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겨울학기가 끝났습니다.
여기저기 결석생이 많아 텅 빈 교실.
조병옥님, 김홍이님, 김진님, 안명자님, 황경원님, 하점순님, 이원예님, 김종승님.
이 모든 분들이 아프셔서 혹은 개인사정으로 못 오셔서 겨울학기를 끝내며 얼마나 허전하던 지요.
안명자님은 맛난 호박떡 간식으로 주문하셔서 저희들만 입이 호강하고...
맛나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반장님이 힘들게 가져오신 홍도숙님의 책 선물도 받았습니다.
이 또한 감사합니다. 알차게 쓰인 책 잘 읽겠습니다.
조용히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조순향님의 <왜 순국인가>
이글은 작가의 시 조부님이신 국은 이한응님의 순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라가 망해가고 있는데 막을 방법이 없어 자결한 열사.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아까워하지 않았던 분의 발자치를 따라가는 글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5월 12일 순국하신 것을 기리기 위해 <한국산문> 5월호 실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처럼 이글은 그때 실릴 예정입니다.
송교수님의 평
이 글은 그냥 그대로 실어도 됩니다. 그러나 앞으로 좀 더 키워 한 권의 책으로 출간 하면 좋겠습니다. 조선조 말 유럽 외교사가 연구되어야하며 국가가 나서서 정리해 주어야하는 문제입니다. 그 시절 영국과 러시아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설명할 필요도 있습니다. 민족적 치욕을 개인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어 선택한 죽음의 역사관을 되돌아 봐야 할 것입니다. 방송에서 특집으로 다루어 자료들을 분석 정리하면 더 좋겠습니다. 근대사나 역사학자가 나서 주어야 가능할 듯합니다. 개인이 연구하고 정리하기에는 힘드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주세요. 이런 일들은 역사적 시선으로 조명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합니다.
오세윤님의 <일흔 넷 나이>
작가가 하나하나 버리는 자신의 삶을 담담히 풀어쓴 글입니다. ‘해가 갈수록 산은 나이에 비례해 고도를 더 높이고 더 멀리 저만치로 물러났다.’ 라는 글처럼 세월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버리는 것을 시작한 작가. 버리니 좋았다고 홀가분하다고 합니다. 아직 청년 같은 모습인데 비우고 버리는 작업을 시작하시다니 욕심쟁이 총무는 그저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선으로 차 있어야 물욕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작가의 말. 이 말이 계속 저를 따라 다녔습니다.
송교수님의 평
저는 아까워서 그러지 못하지만 버리는 것에 대한 면에서는 잘 쓰인 글입니다. 글을 읽을 때 무얼 못 버린다고 하실까? 그것은 나하고 어떤 인연인가? 그렇게 쓴 글 인줄 알았는데 그 또한 제가 가지고 있는 글에 대한 고정관념이었습니다. 이 글은 다 버려서 좋다는 허전함이 남았습니다.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과 왜 일흔 넷 나이 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에 대한 엄살떨거나 청승부리는 글이 되지 않도록 유의하셔야합니다. 차라리 제목을 ‘내 나이가 어때서’로 하면 어떨까요.
김옥남님의 <부엉새>
어린 시절 작가의 별명이 부엉이라고 합니다. 좀 어눌하고 재지 않으며 눈망울을 껌벅거리는 동작을 지녔다고 어른들이 부른 별명이라네요. 그래서 인지 유난히 부엉이가 좋아서 작가는 부엉이 액세서리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부엉이와 관련된 액세서리가 많다는 것도 글을 통해 알았습니다.
저도 부엉이를 무척이나 좋아한답니다. 재물을 가져다준다고 그래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석상에서도, 인사동에서도 부엉이를 만날 수 있답니다. 이런 제게 딸아이가 퀼트로 부엉이 한 마리 만들어 줘서 핸드폰에 달고 다닌답니다. 그래서 글이 더 친숙하게 느껴졌습니다.
송교수님의 평
아기자기하게 잘 쓴 글입니다. 시작이 내가 부엉이로 불리게 되었다고 했으니 글의 끝 부분도 부엉이가 그립다 보다는 ‘별명 부엉이라고 한다.’로 끌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지난 시간 8편의 글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회원 글만 많이 하면 수업이 단조로울 것이라며 나머지 글들은 다음 봄 학기 개강시간에 합평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비장의 카드로 천경자의 수필 <신부리>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저희들에게 좋은 수필을 소개해 주고 싶어 오랫동안 찾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자 한자 컴 작업으로 쓰셔서 저희들께 나눠주셨답니다.
여러분이 아는 화가 천경자의 글입니다.
1953년 발표된 수필인데 전혀 어색하지 않고 군두더기 하나 없이 매끄럽고 탄탄한 문장의 글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 하필 그 달팽이 같은 사림이 내 신랑이었을까... 신부는 무척 어렸었다. 봄에 식을 마치고 친정에서 8.15 해방을 맞이하던 그해 동짓달, 7개월 만에 그는 머언 시골로 신부리를 하러 가게 됐던 것이다.’ 이렇게 첫 시작을 하는 이 글은 처음부터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습니다. 사물을 보는 눈이 역시 예술가의 눈으로 보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각적인 글이 어떤지도 공부했습니다. 담백하며 간결한 문체에 재미까지 더해진 글입니다. 도덕성도, 윤리성도, 성인의 길도 모두 벗어난 일탈의 미학을 보여주는 글이기도 합니다. 시집가는 신부의 부끄러움이나 설렘, 희망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 볼 수 없었답니다. 좋은 글 한편에 한 한기 공부를 다 한 것 같아 많이 행복했답니다.
맛난 점심을 먹으며 종강을 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수업이 없습니다. 부디 절대 나오지 마소서. 아프신 분들 바쁘신 분들 모두 모두 낳으셔서 3월 봄 학기에는 꼭 만나길 바랍니다. 3월 등단하시는 소지연님 미국 건강하게 잘 다녀오세요.
오늘 총무만 땡 잡을 날 이었습니다. 홍도숙님의 귀한 책도 선물 받고, 지난주에 송경순님께 부탁드린 누비 장지갑도 에누리된 2천원과 함께 받고, 한희자님께 조끼 색깔이 예쁘다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훌러덩 벗어서 총무 입으라고 주셨답니다. 공짜 좋아하는 총무는 입이 함지박처럼 벌어졌고 이마는 훤히 빛나고 있습니다. 부러우시죠. 이 맛에 총무 합니다. 다음 봄 학기에도 총무자리는 제 것이니 아무도 눈독 드리지 마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