 있고, 층간 소음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신 글입니다. (그동안 층간 소음에 무신경했던 저는 많이 반성했습니다. 저희 아래층 분들은 천사가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들었지요. 어찌나 감사하던지...)
본격적으로 수필에 투신하신 교수님의 오늘 수업은 지난 시간에 이어 금강산 기행문입니다.
기행문을 쓸 때 보고 느낀 것만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인간이 들어 있어야 더 좋은 글이 됩니다. 오늘 볼 두편의 글은 산을 봤음만 쓰지 않고 숲을 쓰면서 마이태자 이야기를 쓴 정비석의 <산정무한>과 두 번을 금강산에 올라서 더 자세하게 쓰였고 사람 이야기를 넣어서 기행문을 충족 시켜 준 이광수의 <금강산유기>입니다.
이광수의 글에서는 비로봉 꼭대기에 있는 배바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배 모양을 닮아서 생긴 이름이 아니라 뱃사람들이 이 바위를 표준으로 방향을 찾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바위의 평범하게 생긴 모양에서 위대한 평범함을 보고 작가는 평범의 덕을 배운다고 조금은 교훈적인 글도 있습니다. 시인이나 문인이 지은 이름이 아니라 순박한 뱃사람이 정성으로 지은 ‘배바위’인 것이 더욱 좋다고 합니다.
정비석의 글에서는 비로봉을 보고 내려오며 본 용마석(마의태자의 무덤)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무덤가 비에 젖은 두어 평 잔디밭 테두리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창명히 저무는 서녘 하늘에 돌이 된 태자의 애기(愛騎) 용마(龍馬)의 외로운 그림자가 슬프다. 무심히 떠도는 구름도 여기서는 잠시 머무는 듯, 소복한 자작나무는 한결같이 슬프게 서 있고 눈물 머금은 초저녁 달이 중천에 서럽다.
... 흥망이 재천이라, 천운을 슬퍼한들 무엇랴마는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의가 있으니, 태자가 고행으로 창맹(蒼氓)에 베푸신 도타운 자혜가 천년 후에 따습다.
천년 사직이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고, 태자 가신 지 또다시 천년이 지났으니,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이던가?
고작 70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 움큼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愁愁)롭다.’
저는 이 문장이 좋아 절로 감타사가 나왔습니다. 자꾸 읽어보았습니다.
이렇게 오늘 수업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반장님이 결석(바쁜 일이 생기셔서...) 그리고 신입이신 이선희님은 이번주와 다음주에 빠지신다는 결석계를 내셨습니다. 이렇게 두분 빠지고 모든 분들 출석해서 강의실이 더 가득했습니다.
나연선님이 신고식하신다고 점심도 거하게 내셨습니다.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한 움큼 부토로 돌아가는 인생, 인생 별거랍니까. 좋은 글벗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 즐겁게 신나게 행복하게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