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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arning by head, hand and heart    
글쓴이 : 조정숙    14-03-12 20:28    조회 : 5,030
(명작반 풍경)
 
페스탈로치
 

교육의 아버지로 불리는 페스탈로치는 루소의 <<에밀>>에 감동, 법률과 정치적인 정의에 관심을 갖지만 당시 사회분위기는 루소의 철학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였다. 황무지 개간과 Neuhof에 빈민학교를 세우는등 여러 활동을 꾀하지만 실패를 거듭하다 Yverdon 실험학교를 설립하며 비로소 성공을 하게 된다.
 
인간성의 발전이 곧 교육이고 인간성이란 정신과 신체의 조화와 발전을 말한다.
“Learning by head, hand and heart"
인지력, 의욕, 기능, 즉 머리 가슴 몸을 골고루 도야하여 하나의 인격으로 키워내는 것이 교육이며 어머니와 자녀사이의 사랑의 대화를 통한 교육을 가장 중요한 단계로 보았다.
 
교육실천에 대한 글쓰기로 유럽전역에 혁신적 교육의 신념이 알려지며 말년에 명성을 얻게 된다.
페스탈로찌는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근대교육학적으로 입증했으며 빈민 유아교육을 처음으로 실시함으로써 문맹을 근절하는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게 된다.
 
저서
《은자(隱,者)의 황혼 Abendstunde eines Einsiedlers》:농민학교 운영에 실패한 후에 쓴 교육선언
《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 Lienhard und Gertrud(1781~1787):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불후의 교육소설
《인류발전에 있어서 자연의 운행에 대한 나의 탐구 Meine Nachforschungen ?ber den Gang der Natur in der Entwicklung des Menschengeschlechts》(1797):그의 근본적인 철학적·인간학적 사상이 담김
《게르트루트는 어떻게 그의 아이들을 가르치는가 Wie Gertrud ihre Kinder lehrt》(1801):교육방법에 대한 독자적인 견해를 전개한 글
《백조의 노래 Schwanengesang》(1826) : 교육이상으로서 전인적(全人的)·조화적 인간도야의 입장을 읽을 수 있다.
이들 저서에는 인간성에 대한 깊은 신뢰와 신(神)에 대한 순수한 신앙이 그의 생활과 사상의 바탕이었음이 잘 나타나 있다.
 
토마스만
 

뤼베크의 부유한 곡물상 집안에서 출생하였으며 그의 형 H.만(1871∼1950)과 장남 K.만(1906∼1949)도 모두 작가였다
장편소설 《부덴브로크가(家)의 사람들 Die Buddenbrook》(1901)을 발표하고, 그 속에 쇼펜하우어의 고뇌하는 의지, 바그너의 음악적 기법, 니체의 의지철학 등의 영향을 더욱더 밝혀 내어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서유럽식 민주주의에 반대하여 독일 문화를 옹호하는 논문집 《비정치적 인간의 성찰 Betrachtungen eines Unpolitischen》(1918)을 써내어 형 하인리히와 한때 사이가 벌어졌다
 
《독일공화국에 대하여》(1923)는 그의 민주주의지지를 성명하는 작품으로 보수 지식인들의 신랄한 비판을 받게 된다.
 
아내의 폐결핵이 단서가 된《마의 산》은 죽음과 과거에만 집착하였던 초기의 우울한 귀족적 의식을 억제하고 삶과 미래에 봉사하는 사랑의 휴머니즘으로 향해 간 정신적 변화과정을 묘사한 작품으로 볼수 있다.
 
토마스 만의 첫 장편이며 1929년에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소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서는 가문의 사람들, 즉 그의 증조부와 조부, 아버지와 삼촌, 고모 그리고 토마스 만 자신이 그 유사성을 금방 알아볼 수 있으리만큼 비슷한 인물들로 형상화되어 있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국외강연여행에 나선 그는 그대로 망명생활에 들어가 스위스에 거주하며 미국등지에서 반나치활동을 계속한다. 킬히베르크는 토마스만이 만년을 보낸도시이다.
토마스만은 독일소설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독일 최고의 소설가로 꼽히고 있다.
 
제2강(루체른과 알트도르프)
 
루체른은 알프스의 필라투스산과 리기의 교통요지 도시로 유럽최고의 목조다리 카펠교와 4950개의 파이프 오르간으로 이뤄진 호프교회 스위스 용병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사자의 기념상 등이 유명하다.
예쁜 여자가 방금 세수를 하고 나온듯한 인상을 주는 아름다운 도시 루체른의 유명작가 이야기는 다음 시간으로....
 
(수필반 풍경)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아주 오래전에 듣던 배따라기의 노래가 흥얼거려지는 날이었습니다. 건조한 대지를 촉촉이 적셔주는 봄비 내렸습니다.
쎈스쟁이 총무님의 사탕은 의미가 있는 거 아셨나요? 낼 모레가 화이트 데이랍니다.
 
총 9편의 글을 합평하였습니다.
 
박재연님의 <여섯색깔 무지개>
황순애님의<폼페이:최후의 날>
차재기님의<울엄마 나이가 되어>
정길순님의<풍전등화>
황빈님의<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리라>
이경숙님의<마지막 강의>
류문수님의<내 얼굴 보기>
이화용님의 <아버지의 숙제는 계속되고 있다.>
김정미님의<폼페이(키스바위)>
 
모두 잘 쓰셨지만 이경숙님과 이화용님의 글을 호평해주셨습니다. 류문수님의 글은 지금까지의 글과는 다른 소재라 좋았답니다.
이제 좀 더 객관적 관점의 글을 써보시라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천호반에서 오시는 이마리나샘께서 간식비를 주셨습니다. 다음 시간에 맛있는 간식을 준비 할 수 있겠습니다.
비가 그치고 나면 진정 봄이 올 것 같습니다.
년초에 세우신 계획들은 잘 진행 되시고들 있겠지요. 봄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더 다잡고들 가실께요.
건강하고 즐거운 한 주 보내시고 다음 주에 뵈어요
한국산문 3월호 준비하는 것 잊지 마시고요
싸랑합니다.

박서영   14-03-13 07:45
    
알록 달록 사탕사이에 정갈하게 포장된 명품 호두과자는  설영신 선생님께서 주신 간식비로 준비했습니다.감사하다 인사드리니 소녀처럼 부끄러워 하셨어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자리때문에 수업 중간에 의자를 보충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글 복사해줘야하는 심부름도 수업의 열기를 보니 기쁘기만 하더이다. 두통약 사다주신 정길순샘, 김정미샘 감사해요. 크기와 모양과 색깔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어우러지면 명품 분당반이라는 작품이 되리라 믿쑵니다! 봄의 싹들이 준비를 끝냈다고 아우성이네요. 우리도 푸짐한 글밭을 기경해 보시게요.
     
조정숙   14-03-13 17:47
    
설영신 선생님이 주신간식이었군요
옆자리에 앉으셨는데 인사도 못드렸네요
점심을 안먹은 터여서 맛있게  잘먹었습니다
     
이화용   14-03-14 10:27
    
봄학기 첫시간부터 쏟아지는 합평글을 보니 푸짐한 글밭 기대해도 되겠습니다.^
톡톡 굵직한 호두가 씹히는 호두과자 일품이었습니다.
이은하   14-03-13 08:49
    
상쾌한 아침입니다. 
그 호도과자가 명품호도 과자였나요?
오늘 아침식사 후 디저트로  어제 내 몫으로 챙긴 명품호도과자와 커피 한잔으로 대신 했습니다.. 명품이라서 그런지 훨씬 맛도 좋고 고소하네요.
명품 분당반 맞습니다.  맞고요~
우리샘들 각자 인생이 다들 명품입니다.
으샤으샤 !!!오늘 하루도 화이팅입니다.
     
조정숙   14-03-13 17:50
    
흐린날 이지만
그래요 으쌰 으샤  좋은날 되자구요
     
이화용   14-03-14 10:32
    
때때로 그리운 말 입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외유내강 은하샘, 우리 화이팅! 한번 크게 외쳐봅시다.
이화용   14-03-13 20:38
    
어제는 봄비가 조금 더 내려도 좋은 뻔 했습니다.
몹시 추울거라던 지난 겨울 예보는 빗나갔지만
그 빗나감이 다행이었으니
아무도 틀렸음을 질책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후에 비가 오리라는,
많이 오지는 않으리란 예고는 빗나갔어도 좋았겠지요.
조금 더 내려서 마른 땅을 흠뻑 적셔주었더라면...
오늘도 종일 흐리고 바람도 많이 불었네요.
을씨년스럽고 심술기마저 느껴지는 날이었어요.

저녁을 먹으면서 tv를 켰더니 '생생 정보통'이란 프로를 하데요.
포항의 꽁치잡이 얘기를 보여주더군요.
님들 꽁치국밥이란 음식 아시나요?
꽁치가 흔한 지방이라서 여러가지 꽁치음식이 발달했겠지만
꽁치 국밥은 상상 이전이었습니다.
꽁치를 나무 도마에서 마구마구 다져서 완자를 빚어
우거지국에 꽁치 완자를 넣고 끓이다가 부추를 얹어 밥을 말아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국밥 한그릇 말아 먹고
뜨끈한 자리 속으로 파고들면서 하루를 마감해도 좋을 날입니다.
내일 팔 사탕 디스플레이 손 보느라 좀 피곤한 하루였습니다.
어제 미리 이쁜 서영샘이 나눠준 사탕을 먹었으니
내일 아무도 이 늙다리 여인에게 사탕을 주지 않아도
서글퍼하지 않으렵니다.

페스탈로치 할버지,
많은 실패 끝에 교육이론가로 입신하셨으니
본받을만 합니다.
빈민교육과 문맹퇴치도 어려운 사람의 형편을 헤아렸기에
가능한 것이었겠지요.

명품분당반, 우리 스스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좀 쑥스럽긴 하네요.
(맥주 한 캔 마시고 쓰는 티 나지요?ㅎㅎ)
     
조정숙   14-03-14 09:56
    
저도 그 프로 보며서 꽁치국밥이 무척생소했답니다.
꽁치는 구어서 먹는걸로만 알았어요

원래 글은 한잔 턱~~걸치고 써야 잘 써지던데(나만 그런가ㅎ)
그래야 술술 풀린다고 누가 그래서 
아주 말 잘 듣고 있습니다.
선생님댓글은 하나도 티 안났어요
한캔 더 드세요
          
이화용   14-03-14 10:36
    
전에는 꽁치구이 좋아해서 한번에 세토막은 너끈히 먹었는데
요즘은 그 맛은 아니더군요.
에이, 몹쓸 입맛!!

역쉬 반장님도~~~
러브 샷  포즈 >< ~~!!
박재연   14-03-13 22:41
    
토마스 만은  멀고 아득하게만  느껴지네요    작품을  안읽어서?  독일인이라서?  부부가 해로했다는 사실이  훨씬 감동이에요 ㅎ    총무님이  나눠주신 예뿐사탕이  그것이었군요    감사^^    명품  분당반  맞습니다  화이팅!!
     
조정숙   14-03-14 10:06
    
남들은 명품은 들고 다니는데
우리는 몸을 푹 담그고 있으니
조만간 명품 몸매로 변하나 기대해 볼까나요 ㅎ
     
이화용   14-03-14 10:38
    
왠지 어렵게 느껴져서 지도 토마스 만씨 얘기에는 말이 쑥 들어가네요.ㅋㅋ
공해진   14-03-14 17:05
    
토마스 만의 해로,
화이트데이를 미리 일러주신 반장님께 감사.
오늘 마님께 깜짝해야쥐.

갓잡은 꽁치는 .
수박향이 나면서 회가 가장 맛있습니다.
언제
함, 맛을 볼까나?
아무튼 등푸른 생선으로 젊은 미모 유지 하시고 치매예방하시기 바랍니다.
정길순   14-03-14 17:52
    
융프라를 지붕으로하고 만년설로 이러지는 산맥에서  흐르는물이 온나라를 호수로 만들고있는 스위스 유난히 아름답게 기억되는 루체른은 천의 얼굴을 가졌다고  하던데
 카펠교와 빈사의 사자상은 루체른의 매력을 더빛나게 했죠 나무로 지은 카펠교는 700년이나 지났는데 낭만과  소박한 도시풍경을 돋보이게 했던것 같아요
 호수위에 떠있던 청둥오리가 화려함 보다는 다정한 원앙의 의미로 기억되는것은 루체른의 아름다운 절경과 카펠교의 긴 예술의 역사배경 이었던것 같아요
  암튼 스위스의 청순하고 소 박한 전경들이 눈 앞에선 합니다
후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신 반장님덕분에 오늘도 3년전 여행까지 다시 그리워 합니다
감사합니다
김데보라   14-03-14 19:25
    
명품반의 반장, 총무를 위시한 남과 녀 모두 다녀 가셨군요. 반갑습니다.

토마스만의 <마의산>, 10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의 핵심은, "인간은 선과 사랑을 위해 결코 죽음에 자기 사고의 지배권을 내주어서는 안 된다"라는 문장이라네요. 저 문장만 이탤릭체로 표기되어 있을 정도로, 잔인한 현실 앞에 이상을 저버리지 말자고 힘주어 주장합니다. 토마스 만은 1930년대 프린스턴 대학교 학생들에게 <마의 산>을 소개하면서 "나는 저 문장을 주제라고 생각하며 썼지만, 여러분은 작가 자신이 최고의 해설자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답니다.

토마스만의 <요셉과 그 형제들>
1933년 스위스에서 강연 당시 나치가 독일을 집권하자, 그 사이 나치에 대해 강하게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던 토마스 만은 귀국을 포기하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한 뒤 1938년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그곳에서 발표한 대작이 <요셉과 그 형제들>입니다. 1926년부터 구상했던 이 소설은, 구약성경 속 인물 요셉에 바탕을 둔 신화적 세계를 다루는데요. 당시 나치의 폭정이 너무 가혹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 소설은 오히려 별로 효과가 없다고 판단했죠. 유대인의 고난과 영광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나치의 반유대감정과 교묘하게 대비시킨 기법을 통해 오히려 저항적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했지요.


<요셉과 그 형제들>은 미국에서의 암울한 망명 생활에 대한 개인적 소회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아이러니와 유머가 가득한 작품이라는 점도 특이합니다. 이전까지의 아이러니 기법보다 오히려 더 한 차원 높은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그는 1953년 어느 방송 좌담회에서 "아이러니보다는 유머가 자아내는 예술적 효과를 더 높이 평가한다"라고 자평한 바 있죠. 그 전까지는 양극 사이에서 수평적 태도를 취하면서도 거기서 빚어지는 갈등과 슬픔을 응시했지만, 유머는 쾌활한 유희를 구사하며 양 극단을 초월한 경지에서 내려다보는 태도를 뜻합니다.


토마스만의 <파우스트 박사>
1947년, 토마스 만이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소설인 <파우스트 박사>가 출간됩니다. 독일의 작곡가 아드리안 레버퀸의 생애를 다룬 이 작품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이자 유럽을 파국으로 몰고 간 파시즘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소설입니다. 지식과 재능의 한계를 깨닫고 악마와 계약한 레버퀸을 통해 히틀러라는 인물을 우회적으로 암시하는 이 소설은, 예술을 사랑하는 독일인 사이에서 어떻게 이런 악마가 나타날 수 있었을까를 질문하지요. 그는 독일인이 저지른 엄청난 죄를 용서해달라는 절절한 고백을 합니다.
토마스 만은 "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나 역시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까지 언급한 바 있어요. 다만 이 소설 속 현대 음악 기법 중 쇤베르크의 12음 이론을 차용했는데, 이에 대해 쇤베르크가 표절 논쟁을 제기하며 분노하기도 했어요. 둘은 결국 화해하지 못했습니다.

토마스만 <선택받은 사람들>
1951년 그의 말기 장편 소설 중 마지막 작품 <선택받은 사람>까지 소개하도록 하죠. '카오스(혼돈)을 통한 코스모스(질서)'를 구현한 소설인데요, 죄인과 신 혹은 인간과 세계 사이의 화해를 다뤘습니다. 왕의 자식으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가 근친상간에 빠지고, 그로 인해 태어난 아들을 버리지만 그 아들이 장성하여 다시 어머니를 찾아온 뒤 벌어지는 갈등과 인간성의 회복을 그리고 있지요. 토마스 만은 이후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 회상의 제1부>까지 쓰고 1955년 숨을 거둡니다.


독일에선 토마스 만을 '작가'가 아니라 '시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이야기꾼으로서의 소설가 경지를 넘어선 사람이라는 존경의 표현이죠. 독일문학의 최고 경지인 괴테에 버금가는 작가로서 칭송받는 존재예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토마스 만만큼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공격의 대상이 된 작가도 없답니다.

토마스만은  돈을 밝혔고 자기중심적이며 독선적이었고, 예민하기로는 프리마돈나 같았고 거만하기로는 테너가수 같았다고 합니다. ㅎㅎ 참 별난 작가였었나 봐요.

퍼왓어요.

모두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담 주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