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입니다.
아침 신문을 보았습니다.
세월호 대참사 사흘째. 신문은 온통 슬픔으로 가득했습니다. 권지예의 특별기고 ‘희망이 있는한 삶은 있다’를 읽고 울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광고는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갑니다’도 있고, ‘내 꿈에 날개를 달아 더 큰 세계로!’로도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습니다. 도대체 이 나라에 꿈이, 희망이 있기는 한 걸까요. 화가 나고 속상하고 눈물도 나고 며칠째 잠조차 편히 잘 수 없게 만드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 부끄러워졌습니다. 수업을 위해 압구정으로 가는 내내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금요반님들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유난히 검정 옷을 많이 입고 오셨더군요. 아픔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정진희 회장님이 보내신 맛난 떡(쑥인절미와 모둠 설기)은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김정완 대표이사님과 정진희 회장님, 장은경 사무국장님께서 금요반에 오셨습니다. 한국산문의 발전을 위해 많이 도와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함께 점심도 먹고 김정완 대표이사님께서 식사후 맛난 커피와 음료도 사 주셨답니다. 감사합니다. 큰 일 맡아주셨는데 이렇게 잘 대접 받았으니 저희 모두 한 마음으로 열심히 도와야하겠습니다.
수업 시작 합니다.
오세윤님의 <미역국>
손녀의 생일에 미역국을 끓이는 이야기와 어머니가 동생들을 낳고 먹었던 미역국, 수련의 과정에서 산부인과에 있을 때 산모들이 먹었던 미역국 이야기가 잘 어우러진 글입니다. 워낙 필력이 좋으셔서 한 번에 막힘없이 읽혔습니다.
송교수님의 평
이 글은 잘 쓰인 글입니다. 그런데 지난시간에 했던 <아버지의 팡세>보다는 좀 못한 글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똑 같은 작가인데 왜 다를까라는 이유를 수필이론에서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글감의 무겁고 가벼움, 진술의 배열, 일화의 적합성, 작가의 감수성들이 더 잘된 글과 그냥 잘된 글로 나누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뒷부분에 배열을 달리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조순향님의 <가족도>
‘한국근현대회화100선’ 전시회에서 배운성의 <가족도>를 보며 그림의 배경과 화가의 이야기 그리고 작가의 가족도 이야기가 잘 어우러진 글입니다. 이 그림은 2012년 근대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100편의 작품에서 10편정도가 가족의 그림이였다고 합니다. ‘가족은 영원한 사랑의 화두이다’라는 작가의 글을 보며 잠깐 먹먹했습니다.
송교수님의 평
지난번에 내신 글은 이 글을 내신다고 하셔서 합평을 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그 글도 보았습니다. 이 글은 아주 좋아졌습니다. 이 글의 백인기씨 가족은 제가 다니던 중, 고등학교의 설립자임을 알았습니다. (조순향님의 설명에 의하면 백인기씨가 죽고 그의 아내가 남편의 유지를 받아 학교를 설립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집안이 망해서 그의 아들이 학교에서 체육선생님을 했습니다. 오늘에서야 이 글로 만났습니다. 뒷부분에 조금만 손보시면 됩니다. 조순향님의 가족도의 의미를 선처해주세요. 가족의 일반론으로 마무리되는 부분도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조병옥님의 <토스카니니의 PPP>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일화들과 그가 원했던 피아니니시모(PPP) 표현들, 그리고 꽃들의 도발로 그 의미를 찾아가는 작가의 섬세함이 묻어나는 글입니다. PPP는 ‘아주 아주 작게’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너무나도 권위적이고 보수적이었던 라 스칼라 무대에 처음으로 그 시대 ’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 베리스모 오페라를 울린 그는 평생을 자기만의 ’음‘을 찾아 떠나고 또 떠났다.’ 마지막 부분에 있는 이 글이 토스카니니의 음악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송교수님의 평
쓰기 어려운 글을 잘 쓴 글입니다. 아주 좋습니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멋을 부려야 더 멋진 글이 됩니다. 피아니시시모를 PPP라고 하는지 알려주세요. (조병옥님의 설명은 이태리 말이며 음악적 용어로 PP는 피아니시모를 PPP는 피아니시시모라고 합니다) 중간 부분에 작가가 일방적으로 단정 지으며 이끌고 가는 것을 속사이듯 현장감을 살려서 대화체로 끌고 가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신나서 느끼고 즐기는 장면으로 멋을 부려서 끌고가 주세요.
노정애의 <때 늦은 후회>
늦은 밤 한통의 전화가 걸려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임종을 앞둔 여인이 오래전 버린 아들을 찾는 전화이야기와 못난 아들을 기다리며 눈도 감지 못했던 시어머니의 이야기가 담긴 글입니다.
송교수님의 평
잘 쓴 글입니다. 읽다가 눈물이 나려고 했습니다. 노정애님은 읽는 이로 하여금 포인트가 느껴지도록 하는 단계로 가야합니다. 장면에 대한 실감이 안 살아나는 단점이 있습니다. 뒷부분은 무리가 없는데 앞부분에서 힘이 들어가는 문장을 쓰면 좋겠습니다. 제목도 다른 것으로 바꾸면 좋을듯합니다. 빼도 좋을 문장들은 과감히 빼주세요.
안명자님의 <잘 웃는 내 친구> <무지개 색깔 주례사>
잘 웃는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웃음 덕분인지 다복한 집안입니다. ‘친구네 온 형제자매들은 부모를 닮아서인지 모두가 잘 웃는다. 남녀 음성만 다를 뿐이지 웃는 것도 호탕하고 시원하다. 어쩌면 그리 똑같은지 특이했다. 그들은 형제 우애도 대단했다. 동기간 중 부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자 친구 오빠 삼형제가 한 아이씩 맡아서 대학까지 보내고 결혼을 시켰다. 그 집안은 먼 친척이라도 동기간에 의리가 있다. 사는 지방이 달라도 꼭 찾아다닌다. 친구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래서 늘 바쁘다.’ 이 한 문장이 어떤 친구인지 보여줍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그 말이 가슴에 콕 박히는 글이랍니다.
또 한편의 글은
주례사에 관한 글입니다. 지난번 합평으로 잘 다듬어서 내셨습니다. 주례사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있어 처음 글보다 더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바쁘신 중에 글쓰기도 열심이신 안명자님께 늘 감타하고 있습니다.
송교수님의 평
안명자님은 우는 얼굴을 봐도 웃는 얼굴로 그려내는 분입니다. 작가의 고운 심성 때문이죠. 이 글은 문장도 어긋남이 없으며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에서 원근법이나 명암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을 글에서 받았습니다. 일방적인 예찬으로 필자의 착함만 드러나게 쓰고 있습니다. 사람이 착한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것을 인정하고 앞으로도 계속 쓰세요. 앞부분과 중간부분에 있는 두 단락을 빼는 것이 좋겠습니다. 꼭 필요한 글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주세요.
무지개 색깔 주례사는 아주 잘 고쳐졌습니다. ‘완’입니다.
이렇게 수업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금요반을 찾아주신 귀한 손님들의 인사말도 듣고 모두 함께 밥정도 나누었습니다. 감기 때문에 결석하신 오윤정님 언능 나으세요. 반장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책임 있는 자리인지 우리 반장님 발 다치셨는데 병원에도 못가고 절뚝거리며 오셨습니다. 손님들과 끝까지 함께 있다가 절뚝거리며 병원 가는 뒷모습 보고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다음주에는 부디 다 낳으소서.
마음 아픈 주말을 맞게 되었습니다. 희망을 찾지만 계속 우울한 소식들만 들려옵니다. TV를 끄고 있는데 최신형 핸드폰에서 새로운 소식을 알립니다. 열어보니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속보로 날아왔습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오늘하루를 보낸 것이 미안할 지경입니다. 넘 우울해하지 마시라는 인사도 못 드립니다. 죄송합니다.