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과의 전쟁은 해가 바뀌어도 진행 중입니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비문이 많은 글은 신뢰감을 상실합니다.
작가로서 치욕적인 일이지요.
물론 비문이 없는 글은 존재하기 힘들 정도로 비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문장이라도 비문이 줄어들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절실합니다.
일단 중학교 일학년 국어 교과서를 구입해서 필사를 하세요.
매일 몇 장씩이라도 꾸준히 옮겨 적다보면 문법에 맞는 문장을 쓰게 됩니다.
주어, 서술어 관계를 꼭 따져보세요. 이것만 잘해도 70~80%의 비문은 줄일 수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짧은 문장을 쓰세요.
이런 노력을 통해 비문 줄이기에 힘써야 하지만
하루 이틀에 고쳐지지 않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글쓰기만큼 성과가 더디게 나타나는 것도 없을 정도로 글쓰기의 길은 험난합니다.
조급함을 버리고 천천히 나아지길 바랄 수 밖에 없습니다.
정확한 단어 구사를 해야 합니다.
평상 시 우리 스스로 정확하지 않은 단어들을 사용하면서도
동남아인들이 우리말을 이상하게 한다고 비웃으니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지요.
‘겨우내 내린 잔설’이란 구절에서 잔설은 녹지 않은 눈을 말하는 것으로 틀린 표현입니다.
‘둔탁한 도심’이란 표현도 틀립니다.
둔탁함이란 소리가 맑지 않다는 뜻으로 도심에 적합하지 않지요.
치매에 걸리면 명사는 잊어버리지만 감각어는 잊지 않습니다.
명사는 눈을 통해 학습되고 감각어는 귀를 통해 습득됩니다.
문학은 감각의 언어를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닭집 아줌마의 정체성이 궁금하다.”라는 표현은 어색합니다.
닭집 아줌마의 앞치마에서는 피냄새가 난다.
그런 아줌마도 가게를 닫으면 지전 주머니를 풀고 꽃을 사러간다.
남편 생일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쇳소리의 목소리를 가지고 투박해도 내면은 여성성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관념어가 아닌 감각적인 표현을 해야 문학이 됩니다.
‘어머니에게 옛날 이야기를 동화처럼 들려드리기로 했다’는 잘못된 비유를 사용했습니다.
비유란 이질적인 것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같은 종류는 안 되지요.
목련을 진달래에 비유해서는 안 되듯이
이야기를 동화에 비유해서는 안 됩니다.
차라리 ‘이야기를 군밤처럼 맛있게 들려드리기로 했다‘ 던가
‘밤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들려드리기로 했다고‘ 해야 합니다.
오늘도 세 시간에 걸친 강의 내내 문법에 틀린 문장들이
스승님의 심기를 많이 불편하게 했습니다.
스승님에 의존해서가 아닌 우리 스스로 비문을 발견할 수 있는 그날이 언제 오려는 지
제자들의 마음도 답답하기만 했지요.
단체로 중학교 국어책을 베끼기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형식이 엉망이라면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좋은 글이 될 자격이 없으니까요.
배울 때는 열심히 들어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니 이것 참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인간 관계에서는 계산을 하는 것이 순수하지 않아서 정이 떨어지지만
글쓰기에 있어서 계산은 철저히 해야 합니다.
계산 없이 끄적거리다간 글은 체계적이지 않고 엉망이 되어버리니까요.
대충 읽었을 땐 몰랐던 오류들이
스승님의 합평과 함께 마구 쏟아져 나오니
민망한 정도가 아니라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다시 기운을 차리고 오뚜기처럼 일어나야지요.
욕심 부리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야지요.
함께 라서 외롭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